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타이완의 미주리 학파: 대만 언론계와 언론 학계을 주름잡는 제자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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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타이완의 미주리 학파: 대만 언론계와 언론 학계을 주름잡는 제자들을 만나다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7.08.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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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보람 찾는 언론학 교수] / 장원호 박사

(13)-1 타이완 미주리 학파에서 계속:

대만으로 떠나는 5월 28일, 우리 일행은 늦잠을 자고 짐을 챙겨 일찌감치 김포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당시 대만은 한국이 중국과 수교를 맺는 바람에 한국과 외교관계가 별로 좋지 않아서 대만행 대한항공 직항편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공 서비스 산업에 경험이 일천한 타일랜드 항공기를 타야 했는데, 타이 항공이 새로 구입했다는 보잉 777기의 짐 싣는 곳 문이 안 열려서 1시간 이상 지연됐고, 일행 중 제프코트 부총장은 대만 도착 후 이틀이 지나도 짐의 행방이 묘연해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보낸 차로 호텔까지 오니, 거의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나의 미주리 박사 제자면서 영향력 있는 대만 언론인인 장샘(Sam Chang)이 호텔로 들려서 대만 일정을 상의했습니다.

5월 29일, 밤낮이 아직 바뀌지 않아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오늘의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는 오전에는 고궁 박물관을 둘러봤고 바로 문화대학으로 갔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대만 국립공원인 양명산(楊明山) 인근에 있는 문화대학 캠퍼스는 학생들로 번잡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대학 이사장과 여성 총장인 임채민(林彩梅) 박사 등을 만났는데, 그들은 1981년에 시작된 미주리대학과의 교환교류 협정을 연장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나는 구체적인 것은 미주리대학에 직접 서류를 보내고 10월 6일 총장이 대만을 방문할 때쯤 조인식을 갖는 방향으로 하자고 제안습니다.

대만문화대학 정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대만 양명산 국립공원 일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981년 내가 미주리 대학으로 와서 바로 시작된 대만 문화대학과 미주리대학과의 교류 협정은 문화대학 출신 13명을 미주리대학에서 교육시킨 성과를 냈습니다. 이들 미주리 출신 대만 언론인 대부분을 이번 방문에 만났습니다. 지금 CTS TV에서 체육국장을 하는 Randy Lee(이준찬: 李俊贊), TTV에서 보도국장을 하는 Tom Tang(탕건명: 湯健明), 그리고 자유시보(自由時報)의 총주필인 유영창(劉永昌)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문화대학 이사장과 인사를 마치고, 나는 1981년, 1984년, 그리고 1989년에 와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 이 대학 저널리즘 대학에 가서 2시간에 걸쳐 인터넷과 언론에 관해 강의했습니다. 학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강연을 경청했으며, 강연 후에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많이 해서 나는 꽤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양명산을 내려와서 저녁에는 1985년에 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곳 정치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장을 하고 있는 나문휘(羅文輝) 박사 내외가 저녁을 초대하여, 우리는 호텔의 불란서식 뷔페식당에서 최고급 샤르도네(Chardonay)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 박사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았는데 작년에 43세 노총각 신세를 면했다고 했습니다. 부인은 미국 아틀랜다에 있는 조지아텍(Georgia Tech)에서 회계학을 공부한 공인회계사로 대만 실바니아(Sylvania) 전자회사의 경리 이사였습니다. 나는 그림 같은 이들 커플을 보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30일, 우리 일행은 아침 늦게 출발하여 이 호텔 근처에 있는 신문사인 연합보(聯合報)를 찾아갔습니다. 이 곳은 1984년과 1993년에 방문했지만, 당시에는 다른 일정이 바빠서 이 신문사를 일일이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연합보 부사장이자 미주리 출신인 양인봉(楊仁烽) 씨의 안내로 신문사 곳곳을 돌아보고 그 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 점심식사에는 연합보 사장이며 이곳 문화재단 이사장인 장작금(張作錦) 씨를 만나서 미주리 저널리즘 대학이 모으고 있는 국제언론기금(International Journalism Endowment)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일이 신청 마감이라고 했더니, 연합보 사장은 내일까지 석좌교수를 위한 기금을 출연하고 뉴욕에서 세미나를 주최할 거라는 의향서를 미주리 대학에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미주리 저널리즘 대학의 국제언론기금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대략 승락하는 것이었으므로, 이것이 야말로 이번 대만 여행에서 최고의 수확이었습니다.   

대만 일간지 연합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우리의 뜻에 협조하기 위하여 문화대학의 이사장도 이 점심식사에 참석했고, 대만 국회의원을 지낸 목관주(穆寬珠) 박사도 그 곳에서 만났습니다. 큰 수확을 기대하며 연합보를 떠나 대만 방송 산업 발전기금 사무실로 가서 유신백(劉新白) 부집행관장과 미주리대학과의 교류 계획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초청 강의를 했는데, 강의실이 꽉 찰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곳 대만대학의 신방과 교수인 아이오와 대학 출신 교수가 집요하게 질문을 했고, 다른 컴퓨터 관계 전문가들도 참석하여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후 우리 일행은 문화대학 출신으로 미주리 저널리즘 대학에 와서 오랫동안 어렵게 공부한 유영창(劉永昌)이 있는 자유시보로 갔습니다. 당시 월 300만 달러 이상 적자를 보고 있는 신문이었지만 막대한 부수와 그 위력을 여전히 자랑하던 신문사였습니다. 신문사를 다 돌아보고 우리는 그 근처에 있는 운남식(雲南式) 요리를 하는 중국식당으로 갔습니다. 아주 특이한 요리인 운남 쇠고기는 중국 음식 고유의 양념이 독해서 먹을 수 없었지만, 쌀로 만든 국수가 아주 일미였습니다. 호텔에 돌아온 나는 가지고 온 컴퓨터로 연합보가 제안한 석좌교수 기금을 위한 합의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는 연합보의 석좌교수 기금 출연 소식을 딘 밀스 학장에게 전화로 전했더니 크게 반가워했습니다다. 아무쪼록 나머지 절차도 잘 성사되기를 바라면서 대만에서의 셋째 밤을 보냈습니다.

5월 31일과 6월 1일은 담강대학과 정치대학에서 강의와 토론 시간을 가졌고, 학교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주로 인터넷을 이용한 언론 전반에 관하여 이 대학 교수들과 토론했습니다. 이날 일정의 하나로 우리 일행은 '중국 TV(China Television Company)'의 탕건명(湯健明: Tom Tang)의 초청으로 국민당이 소유하고 있는 중국 TV를 찾아 갔습니다. 

탕건명은 이 TV사의 보도본부장으로서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975년에 미국에 왔다가 1977년에 귀국하여 계속 이곳의 보도국에서 20여 년을 근무해 온 대만 언론의 실력자입니다. 내가 1993년에 대만에 갔을 때 일요일 새벽에 ‘도원’에 있는 골프장에서 그와 같이 골프를 친 경험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 TV방송국을 돌아 보고 아침식사를 정중히 대접 받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다음 일정이 있는 쉐라톤 호텔로 갔습니다. 대만이 광고회사인 연합광고(聯合廣告)가 주최하는 강연회 장소인 쉐라톤 호텔에 도착한 순간 나는 크게 놀랐습니다. 호텔 대강당에 100명 이상이나 되는 대만 광고주와 여러 매체의 광고 관계자들이 다 초청되어 모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계획된 대로 아시아 광고 시장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사진 슬라이드로 준비해서 강연했습니다. 당시 대만에는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시설이 없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쉐라톤 호텔의 점심을 정찬으로 대접받았는데, 여기서 앞으로 국제광고에 관해 미주리 대학과 대만 광고계가 상호 협력하자는 이야기와 함께 1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연합광고 이사장 뢰동명(賴東明: Tomming Lai)은 고려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뢰 이사장은 나도 전에 여러 번 만났는데, 대만 광고계의 대부이고, 특히 이번  대만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선거 사무장으로서 선거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대통령을 예약 없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실력자라고 들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우리 일행은 다시 대만의 혼잡한 교통망을 뚫고 담수 지역(淡水地域)에 있는 담강대학(淡江大學)으로 향했습니다. 이 대학은 대북시 북쪽 항구로 흘러가는 담강 입구 산 위에 자리잡은 1950년에 세워진 대학인데, 장개석 총통이 1949년 대만에 온 후 바로 세운 대학으로서 문화대학처럼 장씨 일가가 세운 대학이며, 이곳 저널리즘 학과를 나의 박사 제자인 장샘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대만 담강대학 캠퍼스 일부(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예정대로 담강대학에서 2시간 강의를 했고, 그곳 대학에서 시간을 내여 연합보와 연합광고에 보낼 의향서를 준비했습니다. 담강대학 총장과 이사장은 부재 중이었지만 젊은 미모의 스탠포드 출신 부총장 장가선(張家宣: Flora Chang)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설립자의 딸이었으며, 골프를 즐긴다고 해서 가지고 간 골프공을 선물했습니다. 나는 그녀와 골프 이야기와 더불어 미국과의 긴밀한 교류를 희망한다고 해서 서로 돕기로 했습니다. 

그후 우리는 이번 여행의 또 하나의 큰 목표인 CTS 방송국을 찾았습니다. 이곳 장가양(張家驤) 사장은 당시 미국 텍사스에서 아들이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CTS 장 사장이 초청한 저녁에는 문화대학 이사장 내외, 연합광고 이사장, 문화대학 학장, 그리고 오래된 미주리 졸업생 2명이 참석한 성대한 만찬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미주리가 대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특히 농업경제학으로 코넬대학에서 박사를 딴 이등휘(李登輝) 대통령의 미주리대 명예 학위 수여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화기 애애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미주리대 총장이 오는 10월 전에 장 사장을 미주리대학으로 초청하기로 하고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4박 5일 동안 우리 일행은 대만의 언론계와 학계의 졸업생들을 만났으며, 이들이 주선한 언론산업계 인사들로부터 미주리와의 실질적인 교류 협력 및 기금 마련에 동참하게 하는 성과를 올리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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