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는 벨을 두 번 울리지 않는다...‘딩동’ 소리와 함께 현관문 앞에 홀로 놓인 택배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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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는 벨을 두 번 울리지 않는다...‘딩동’ 소리와 함께 현관문 앞에 홀로 놓인 택배 상자
  • 취재기자 김지언
  • 승인 2017.07.25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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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확인 필요한 등기우편 외에는 문 앞까지만 배송하는 경우 잦아 / 김지언 기자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 소비자들이 당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언).

얼마 전 이재은(23, 부산시 금정구)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느지막한 오후,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에 인터폰 화면으로 현관 밖을 내다봤지만 현관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씨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자, 택배 상자 하나가 문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 씨는 “내가 집에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며 “고객한테 제대로 전달해야 하는 게 택배 기사의 임무인데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택배를 수취인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기존의 배송 관행과 달리 최근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놓아둔 뒤 초인종만 누르고 가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를 달가워하는 시민들도 있다. 

직장인 유모(31) 씨는 “회사 밖으로 잠깐 외출한 사이에 택배 기사님이 전화는 물론 문자 한 통 없이 문 앞에 물건만 놔두고 갔다”며 “가격도 꽤 나가는 물건이었는데 누가 들고 가기라도 했으면 누가 책임질 거냐.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부 김모(28) 씨는 “주문한 물건을 배송 추적해보니 이미 전달됐다고 기록돼 있어서 기사분에게 전화했더니 문 앞에 두고 갔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문을 열고 나가보니 물건은 이미 사라졌는데 분실한 물건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할지 난감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2) 씨는 “심지어는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택배만 던져둔 경우도 봤다”며 “택배 오기만 기다리다가 다음날 어디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집 앞에 택배가 놓여있으면 얼마나 황당하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는 이 같은 현상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트위터리안 jsjh****는 “10kg이 넘는 물건을 배송시킨 적이 있는데 기사 아저씨가 문 앞에 두고 가버렸다”며 “현관문이 택배 상자에 가로막혀 열리지 않아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을 반기고 있다. 주부 조모(33) 씨는 “요즘 하도 세상이 흉흉해서 딸만 둘 키우는 나는 기사가 택배를 문 앞에 두고 가주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오모(24) 씨는 “가끔 택배기사나 배달원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혼자 사는 여자 입장에서는 그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돼 안심이 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택배 기사들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간상 여건이 안 돼 문 앞에 물품을 두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송모(52) 씨는 “그날 도착한 물품들은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서라도 제시간에 갖다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시간에 쫓기다보니 부득이하게 직접 전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객들이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에 따르면, 소비자의 동의 없이 택배 기사가 임의로 집 앞 등 장소에 물건을 두고 간 뒤 택배 물품이 분실되면 택배 기사의 과실로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전에 소비자가 동의하거나 놓고 가라고 요청한 경우에는 소비자가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택배 표준 약관 제20조에 의하면, 택배 업체가 운송물의 수탁, 인도, 보관 및 운송에 관해 주의를 태만히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고객에게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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