[이현우의 경성만필(慶星漫筆)]7-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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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경성만필(慶星漫筆)]7-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의 의미
  • 칼럼니스트 이현우
  • 승인 2020.01.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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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현우

 

이현우 칼럼니스트
이현우 칼럼니스트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어느새 천만 명을 넘었다. 다섯 가구에 한 가구 정도의 수치이며,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감히 상상조차 못 해본 현상이다.

1960년대, 국민소득 80달러 남짓하던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속하는 현재의 잘사는 대한민국을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반려동물의 급격한 신분 상승 또한 예측하지 못했다.

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삶의 패턴이 그에 걸맞게 변모하는 과정에서 반려동물도 자연스레 안방의 문턱을 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예전의 사회 환경에서 보면 개와 사람이 방안에서 숙식을 함께한다는 건 웃음거리였을 테지만, 지금은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반려동물 전용 채널이 등장했을 뿐 아니라 호칭에 서도 ‘아빠, 엄마, 아기…’ 등등, 마치 자식을 대하듯이 하는 걸 보면 반려동물도 이제 중요한 가족의 일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잠시, 얼마 전 지인이 들려준 해프닝 한 토막을 소개한다.

“어머니, 이번 방학에는 식구들 데리고 해외에 좀 다녀올까 합니다. 그래? 잘 다녀오너라, 몸조심하고. 그런데…, 문제가 좀 있어요. 어머니가 도와주세요. 문제? 무슨 문제? 그게 좀…. 뭔데 뜸 들이고 그러냐. 괜찮다. 우리 걱정하지 말고 훌훌 털고 다녀와라. 어머니,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단비 땜에 그래요. 단비? 그게 뭔데? 아, 저, 강아지 있잖아요. 강아지? 아, 그거, 방에서 키우는 너희 집 개 이름이 단비였더냐? 예, 그 애를 맡길 데가 마땅찮아서요.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한 달씩이나…. 여기서 좀 돌봐주세요. 뭐라고? 여기서? 나 원 참, 어린 손주도 아니고, 개를 방안에서… 살다 살다 보니 참 별일이다. 안 그러냐? 그냥 그러지 말고 남 줘버리지 그러냐.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어째, 전부터 개를 방에서 키우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난 이해를 못 하겠다. 어머니, 요즘 도시에선 대부분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어요.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에요. 아들도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둘이서 얼마나 잘 지낸다구요. 마치 우애 좋은 형제 같아요. 형제? 그래, 참 좋겠다….”

우여곡절 끝에, 지인은 뜻한 바대로 단비를 부모님 댁에 맡겨놓고 마음 편히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틈틈이 국제전화로 단비의 안부를 묻곤 했다. 한 달 후, 여행을 마치고 단비를 데려가기 위해 부모님 댁에 들른 지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단비를 그냥 두고 와야 했던 것이다. 다음의 대화 속에 그 까닭이 들어있다.

“어머니, 단비 돌보느라 고생하셨지요. 말은 잘 듣던가요. 아픈 데는 없었구요? 그래, 난생 처음 겪는 일이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단 괜찮더구나. 아버지는 뭐라셔요? 아버지? 글쎄, 그게, 기가 차서…. 아니 무슨 일 있었나요? 아버지가 혹시? 혹시, 뭐? 동물학대 같은 거라도 했을까 봐 그러냐? 그러진 않았겠지만…, 아버지가 원래 개 냄새를 싫어하셨잖아요, 그런 데다 억지로 맡기고 갔으니, 어머니가 눈치 보느라 힘드셨겠네요. 처음엔 그랬지…. 아무튼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단비 데려갈게요. 아니다, 그게 아니다. 네 아버지가 놔두고 가라 그러시더라. 아니 왜요? 아버지가 정말 그러셨어요? 그래, 정말이다. 아침에 나가시면서 단비를 안고 중얼거리시더라. …단비야,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너처럼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이가 있겠느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그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쫓아와 반겨주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위의 일화는 반려동물 천만 인구 시대를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여겨진다. 기실, 현대인을 둘러싸고 있는 심적 환경은 고독 그 자체다. 정이 메마른 사회에서,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 하나 없이, 무공감‧무감동의 삶을 살고 있다. 일상을 보면, 가족 간에도 대화할 여유가 별로 없다. 모두들 ‘바쁘게, 긴장하며, 피곤하게’ 산다. 그 와중에, 혹시 틈이 생겨도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혼자만의 대화’를 즐길 뿐이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함께 모여 앉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는 사이, 인간관계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던 ‘정(情)’은 급격히 식어가고 있었다. 대화가 빈곤하니 정이 싹 틀리 만무하고, 결국 정(情)이 떠난 그 자리에 외로움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어쩌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천만 인구’는 대화를 잃은 현대인의 출구이자 내면에 그려진 ‘고독한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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