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세상에 대한 약자의 절규, 영화 '지렁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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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하는 세상에 대한 약자의 절규, 영화 '지렁이'를 보고
  • 부산광역시 김수정
  • 승인 2017.08.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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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광역시 김수정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오래된 한국 속담이다. 지렁이는 힘없는 약자를 의미한다. 영화 <지렁이>를 보기 전까지 내게 이 속담은 그저 힘없는 사람도 무시당하면 화를 낸다는 의미의 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후, 나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 말을 해석하게 됐다.

영화 <지렁이>는 지난 4월 20일에 개봉했다. 각종 기사에서는 <지렁이>가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와 <한공주>의 뒤를 이을 영화라고 보도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나는 우연한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이 영화는 장애인, 성폭행, 학교 폭력 등 각종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24편의 실제 피해 사례가 바탕이 됐고, 그만큼 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화다.

영화 <지렁이>에서 원술과 자야 두 부녀의 단란한 모습(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영화의 주인공인 씩씩한 소녀 ‘자야’는 뇌성마비를 가진 아빠 ‘원술’과 행복하게 살아간다. 양말과 여성 속옷 장사를 하며 열심히 자야를 키우는 원술과 자야, 이 두 부녀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보다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흔히 사람들은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면 괜히 안타까운 마음부터 갖게 된다. 나도 그들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그들을 외면했던 나를 반성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면, 그것이 바로 차별이기 때문이다.

자야는 여느 또래의 친구들과 같이 사춘기를 겪는 소녀지만, 아빠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어린 자야만큼이나 순수한 마음을 지닌 원술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두 부녀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영화를 보는 동안 미소를 짓게된다.

그런 자야에게 불행이 닥친다. 자야의 발목에 채워진 사슬은 바로 가난이었다. 명문 예술고에 합격한 자야는 가난하고 장애인 부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의 대상이 된다. “돈이 없으면 떳떳하기라도 하면 안돼?”라고 소리치던 자야는 꿋꿋하게 버텨낸다. 그러나 세상은 자야의 말에 부정이라도 하듯, 자야를 괴롭힌다. 열심히 세상에 맞서 싸우던 자야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딸을 끔찍하게 잃은 원술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복수하는 장면은 어떻게 보면 가장 통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끔찍했고 잔혹 그 자체다. 딸과 하늘에 떠 있는 달만 바라봐도 해맑게 웃던 아빠는 복수심으로 가득 찬 괴물이 되어간다.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복수가 끝나고, 달빛은 차가운 검은 물에 잠겨버린다. 마치 원술과 자야가 다시는 그 밝은 달빛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것처럼.

마지막 복수를 마친 원술은 결국 자야의 곁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 원술의 신발만을 태운 배 한 척이 바다에 떠 있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내레이션이 내 마음을 울렸다. “구름 같은 사람도, 바람 같은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됩니다. 난 아버집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는 다시 생각해봤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을. 어쩌면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자, 갑질하는 이 세상 사람들 누구라면, 약자를 건드려본 누구라면 두려워해야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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