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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대면(對面)의 종말, 인정(人情)의 종말

기사승인 2017.07.28  23: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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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1980년대 국내 은행의 한 개 지점 직원은 50명을 넘었고, 지점 안엔 직원 식당도 있었으며, 지점장은 기사 딸린 차량이 나왔다. 한 10년 전, 친구가 은행 지점장이 되었다고 해서 만나라 갔다. 직원 10명 내외가 오붓하게 근무하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기사 딸린 차 나오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기름 값만 나온다고 피식 웃었다.

요새는 은행 갈 일이 거의 없다. 인터넷 뱅킹 또는 모바일 뱅킹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부동산 거래로 목돈을 보낼 일이 생겨 은행에 갔더니 통장 가져 왔냐고 직원이 물었다. 은행 통장 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당시에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이건 은행이란 물리적 건물이 있기에 모처럼이긴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인 손님과 사람인 은행 텔러가 만나서 벌어진 사람 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은행 건물이니 통장이니 하는 ‘것들’이 모조리 사라진 은행이 생겼다. 작년 4월에 생긴 K뱅크에 이어 엊그제(27일)는 국내 두 번째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서비스를 개시했다. 영업 첫날에만 14만 명 이상이 계좌를 개설했고, 28만 명 이상이 앱을 다운 받았다고 한다. 첫 하루의 대출 영업 실적은 140여 억 원이고 예금 적금 유치는 36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마도 그 편리함이 인터넷 뱅크 성공의 원인일 것이다. 은행의 건물, 인력에 들이던 비용이나 수수료가 소비자들에게 싸고 좋은 서비스로 되돌려주는 것도 돌풍의 이유일 것이다. 일부 오프라인 은행에 대한 서비스 불만이 인터넷 뱅킹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뱅크에는 은행원과 손님과의 직접 만남이 없다. 양자 사이엔 컴퓨터 기반의 테크놀로지가 있을 뿐이다. 이게 인터넷 뱅크의 장점이지만, 한편으론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요즘 주유소에 가도 사람이 없다. 손님 혼자 기름 넣고, 카드 긁고, 차 몰고 주유소를 나온다. 사이버 강좌라는 것도 생겼다. 미국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최고의 교수가 수백만 수강생에게 양질의 강의를 제공한다. 한국에도 이를 벤치마킹한 K-MOOC가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사이버 강의는 운영 상 가성비는 최고지만, 교수와 학생의 만남이 없다. 젊은이들과 침 튀기며 질문과 응답으로 몇 날 며칠을 대화했다는 기원 전 소크라테스가 울고 갈 일이다.

요새 맥도날드에 갔더니 손님이 말로 주문하고 종업원이 응답하던, 내가 아는 시스템이 없어졌다. 어느새 손님과 종업원 사이를 주문용 터치스크린이 가로 막고 있었다. 담배, 음료수 자판기가 다인 줄 알았더니, 요새는 피자, 꽃다발, 심지어 과일도 자판기로 살 수 있다고 한다. 요즘 회사에선 전자결재가 가능해져서, 상사 안 보고도 결재 올리고 받는 일이 가능해진 지 오래되었다. 인형뽑기방과 무인 모텔 등 무인 점포도 수두룩하다. 사람이 아직도 굳세게 지키고 있는 편의점이 다소 인간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본 소설 <편의점 인간>을 보니 편의점 종업원은 바코드 읽는 기계와 다를 바 없었다.

이게 과연 무슨 종류의 삶일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의 본국과 아프리카의 한 식민지 섬을 오가는 증기선은 2개월에 한 번씩 왕래했다. 그해 9월에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지만 그 식민지 섬에 주둔한 독일, 프랑스, 영국군들은 사이좋게 3등분해서 점령지를 나눠 가지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두 달 뒤에 배가 도착했고, 본국에서 온 신문을 보니 영국과 프랑스가 한 팀이 되어 독일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제야 화들짝 놀란 이들은 전투 상태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이 친구로 지낸 당시 몇 주간은 사실은 적이어야 했다. 전쟁이 끝날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 소식은 식민지 섬에 늦게 도착했으며, 적으로 지낸 그 기간은 사실은 다시 친구였어야 했다. 이 기묘한 기간에 억울하게 전사한 군인도 있었다. 이 실화는 미국의 전설적인 언론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이 쓴 저서 <여론(Public Opiion)>의 서두에 소개되고 있다. 세상일이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림(pictures in our heads)”에 불과하다는 게 리프만의 해석이다.

진료를 인공지능이 하면 환자는 의사와 격리된다. 이처럼, 손님과 종업원, 선생과 학생이 서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대화를 주고받으면 그들의 관계는 실체인가, 단지 우리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 또는 허상인가?

사람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사람의 노동이 끝나가고 있다. 그리고 기계가 사람과 사람의 대면(對面: face to face) 상태를 막고 관계를 방해한다. 대면의 종말 시대가 오고 있다.

이어령 교수는 저서 <디지로그>에서 IT가 RT(관계 기술: Relation Technology)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RT의 산물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통의 테크놀로지들이 얼굴을 대면할 기회를 대체하고 관계를 허구화하고 있다. 

한편, 이어령 교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나로그적인 감성과 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나이(Joseph Nay)는 같은 맥락에서 디지털 시대의 감성의 중요성을 ‘소프트 파워’라 했으며, 본지 객원 칼럼리스트 박기철 교수는 남성적 파괴 문화가 여성적 아름다운 문화로 바뀌어야 세상이 평화롭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령 교수는 또한 황우석 교수를 무너뜨린 것은 IT, BT(생명 기술)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 사랑, 윤리의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모두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인간적 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를 이용하면 단 1분 만에 300만 원의 비상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니 그 편리함이 장점인 것은 사실이다. 방글라데시의 은행가 유누스는 서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을 대출해 주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은행은 사람을 만나서 얼굴 표정과 마음 속 진실을 확인해야 대출해 줄 것이다. 인터넷 은행과 개념 자체가 딴판이다. 무인 점포가 상징하는 세상은 사람은 있어도 관계가 보이지 않는 세상,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대면의 종말이 인정(人情)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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