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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넘치는 축복의 회갑연: 로마, 비엔나, 그리고 모로코 등 회갑기념 유럽여행

기사승인 2017.09.05  20: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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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보람 찾는 언론학 교수] / 장원호 박사

(15)-1 넘치는 축복의 회갑연에서 계속:

막내 내외와 함께 회갑 기념으로 유럽을 여행 중인 우리 내외는 다음 날 파리를 떠나서 로마로 갔습니다. 로마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고대 서구 사회를 지배했던 로마 제국의 수도이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정신적, 그리고 물질적 중심지입니다. 또한 로마는 인류의 예술 및 지성사에 커다란 금자탑을 쌓아 올린 도시입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는 1000년 이상 유럽의 모든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 제국의 영토 축소, 경제의 마비로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 세력으로서의 힘을 잃었지만, 아직도 옛 영화스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위대한 도시입니다. 

우리 일행은 로마의 역사적 유적들을 하나씩 탐방했습니다. 콜로세움 같은 유적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바티칸 성당(성베드로 성당)은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베드로의 권위에 걸맞은 성당을 건축하도록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에게 명령해서 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에도 교황과 추기경들의 외압에 의해 많은 예술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성덩 건축에 참가하여 어마어마한 공간 속에서 조화로움과 호화로움의 극치를 뽐내고 있습니다. 바티칸 성당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예술의 결정판입니다.

콜로세움 경기장(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바티간 공화국과 베드로 성당(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바로크 양식의 '137개 계단'은 스페인 광장의 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언덕 위의 삼위일체 교회로 오르는 계단'입니다. 이곳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고대 로마의 교황들은 수로를 건설하면서 자신들의 자비로움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분수들을 도시의 수로 곳곳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트레비 분수에 가서는 동전을 던지는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동전을 던지는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뒤로 돌아서서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는 것이랍니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언젠가는 로마에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라고 하며, 동전을 두 개 던지면 연인을 만나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전을 세 개 던지면 '연인과 헤어지거나 이혼한다'고 하니 동전 세 개는 잘 생각해 보고 던져야 합니다.

트레비 분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파리와 로마를 돌아본 우리 일행은 프랑스 남단 니스와 모나코에 들러 영화에서 본 카지노에 들어가 구경만하고 노름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아서 이태리로 들어와 피사의 사탑을 보고,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들어 갔습니다. 우리는 비엔나의 필그리마세(Pilgrimasse) 전철역 옆에 있는 아나나스 호텔에 묵었습니다. 이 호텔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바로 도심지가 펼쳐졌습니다.

피사의 사탑(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도시 안에는 서울의 명동 거리처럼 상가가 즐비했지만, 넓은 거리 가운데에는 식당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곳에서 한가히 맥주를 마시는 관광객들은 너무도 멋져 보였습니다. 거리에는 오페라나 콘서트를 홍보하는 중세 복장의 홍보맨도 있었고, 카메라를 들고 중세 건물과 거리를 찍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는 거의 중세 당시의 거리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고색창연한 중후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세 때 형성된 거리에는 당시 먼 훗날 자동차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하여 차가 다닐 넓은 폭의 거리나 특히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나 봅니다. 차를 끌고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정말 주차장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비엔나에는 5층 이상의 건물이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없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지금도 그 고도제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이들의 전통을 지키는 자세와 지혜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비엔나뿐만이 아니라 독일과 동유럽 어디를 가도 리모델링하는 건물들이 많이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옛날 중세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너른 벌판을 가진 우리나라 시골에 고층 아파트가 주변의 자연과 안어울리게 우뚝 솟은 모습을 보면, 무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문화 의식이 부족해 보입니다. 비엔나에서 가장 웅장한 중세 건물이 비엔나의 성 스테파노 성당입니다. 이 성당을 보면서, 나는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웅장한 성당을 지었을까 하는 경외심과 함께 종교의 힘이 무서웠던 시절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비엔나의 성 스테판 성당(서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자식들 덕분에 회갑 기념 유럽 여행을 즐겁게 보내고 다시 컬럼비아로 돌아왔습니다. 10월이 되자, 미주리대학교는 학교 골프장에서 '장원호 회갑 기념 골프대회”를 열어주었습니다. 동양인에게 회갑이 매우 의미 있는 생일이라는 것을 인지한 대학이 나를 위해서 골프대회를 여개최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는 미주리대학 골프장 역사상 전무후무한 행사였습니다. 마침 트루만 대통령을 추모해서 미주리대학과 미주리 한국 동문회가 공동 주최하는 크루먼 컨퍼런스가 열려서 서울에서 수십 명의 내빈이 왔고, 겸사겸사해서 같이 골프를 치고 만찬을 대접받았습니다.중세에는 성직자들의 권세도 막강했지만, 중세 왕가들의 힘과 호화로운 모습도 대단했나 봅니다. 그 중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를 상징하는 궁전이 바로 비엔나에서 그 옛날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학기를 보내고, 1997년 회갑년 12월에는 캐나다의 토론토로 가서 평생 처음으로 캐리비언 열도의 다섯 개 섬을 돌아보는 크루즈 여앵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너무도 넘치는 축복의 연속이었습니다.

회갑을 맞은 1997년은 내 생애의 피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회가 생겨서 서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할 때마다, 미국에서 환갑까지만 교단에 서고 은퇴해서 조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세웠던 내 계획과 비슷하게 나는 회갑을 맞은 후 2년을 더 미주리대학에서 강의한 뒤, 30년을 근무한 미주리 대학교를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아주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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