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어질어질한 격랑 속으로 ...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도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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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어질어질한 격랑 속으로 ...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도모하라”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08.12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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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출신 전략가 손무(孫武)가 저술한 <손자병법>은 세상에 나온 지 무려 2500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유효하다. 한국의 육사,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포함, 세계 각국의 고급 장교 양성 학교는 손자병법을 주요 과목으로 설정해놓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영국의 군사역사가 리델 하트는 자신의 저서 <전략론>에서 <손자병법> 내용을 대거 인용하고, “손자병법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병서(兵書)”라고 단언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벌인 작전 이름은 ‘Shock & Awe(충격과 공포)’였다. 압도적 병력을 일거에 투입해 적을 제압한 뒤 즉시 철퇴한다는 게 작전의 골자였다. 국방장관 콜린 파월이 제창한 개념인데, 당시 파월 장관은 “속전속결을 최상지책으로 설정한 <손자병법>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나폴레옹이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유린할 때 늘 옆구리에 끼고 있었던 것도 부하 장교가 번역한 <손자병법> 책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퇴위 후 “손자를 미리 알고 이를 숙독했더라면 전쟁의 결과는 달라져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손자병법> 영어판(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20세기 초중반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군을 이기고, 침략자 일본을 물리치고, 인민의 지지를 획득해 정권을 움켜쥔 마오쩌뚱(毛澤東)도 <손자병법> 애독자였다. 그의 저서 <모순론>, <지구전론>에서 손자의 가르침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천하무적을 자랑하던 러시아 발틱함대를 동해 앞바다에서 침몰시킨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그리고 임진왜란 때 500척이 넘는 왜군의 대규모 함대를 명랑 해전에서 불과 12척으로 궤멸시킨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 역시 손자에서 병법 운용의 혜안을 터득한 인물들이었다.

일본 돗토리 현에 있는 손무의 동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손자병법은 영어로 ‘Art of War’로 번역된다. 10여 년 전 같은 제목으로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의 헐리우드 액션 영화도 나왔다. 영어 이름을 그대로 다시 직역하면 ‘전쟁의 예술’이다. 전쟁의 기술이 아니라 전쟁의 예술이란다. 서양 사람들이 <손자병법>을 읽고 얼마나 수준 높은 기술이라 판단했기에 예술이라 표현했을까.

그러나 제1편 시계(時計)에서부터 제13편 용간(用間)에 이르기까지 손자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실제 전쟁을 치르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전쟁을 고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나 장기전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경고하면서 전쟁을 말리고 있다. 이점과 관련 <손자병법>은 노자(老子)의 도가사상과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요컨대 손자는 실질적인 전쟁을 벌이지 않고 정치 외교 차원에서 적을 이기거나 군사력을 와해시킴으로서 승리하는 것을 최상으로 봤다.

제3편 모공편을 보자.

“무릇 용병의 방법이란(凡用兵之法)나라를 보전하는 게 상책이고(全國?上), 적국을 파괴하는 건 그 다음이다(破國次之). ....이러므로 백전백승이(是故百戰百勝) 최상책은 아니다(非善之善者也). 싸우지 않고서 남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게(不戰而屈人之兵),최상책이다(善之善者也).”

“최상의 전략은 음모를 깨는 것이고(故上兵伐謀), 그 다음이 외교를 깨는 것이고(其次伐交), 그 다음이 군대를 깨는 것이고(其次伐兵), 그 아래가 적의 성을 깨는 것이다(其下攻城)。성을 공격하는 건(攻城之法),부득이한 경우다(?不得已). 장수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將不勝其忿),병사 셋 가운데 하나 꼴로 죽고도(殺士三分之一) 성을 못깨는 것(而城不拔者),이게 공격의 재앙이다(此攻之災也).”

손자는 전쟁을 극히 심각한 것으로 파악했다. “병사(兵事, 전쟁)는 나라의 대사(大事)로 국민의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며 말한다. ”만일 전쟁이 도저히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충분히 상대방의 정보를 수집하고 도(道), 천(天), 지(地), 장(將), 법(法) 등 최상의 조건을 확보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五事)“고 강조한다. 지도자의 심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전쟁을 치러서는 안되며 첫째도 신중, 둘때로 신중, 셋째도 신중하라는 충고다.

손자는 막상 전쟁이 발발하게 됐을 때 발휘해야 할 기술로 ‘7가지 계책(七計)’을 가르친다. “첫째, 적을 알고 나를 알아라. 둘째, 주도권을 쥐고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싸운다. 셋째, 사전에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적의 무방비를 공격, 불의를 찌른다. 넷째, 적과 대치할 때엔 정(正)의 전략을 채용하고 싸울 때는 기습으로 이긴다. 다섯째, 수세일 때엔 숨을 죽이고 인내하며 공세일 때엔 일거에 적을 압도하라...”는 것 등이다. 손자가 단순한 병법 해설서 지위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보편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눈 앞 전투에 승리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국가와의 관계에서 전쟁을 논하는 거대 담론적 특성 때문이다.

동양에 <손자병법>이라면 서양에는 <전쟁론>이 있다.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전문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치가 저술한 전략서다. 철학, 정치학, 군사학 등을 아우르고 있어 군사전문가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힌다. 전쟁의 본질, 전쟁 이론, 전략 일반, 전투, 군사력 혹은 전투력, 방어, 공격, 전쟁 계획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전쟁 본질론이 유명하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사진: 구글 무료 이지미).

같은 병서이지만 <전쟁론>은 <손자병법>과 판이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유럽의 각 전쟁 기록을 분석해 결정적인 회전(會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적 병력을 섬멸하고 적국의 완전한 타도를 목표로 하라”고 가르친다. “군사력의 정면 충돌은 전쟁의 본질이며 전쟁이 붙으면 당사자 국가들은 모든 자원을 동원해 건곤일척의 처절한 총력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전쟁론>의 기본 개념이다. 이 이론이 현실화된 것이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었다. <손자병법>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이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클라우제비츠(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북한과 미국의 기세싸움이 갈수록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트럼프가 "예방전쟁", "화염과 분노"를 운위하자 북한은 괌도에 대한 미사일 포위 폭격을 위협했고, 이에 트럼프는 다시 “군사적 해결책이 완전 준비됐고 장전됐다”고 응수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파고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예방전쟁은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당한 상황인 쪽이 먼저 선수를 쳐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선제공격으로 공격을 준비 중인 적을 제압하고 이쪽은 자국의 국토에서 전쟁이 벌어져 민간인 또는 산업시설이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해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전쟁사에서는 주로 영토가 작고 국력의 차이가 많이 나는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대해 기습한 사례가 대표적인 선수 방어, 예방전쟁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일부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선수 방어 주창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남침시 개전 초에 선제공격을 얻어 맞으면 아무리 반격이 빠르더라도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된 수도권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수 방어, 즉 미리 기습해 북한을 일거에 제압하는 방법 뿐이라는 것이다. 북한 전역을 환하게 들여다보는 전략 위성과 이지스함, 사드 체계 등 태평양 미군의 초정밀 정보력과 압도적 무기 체계의 힘을 빌리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중국이다. 국제 주도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중국이 북한이라는 군사적 완충지대의 해체를 가만히 지켜볼 것인가.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북한과 그냥 동맹도 아니고 혈맹을 내세우고 있다. 마치 인계철선(引繼鐵線)처럼 자동적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다시 불바다가 된다. 한국전쟁 후 어렵사리 일궈놓은 경제도 초토화되고 다시 50년대와 같은 낙후된 ‘원시사회’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기 힘들다. 끔찍한 최악의 시나리오다.

벼랑끝 전술을 펴는 북한의 발악적 공갈협박이 문제지만 이에 대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 발언도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그의 평소 행태에서 볼 때 주위의 견제를 뿌리치고 자칫하면 비이성적 돌발 행동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의 어깨너머로 전개되고 있는 이 험악한 막말 공방전에서 조마조마함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손자병법>은 말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트럼프가 <손자병법>을 읽어봤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의 주변 전략가들에게 손자의 충고를 빌어 당부하고 싶다.

싸워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최상의 용병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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