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여성스럽게 사는 문화(4): 포르투갈 코인브라에서 느낀 한국인과 유럽인의 미감(美感) 차이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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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여성스럽게 사는 문화(4): 포르투갈 코인브라에서 느낀 한국인과 유럽인의 미감(美感) 차이 근원
  • 칼럼리스트 박기철
  • 승인 2017.09.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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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女~文: Amenity, Feminism and Lifeway / 칼럼리스트 박기철
칼럼리스트 박기철

[필자주] 다음 글은 <총-균-쇠>처럼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정복했던 역사와 달리 생태문명 차원에서 이제 ‘아름답고 여성스럽게 사는 문화’의 제안이다.  

 

한국인과 유럽인의 미감 차이 근원

예전에 TV에서 이탈리아에서 사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거의 맨 몸으로 유학 와서 눌러 살다가 어렵사리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그녀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오래되어 적당히 허름하며 그러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건물들에서 산단다. 그렇게 살면서 지니게 된 태생적 미감을 한국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단다. 그러기에 한국인이 패션 디자이너로서 일하려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포르투갈 시골 마을, 코임브라의 허름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사진: 박기철 제공).
포르투갈 코임브라의 아름다운 뒷골목에서 포트투갈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미감을 접하면서 자란다(사진: 박기철 제공).

지금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그녀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저 아이들이 노는 곳은 포르투갈 코임브라의 산타클라라 대성당 인근이다. 골키퍼를 보고 있는 아이 뒤의 건물은 그 대성당의 부속 건물이다. 여기는 동네 전체가 오래된 유적지다. 그녀가 말하던 적당히 허름하며 그러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이 배어 나오는 건물들에서 자연스럽게 놀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다세대 주택이나 고층 아파트로 빽빽한 곳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과 미적 감각에서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그녀의 말은 바로 그런 점을 유럽에서 살며 가지는 생생한 체험을 통해 지적했던 것이다.

과연 내가 한국의 문화를 비하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조건 유럽풍을 선망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그랬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우리의 전통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살지 못하고 있다. 지어진 지 30년이 지나면 허물고 재개발할 수 있고, 하고 있으며, 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조국, 한국의 문화에서 과연 어떤 미감을 가꿀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경제 민주화나 양극화 해소도 이루어야 하지만 미감 대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금방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장 기적 관점을 가지고 이들과 다를 우리 나름의 한국적 미감을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미감에 관한 포르투갈의 오늘과 내일

나 어릴 적에는 동네 어디에나 구멍가게들이 많았다. 가게 주인들은 작은 가게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먹고 살 만했다. 동네 주민들은 대개 집과 가까운 곳에서 찬거리나 생활용품들을 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구멍가게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도 1991년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21세기는 10년 빠르게 찾아왔다. 그 때부터 세계화(globalization)의 바람이 불었다. 문민정부로 불렸던 김영삼 정부는 그 물결의 바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통치 슬로건으로 ‘Segyewha'라는 지극히 비세계적인 이상한 문구를 쓰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구멍가게들이 사라지면서 슈퍼마켓들이 들어서더니 그것들도 사라지고 훼밀리마트, 세븐일레븐 등의 소형 편의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의 대형 마트들이 들어섰다. 미국에서 들어온 월마트와 프랑스에서 들어온 까르푸 등의 외국형 대형 마트들은 한국업체들의 밀려 사업을 접고 말았다. 한국형 대형 마트들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구멍가게와 슈퍼마켓이 토착 지역민이 하는 장사라면 프랜차이스 편의점과 대형 마트는 대형 사업자의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사업이다. 동네 제과점이나 빵가게들을 대체하는 파리바게트, 뚜레주르와 같은 제과점도 마찬가지다. 동네 다방이나 음식점들을 대체하는 스타벅스나 엔제리너스와 같은 프랜차이스 형 커피숍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서나 똑같은 곳에서 물건을 사고 커피를 마시며 빵을 산다. 그나마 식당들은 아직 프랜차이즈화가 덜 진행되었으나 이제 떡볶이집마저도 그리되는 걸 보면 조만간 프랜차이즈 식당의 시대도 본격적으로 열릴 것 같다.

포르투갈에 오니 우리나라와 다르다. 골목마다 오래된 구멍가게와 과일가게들, 빵집들, 식당들이 많다. 골목마다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나도 그런 곳에서 물건을 사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 물론 편의점이나 대형 마트에서보다는 불편해도 뭔가 사는(live) 맛도 나고 사는(buy) 맛도 난다. 

코임브라의 좁은 골목 안에는 정겨운 구멍가게가 즐비하다(사진: 박기철 제공).
코임브라의 좁은 골목 안에 있는 작은 식당 앞에서 할머니와 개가 막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고 있다. 어쩐지 이 할머니는 이곳 식당의 수십년 단골 손님 같이 보인다(사진: 박기철 제공).

그런데 포르투갈에도 대형 마트가 없지는 않았다. 몬데고강(Rio Mondego) 건너 산타클라라 성당 윗동네에 대형 마트가 하나 있더니 산타크루주 성당 옆에도 또 하나 있었다. 핑고도체(Pingo Doce)라는 대형 마트다. 포르투갈 전역에 있단다. 달콤한 물방울이라는 뜻이라는데 우리네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과 같은 이름과 비교하면 미적이고 시적이다. 하지만 자본력에 의해 움직이는 대형 마트의 본질은 똑같다. 물건을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는 것과 비교하여 편리하긴 해도 우리나라랑 똑같으니 여행하는 재미나 미감이 없다.

코임브라의 신시가지에는 우리나라와 똑같은 모양의 대형 마트가 들어서 있다(사진: 박기철 제공).

앞으로 포르투갈도 우리나라처럼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멀리 한 바퀴를 360도로 돌며 걸으니 'alma'라고 하는 우리나라 대형 쇼핑몰과 똑같은 것이 있다. 전세계를 획일화시키는 세계화의 바람이 유럽의 변방인 이곳마저도 건너갈 것 같지않다. 만일 그런 예감이 현실화된다면 포르투갈은 별 매력이 없는 미감없는 도시가 될 것이다. 물론 포르투갈인들이 대형 마트나 쇼핑몰에서 편리하게 사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으나 우리랑 똑같아지는 것은 웬지 씁쓸하다. 미감(amenity)은 최신식으로부터 느껴지기보다 오래된 전통적인 것들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서 느껴지지 않는 미감

육대주(六大洲) 중에서 유럽에 속한 국가들을 여행하는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휘황찬란한 신시가지가 아니라 고색창연한 구시가지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구시가지에 있는 호텔이 자신을 소개할 때는 구도심(old town)에 위치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관광객들은 구도심에 몰려 있다. 올드타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관광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나는 삐딱하게 코임브라 구도심을 둘러싼 신도심을 걸으며 360도 돌아다녔다. 서울로 따지자면 4대문 주위를 한 바퀴 빙 돈 것이다. 새로 지어진 집들도 보인다. 구도심에 없던 아파트들이 보인다. 아마도 구도심에서는 집을 새로 짓거나 높은 건물을 건축하는 것이 법적으로 규제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들도 우리처럼 3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 대개 10층 정도다. 그러니 우리처럼 위압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유럽의 도시에서 만나는 높은 아파트는 그달리 반갑지 않다. 하지만 그나마 이 정도로 낮은 아파트라서 다행이기는 하다.

코임브라의 고색창연한 구도심과 평범한 신도시 모습. 어느 곳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본성이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사진: 박기철 제공).

바로 이 생각의 지점에서 하나의 상상을 해본다. 만일 우리나라가 구도심이 있는 유럽의 어느 나라를 식민지로 정복한다면 우리는 구도심을 어떻게 할까? 다 밀어버리고 재개발하려 들지 않을까? 불가능한 상상이겠지만 만일 그리 된다면 우리가 점령한 나라로 찾아오는 관광객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안에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으며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경복궁 주변으로 북촌과 서촌이 아주 조금 흔적이나마 남아 있기는 해도 이미 구도심이라고 할 만한 곳은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에는 종로 대로 옆으로 서민들이 양반들이 타고 다니는 말(馬)을 피(避)해 다녔다는 피마(避馬)길에는 '삐까번쩍'한 고층건물들이 들어섰다. 그 골목길에 있었던 음식점들은 사라지고 건물 안으로 간판을 옮겨서 들어갔으나 그 곳에서 먹는 음식에서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압축된 공간, 소멸된 거리, 그리고 파괴된 장소 위에 전통을 깨부수고 아무리 최신식 건물과 시설이 들어서도 미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감이란 휘황찬란하고 삐까번쩍하는 것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대개 오래된 것에서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미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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