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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시민들, 신군부 공군 전투기 폭탄 피폭 참사 겪을 뻔했다

기사승인 2017.08.23  2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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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주간 강성보

“선제 포위 기총 사격으로 마을을 초토화시킨 뒤, 보병들이 생존자 수색작전에 들어갔다. 잿더미가 된 한 가옥에 들어가니 30대 여성이 온 몸에 M60 기관 총탄 세례를 맞은 듯 벌집이 돼 숨져 있었고, 그 품 안에 꼭 안긴 어린 아기가 가느다랗게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아기 역시 어딘가 상처를 입은 게 분명했다. 우리 수색팀의 소대장이 45구경 권총을 뽑아들어 마치 서부극의 총잡이마냥 아기를 겨냥해 쐈다. 하지만 빗나갔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그는 서너 발자국 다가가 총을 쐈지만 또 빗나갔다. 우리가 다시 마구 웃어대자, 그는 권총을 총집에 넣더니 M16 소총을 겨드랑이에 끼고 총탄을 난사해 그 아기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피가 튀었다. 그리고 아기는 울음을 멈췄다(미라이 학살 예비조사 보고서, 미 국회도서관)."

미라이 학살은 베트남 전쟁 도중 미군이 벌인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1968년 3월 16일 남 베트남 미라이에서 일어났다. 희생자는 347~504명(추정), 모두 비무장 민간인이었으며 상당수는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사후 조사 결과, 몇몇 희생자는 성폭행과 고문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고, 시신 중 일부는 크게 훼손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 때 미군에 의해 자행된 미라이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처참하게 학살된 민간인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작전’의 주역은 미 육군 23보병여단 20보병연대 1대대 찰리 중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구정 대공세로 미라이를 비롯한 남베트남 일대의 전략기지가 베트콩의 수중에 떨어지자 20보병연대는 대대적인 반격을 결정했다. 연대장 오란 핸더슨 대령은 1대대에 특별 명령을 시달, “가서 확 쓸어버려라”라고 지시했다.

명령은 내려갈수록 과격해졌다. 대대장 프랭크 베이커 중령은 부대원들에게 “가옥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이고, 농경지를 불사르고, 우물을 폐쇄하라”고 지시했다. 또 이 지시를 받은 중대장 어니스트 메디나 대위는 “베트콩 동조자로 의심되는 모든 민간인을 몰아내라”는 작전 개요를 중대원에게 시달했다. 그 작전 개요에 따라 미라이 마을 초토화의 선봉에 나선 것이 윌리엄 켈리 중위가 이끄는 1소대였다. 이 소대는 상부로부터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 어린아이, 부녀자를 포함해 마을 안에 살아있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죽였다. 가옥을 수색해 70~80명의 사람들을 마을 한가운데 몰아넣고 자동화기로 학살했다. 3소대는 도피하는 적을 추적하여 12명의 아동과 여성을 사살하기도 했다.

종군기자 로날드 헤이브릴은 나중에 미 의회의 진상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몇몇은 도망가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한 팔을 잃은 한 여성은 다른 팔로 아기를 안고 죽자사자 달렸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스러졌다. 아기와 함께...”

'더 뉴요커' 등 일부 언론의 보도와 빗발같은 여론에 힘입어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군사재판이 벌어졌지만, 사건에 연루된 26명 중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입대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켈리 중위 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40여 년이 경과한 2008년 3월 현지에 기념관이 건립됐을 때 종신형 복역 중 가석방된 켈리 중위가 참석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베트남전 참전 도중 한국군이 저지른 만행도 이에 못지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라이 학살이 있기 한달 전인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꽝남 성 디엔반 현 퐁니, 퐁넛 마을 주민 70여 명이 한국군 해병대 청룡부대에 의해 학살당한 '퐁니, 퐁넛 사건'이 대표적인 만행이다. 한국군의 공식 기록인 <파월(派越, 베트남 파병) 한국전사>에는 “1968년 2월 12일 제1중대는 08:05에 1번 도로를 정찰하여 북진하고 퐁넛마을에 진입.......서쪽 지역으로부터 30여 발의 적 사격을 받아 4.2 박격포로 발사 지점을 포격 제압, 부상자 1명 생겨 후송하였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당시 학살 피해자 증언과 전투 참여자의 증언, 미군 측 조사보고서에 의해 드러난 사실은 전혀 다르다. 주민들은 “아침밥을 먹고 난 직후 한국군이 당산나무 쪽으로 밀고 들어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불태웠다”고 증언했다. 또 사후 미군이 벌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군인들은 아이를 개머리판으로 때리고, 임산부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으며, 한 여성에게는 옷을 벗긴 뒤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21세이던 그 여성은 하룻동안 더 살아 있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파월 한국군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고 의심되는 '퐁니퐁넛 사건' 당시의 사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베트남 주둔 미 사령부 감찰부 조사 보고서에는 20여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한국군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학살했다는 내용이 A4용지 554장에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미군 측은 파월 한국 사령부 채명신 사령관에게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요청했으나, 채명신은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청룡부대를 가장한 베트콩의 기만전술”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룡부대 자체 감찰과 중앙정보부의 조사로 사건 진상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으나 덮어졌다. 당시 언론도 이 사건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미군 측의 보고서가 30여 년이 지난 2000년 6월1일 비밀 해제되어 공개되면서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겨레 신문의 자매지 '한겨레 21'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2000년 11월 당시 가슴이 도려져 사망한 여성의 여동생 응우옌 티 호아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언니가 하룻동안 더 살아 있었고. 나지막히 엄마를 부르다가 숨을 거뒀다”고 회상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사건의 진실을 인정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는데, 2013년 '글로벌 포스트' 지와 인터뷰한 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군이 그런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 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모으면서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 중 “전두환 신 군부가 5.18 민주항쟁 당시 광주 시민을 베트남의 베트콩처럼 여겨 유혈진압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충격적이다. CBS는 지난 21일 37년만에 공개된 ‘1980년 6월 미국 국방정보국 2급 비밀문서’를 인용, “당시 신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 노태우, 정호영 등이 모두 베트남에서 실전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광주 시민을 마치 베트남전의 베트콩처럼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했다”고 보도했다.

광주518묘역의 조형물(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더욱이 경악스러운 것은 광주 시민들을 향해 전투기 폭격도 검토됐다는 사실이다. JTBC는 21일, 22일 연이어 당시 수원 비행장과 사천 비행장에서 근무하던 전직 공군 조종사들을 직접 뉴스룸에 등장시켜 “상부로부터 공대지(空對地) 폭탄 장착 후 대기 명령을 받았는데, 출격 대상지가 광주였다는 것을 알게됐다”는 증언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 광주 폭격계획설은 당시 광주에 머무르던 미국인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는 목사 등의 증언에 의해 뒷받침됐다. 다행히 이 폭격은 무산됐으나, 자칫하면 우리 공군이 우리 시민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는 일이 자행될 뻔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테러에 시달린 미군과 한국군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지침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화려한 무공훈장을 받은 1980년의 신군부 장성들 역시 이 지침이 몸에 배어있었을 것이다. 계엄군의 무지비한 진압 작전에 처절한 항쟁을 벌인 광주 시민을 “움직이는 모든 것, 죽여서 잠재워야 할 적”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래서 개머리판으로 내리치고, 칼로 찌르고, 총을 난사하고 그랬을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수천, 수만 명이 참살됐을 폭탄이 투하되지 않은 것만으로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춘식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신군부의 잔혹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면서 “새로운 증언들이 속속 등장한 만큼 5.18에 대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뻔뻔하게도 북한군 잠입설이라는 턱없는 괴담을 자서전에 실어놓은 전두환 등 신군부에 대한 재수사와 보다 엄중한 처벌을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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