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증세 논쟁, 걱정스런 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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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증세 논쟁, 걱정스런 프레임 전쟁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7.07.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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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정치는 궁극적으로 한 나라가 돈을 어디서 거둬 어디에 쓰느냐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쓰는 것보다 걷는 게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선뜻 나서기 어려운 일이 바로 세제 개편이다.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형평의 원칙이 지켜지더라도 누가 얼마나 더 내고 덜 내야 하는지 기준을 놓고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보통 수준의 국민들이 먹고 살기 어려울 정도의 세금을 물린다면 조세 저항을 부를 것이다.

공자가 노나라의 혼란에 환멸을 느끼고 제나라로 가던 중 세 개의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여인을 만났다. 사연인 즉, 시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호랑이한테 잡아먹혔다는 것. 이에 공자가 "그런데 왜 이 곳을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여인은 "그래도 여기서 사는 게 낫습니다. 다른 곳에 가면 무거운 세금 때문에 그나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이를 경계하고자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고 했다. 가혹한 정치, 즉 과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 민초들의 피를 빨았던 가렴주구(苛斂誅求)도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의 독립전쟁도 세금에서 촉발됐다. 도화선은 1773년 12월 발생한 ‘보스턴 차 사건.’ 영국 정부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상대로 종이, 유리, 차 등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분노한 식민지 사람들이 보스턴 항의 영국 배에 실린 홍차 상자들을 몽땅 바다에 던져버린 것.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슬로건도 미국의 독립전쟁 때 등장했다. 영국 정부가 미국 동부의 식민지에 대해 세금을 거두면서도 식민지 스스로 선출한 의원을 영국 의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데 대한 식민지 사람들의 저항이었다.

세금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곳간을 위한 것이지만 정책 효과를 함께 노리는 세금도 있다.

18세기 러시아에 등장한 ‘수염세’가 대표적인 사례. 표트르 대제가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수염을 자르는 정책을 추진하다 귀족에 반대에 부딪히자 수염세를 도입한 것. 남자들은 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자르게 됐다고 한다.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방문자에게 부과하는 ‘태양세’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로마 콜로세움을 건설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만든 게 ‘소변세’다. 시민들의 공중화장실의 오줌을 이용해 양털 기름을 제거한 섬유업자들에게 부당 이득을 막기 위해 거둔 것이다. 출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고육책이 호주의 ‘이혼세’다. 에스토니아의 ‘소 방귀세’는 소를 키우는 농가에 부과한다. 메탄가스 배출에 부담을 지운 환경세에 해당한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수단이었던 세금은 이제 걷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쫓고 쫓기는 ‘세금 전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런지 세금만 속이지 않고 제대로 내어도 존경받는 세상이 되었다.

꼼수 없는 상속세 납부로 화제에 올랐던 식품업체 오뚜기가 문재인 대통령의 첫 재계 대화에 중견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초대받았다. 마트에 파견된 시식 담당 사원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한 오뚜기의 경영 원칙에 대한 칭찬 또한 자자하다. 편법 증여가 다반사인 재벌 기업의 행태와는 달리 1500억 원의 상속세를 숨김없이 분납하겠다고 하니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국민들도 놀랄 수밖에. 거기다 라면 값도 10년째 동결했다니 말이 필요 없는 모범 기업이다.

문재인 정부가 오뚜기를 초청하면서 기대하는 효과는 바로 초대 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增稅)를 겨냥한 프레임 선점이 아닌가 싶다. 자유한국당에서 ‘세금 폭탄’ ‘포퓰리즘’ ‘실험 정부 실험 대책’이라고 몰아붙이는 상황인데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세금 폭탄’ 프레임에 휘말려 증세에 실패한 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 김경수 의원이 네티즌들에게 증세 이름을 붙여달라고 하고, 추미애 당 대표가 이번 증세를 ‘명예 과세’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 여당의 이번 세제 개편이 추 대표의 말마따나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시금석이 될지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우선 프레임 대결에서는 정부 여당이 한 발 앞서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상속세를 내지 않고 버젓이 기업을 물려받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게 세금 폭탄이라고 한다면 그런 폭탄은 얼마든지 터뜨려도 되지 않을까 싶다.

김경수 의원의 제안에 네티즌들이 부자나눔세, 노블레스오블리제세, 상생증세, 슈퍼리치세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어떤 이름이든 ‘골고루잘살아보세’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거나 작명으로만 조세 저항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라면 순진한 발상이다. 프레임 대결 또한 말다툼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실천하는데 돈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이를 어떻게 조달할 건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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