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문제’ BNK금융그룹 회장 인선...순혈주의, 낙하산 논란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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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문제’ BNK금융그룹 회장 인선...순혈주의, 낙하산 논란 언제까지?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7.08.2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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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BNK금융지주 차기 회장과 부산은행장 인선이 지연되자, 지역의 상공계에서도 걱정하는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사주 시세 조종 혐의로 기소된 성세환 전 회장이 2주 전 사퇴한 뒤 선임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는 예측도 빗나갔기 때문. 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부산은행장 후보 추천도 지연돼 경영 공백이 장기화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BNK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는 박재경 BNK금융지주 회장 직무대행, 김지완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정민주 BNK금융경영연구소 대표 등 3명. 하지만 BNK금융지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는 지난 17일에 이어 21일 열린 마라톤 회의에서도 최종 후보 선정을 하지 못했다. 다음달 8일 3차 회의를 앞두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

BNK금융지주 회장에 이어 부산은행장 후보 추천도 지연돼 경영 공백이 장기화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임추위가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 지역 언론 기사를 훑어봤다.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자면 임추위가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부산은행 노조와 지역의 일부 시민단체가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을 정부 측 인사로 분류하면서 ‘낙하산’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금융그룹 수장을 당연히 내부 출신으로 선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반박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금융그룹으로 우뚝 선 BNK가 아직도 인재를 널리 구할 생각을 않고 자기 출신만을 고집하는 ‘순혈주의’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골목 금융’과 향토애를 먹고 자란 BNK가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문호를 활짝 열어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는 공무원, 특히 고위 공무원이 재직 중 관련이 있던 민간 기업이나 특수법인 등의 임원이나 고위 관리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을 일컫는다. 미국 등지에서는 역으로 민간 기업에서 각료나 차관, 차관보 등 정무직에 임명되는 것을 지칭한다. 낙하산 인사 논란은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포스코 등 민간 기업 인사에서 흔히 제기되곤 한다.

외부에 임원 선발을 오픈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등 기업 혁신에 유리하나 외부의 입김에 따른 낙하산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낙하산’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그 사람의 능력이나 자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일 수 있다. 반대로 ‘낙하산’이라는 용어만으로도 권력자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어 때에 따라서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낙하산은 양날의 칼이라고 하겠다.

낙하산의 위력은 과거 재무부(기재부) 출신의 ‘모피아’ 인사들이 보여주었다. 정계, 금융계 등으로 진출해 산하 기관들을 장악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거대한 세력을 구축한 것이 바로 모피아였다. 모피아는 미국의 ‘회전문 이론(Revolving Door Theory)’에 적용되는 사례다. 미국의 군 장성들이 퇴직 후 국방부 관리로 임명되고 임기가 끝난 후 다시 방산업체 간부로 들어가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우려해서 생긴 용어다.

외부 인사를 낙하산으로 분류해 거부하는 것과는 달리 ‘순혈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애쓰는 곳도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회장은 올 상반기 외국계 컨설팅사 대표 출신인 조용서 씨에게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본부장)을 맡겼다. 또 빅데이터센터 본부장으로 김철기 금융연수원 교수를 영입해 앉혔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쟁자인 KB금융지주의 윤종규 회장은 국민은행이 아닌 삼일회계법인 출신이다.

최근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회사들이 IT 인재를 잡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한 퀀트 투자가 급증하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 지금 월가의 상징적 인물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공학 박사라는 외신 보도도 있다. 퀀트 투자는 수학적 모델과 계량분석 법을 이용한 투자. 최근 퀀트 투자의 수익률이 늘자 이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것.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이 가미된 선진국의 금융기법을 따라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내부 출신 인사를 중용하는 ‘순혈주의’가 강하게 작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내부 출신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높고 이른바 정통성이 보장돼 직원들의 신임을 얻기 쉽다는 게 장점. 반면 최근 들어서는 금융권에서도 ‘순혈주의’의 단점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폐쇄적인 경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금융시대에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내부 인사 중에서 사람을 선발하는 순혈주의는 정통성의 장점이 있으나 외부 혁신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얼마 전 카카오뱅크로부터 “카드를 수령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알려달라”는 전화와 문자를 수차례 받은 일이 있다. 대단한 정성과 끈질긴 영업 정신이었다. 순간 “은행들이 강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고 급변하는 경쟁 시대에 순혈이니 낙하산이니 하는 구분법이 언제까지 통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BNK금융지주 회장과 부산은행장 인선이 하루빨리 마무리되는 게 지역 상공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BNK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공정한 심사를 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외부 출신을 무조건 ‘낙하산’로 규정하거나 특정 후보를 자격이 없다고 공격하는 일 또한 임추위의 활동에 방해가 될 뿐이다.

정부든 노조든 시민단체든 모두 관여를 자제하면서 임추위의 결정을 차분하게 지켜볼 일이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그나마 ‘성세환 시대’의 아픔을 딛고 BNK가 재도약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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