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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 백두산 폭발의 대재앙을 불러올 가능성부터 걱정해야

기사승인 2017.09.07  0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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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지난달 몽골, 바이칼 여행을 다녀왔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해 궁갈로트, 테를지 등 몽골 초원 캠프에서 게르(유목민들의 전통 천막 가옥) 숙박과 승마 체험을 하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건너간 뒤 한민족의 시원지로 알려진 바이칼 호수내 알혼섬을 둘러보는 7박 8일 일정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칭기스칸의 군사가 했던 것처럼 말을 타고 달려보니 가슴이 탁트이는 엑스타시를 느꼈다. 밤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이 완만한 초원 언덕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 가운데 게르 앞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일행들과 술잔을 나누는 흥취도 각별했다. 가이드를 통해 샤먼의 고향 알혼섬 구석구석에 수놓인 전설과 신화를 들으며 우리 한민족과 이곳 부리야트족과의 친연성을 더듬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오랜만에 가져본 보람 찬 여행이었다. 여행사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친구들과 숙소 및 교통수단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만든 일정이라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만족도)도 높았다.

바이칼 호수 전경(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몽골과 바이칼을 잇는 여행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탑 순위에 있는 아이템이었다. 광막한 초원과 사막, 지구 최대의 호수를 구경하고 싶기도 했지만 평소 우리 고대사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지라 이 코스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준비 단계서부터 설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선배 여행가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몇 권의 관련 서적도 구입해 읽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가 쓴 <유라시아 역사기행>, 중국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장진퀘이가 저술한 <흉노제국 이야기>, 봉우사상 연구소의 <바이칼, 한민족 시원을 찾아서>도 일별했다. 그러다가 아주 인상 깊은 내용이 담긴 책을 하나 접하게 됐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외교관 출신 변호사로 북방민족 사학가를 자처하는 전원철 박사의 <고구려 발해인, 칭기스칸>이었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이었다. 12~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최대 강역의 나라를 세운 칭기스칸.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 최고의 영웅 칭기스칸을 고구려 발해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칭기스칸 초상화(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필자는 중앙아시아 등지서 외교관 생활을 하는 동안 몽골제국과 칭기스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중세기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에서 명멸했던 각 민족의 언어를 공부했다. 몇 년간의 집중 노력 끝에 고(古) 몽골어, 고 여진어 등 26개 국어를 마스터하게 됐다. 그 다음 몽골제국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 측 사료는 물론, 칭기스칸 선대의 비밀스런 족보를 기록한 <원조비사(元朝秘史)>, 중세기 중앙아시아 각 민족의 연원과 역사를 기록한 페르시아 역사가 라시드 웃딘의 <집사(集史)> 등을 연구했다. 그 결과 칭기스칸은 7세기 후반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멸망된 후 말갈족을 이끌고 현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大祖榮)의 동생 대야발(大野勃)의 19대 후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정통 사학자들은 물론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그의 이론이 일부 비약적인 측면이 있고 다소 무리한 꿰맞추기라는 느낌조차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몇 가지 내용에서는 무릎을 칠만큼 솔깃해지는 대목도 있다. 예컨대 '칭기스칸'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연원했냐 하는 문제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1162년 몽골 초원에서 태어난 테무진은 뛰어난 무공과 전략으로 주변의 부족을 차례로 정복해 1206년 오논 강변에서 열린 쿠릴타이(부족장 회의)에서 몽골 최고의 샤먼으로부터 '칭기스칸'의 호칭을 부여받는다. 이 칭기스칸이 무슨 뜻인가에 대해 그동안 학계에서 제설이 분분했다. 고 몽골어에서 “큰 바다”, 혹은 “치열함”을 의미한다는 설,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라는 설 등이 있다.

몽골인들의 게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런데 전원철 박사는 '칭기스칸'이 발해의 왕을 뜻하는 ‘진국공(震國公)’, ‘진국왕(震國王)’의 옛소리 ‘텡기즈칸’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대조영이 698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들을 규합하여 동모산(현 길림성 통화현) 기슭에 나라를 세웠을 때 나라 이름을 대진국(大震國)이라 하고 스스로를 ‘진국왕’이라 불렀다. 즉 몽골의 샤먼은 테무진의 왕국을 대진국, 즉 발해국의 후신으로 간주하고 대진국의 대왕, 즉 칭기스칸이란 칭호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또 <원조비사>에 따르면, 칭기스칸의 10대 조모(祖母)로 ‘모든 몽골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알랑코아’는 결혼한 지 3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빛 속 신비의 인물을 통해 아들 보돈자르 콘(칭기스칸의 9대 할아버지)을 낳는다. 전원철 박사는 이 스토리가 고구려 시조 주몽을 낳은 유화부인의 설화와 매우 닮았다면서 고구려 설화가 몽골 설화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는 알랑코아의 아버지 이름이 ‘주몽 간(干)’의 고 몽골어 발음인 ‘추마나 콘’인데서도 뒷받침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전 박사는 '몽골'이란 민족 이름 역시 ‘말(馬)의 골’을 뜻하는 고구려 말갈어 '말갈(靺鞨)'에서 연원됐다고 설명한다.

이 이론은 일부 재야 사학자들이 그 주장의 참신함에 주목하고 논문이나 칼럼, 강의 등에서 다수 인용하고 있으나 정통 강단 사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발해란 나라가 한 때 중원의 당나라와 어깨를 겨뤘고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리기도 하는 등 강성함을 자랑했던 우리 민족의 국가였다는 점에 대해선 대다수 학자들이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7~10세기 우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신라와 발해, 즉 남북국 시대로 기록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발해의 대조영 영정(사진: 경성대 한규철 교수 제공).

사실 발해는 대제국이었다. 영토가 고구려 전성기의 약 2배에 달했고 통일신라의 5배 정도였다. 현재 중국 동북3성은 물론, 러시아 연해주 일대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고 천제 의식을 치르는 등 황제가 다스리는 천자국이었다.

그런 발해가 건국한 지 228년째 되던 926년 돌연 멸망한다. 당시 만주에서 막 발흥한 거란족의 침입을 받고 10여일 만에 역사의 커튼 뒤로 사라진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고 문물이 융성했던 발해가 왜 그렇게 순식간에 멸망했던 것일까. 이는 1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갑작스런 발해 멸망의 이유로는 민족 구성의 취약성, 마지막 황제 대인선의 실정으로 인한 민심이반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한국학 교수 개리레드야드는 대인선이 거란에 항복할 때 모두 소복 차림이었다는 기록을 들어 어떤 흉사가 그 언저리에 있었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가능성 있는 흉사 중 하나는 백두산 화산 폭발이라는 것이다.

이 학설은 물론 전원철 박사의 발해인 칭기스칸 주장처럼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이를 증명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까지 화산재가 날려왔다는 희미한 기록이 남아 있으나 보도 직접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들어 발해의 수도이자 5경중 하나인 상경용천부 일대가 화산지대에서나 볼수 있는 현무암 지층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 탄소 측정법에 의한 매몰된 식물의 방사선 기록 등으로 볼 때 당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주장이 강력 제기되고 있다. 기록이 없는 것은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모두 화산재에 매몰됐기 때문이라는 게 화산 폭발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화산 폭발의 시점은 발해가 멸망한 926년 이전인지 이후인지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폭발의 규모는 어머어마했다고 한다. 로마시대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도시 폼페이를 하루 아침에 멸망시킨 베수비오 화산보다 100배나 더 강력했다는 것이다. 7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반경 600km에 두터운 화산재를 날려 사흘 동안 밤처럼 깜깜하게 만들었다는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보다 더 위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 3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제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백두산 화산 재폭발 가능성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질학계에 따르면, 그렇지 않아도 백두산 지층 밑의 마그마가 10여 년 전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는데, 백두산과 불과 11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풍계리에서 진도 5.7의 인공 지진을 일으킬 만큼 강력한 핵폭발이 있었던지라 백두산 마그마의 움직임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미 랜드 연구소의 한 국방연구원은 지난 5월 “북한이 대규모 핵실험을 하면 중국과 북한인 수천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엄청난 규모의 분출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백두산 천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중국 등 백두산 인근 지역의 지질연구소에 따르면, 당장 폭발에 이를 만한 이상 징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두산 밑 마그마는 큰 유동성을 갖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핵폭발에 의한 자극이 중첩되면 약한 지층을 찾아 무서운 기세로 용암을 뿜어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제사회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김정은의 모험주의는 한반도에 또 한 번의 전쟁 참사를 촉발하기 전에 자연에 의한 대재앙을 한민족에게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심히 걱정스럽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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