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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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가...
  • 부산시 서구 안소희
  • 승인 2017.08.16 17: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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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광역시 서구 안소희

다양한 매체에서 요새 여성들의 인권이 존중된다고 얘기한다. 그렇지 않다. 단지 과거보다 나아졌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성추행을 당해도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고, 아이가 잘못 크면 아직도 그것은 여성인 엄마의 책임이다. 이 땅의 여성은 태어난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여자니까’, ‘여자라서’라는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민음사의 41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도서 <82년생 김지영>이 그런 한국 여성의 삶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상이 아닌 현실을 직시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이 묘사한 우리 여성이 겪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다. 나는 여성이 직면한 평범한 현실을 읽는 내내 불편해서 견디지 못했고, 결말에 다다를 때는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 소설은 소설 이상의 현실이다. 이 책은 여자들이 겪어왔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겪은 일도 담겨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평범한 현실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나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책을 앉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읽지 못한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인공인 김지영의 과거가 지금의 나 같았고, 현재의 김지영은 미래의 나 같았다. 언론인의 꿈을 꾸는 점, 남아선호 사상이 짙은 집에서 자란 점, 억울하지만 웬만하면 참고 눌러 담는 점 모두가 나처럼 보였다. 화가 났다. 바보같이 왜 당하고만 살까? 답답한 마음에 책을 읽으면서 한 번만이라도 반전이 일어났으면 했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김지영은 끝내 그냥 김지영이 아니라 그보다 더 못한 존재였다. 누가 씹다 버린 껌 같고, 1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으며, 맘충이라고 불린 ‘여자’ 김지영이었다.

책에서 주인공의 언니 김은영은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라고 말한다. 아들 다음으로 취급되는 딸들의 부모에 대한 절규인 이 말은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을 후볐다. 우리 집도 남아선호 사상이 남아있다. 남동생이 있는 나는 집에서 차별을 느낄 때마다 김은영처럼 크게 외쳤다. 그랬더니 나는 오히려 ‘기가 센 여자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자가 기가 세서 도대체 어디 써먹나”란 말이 뒤를 따랐다. ‘왜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비참해지곤 했다. 자신의 그릇에 있던 라면으로 남동생의 그릇을 수북이 채우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김은영처럼 외치고 싶었다. “막내라서가 아니라 아들이라서겠지!”

차라리 <82년생 김자영>의 내용이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내용과 현실이 중복되어 밀려오는 차별감이 더 크게 나를 누르기 때문이다. 한 택시 기사는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은 다 여자들이라고 뒷좌석에 탄 내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 네티즌은 생리컵이 개발되어 구입할 수 있다는 기사에 ‘이제 여자들은 저기에 커피 타 줄 것’이라고 충격적인 댓글을 달았다.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허탈하다. 그토록 많은 지성들이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켰고, 사회를 바꾸려고 법과 제도를 개선했는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했다.

1930년대 영국의 서프러제트(여성인권운동가) 에밀린 펭크허스트가 체포되는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조남주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불편한 이상 저는 앞으로도 불편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설은 태어난 그 시대의 모습을 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에서 펼쳐 보인 불편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맨살 노출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차도르를 입고 명예살인을 당하는 일부 이슬람 여성들도 있지만, 이 책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19세기 <여자의 일생>이나 20세기 초를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가 보여주는 세상과 크게 빗나가 있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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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2017-08-17 01:42:36
좋은 글이네요. 문장이 엄청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