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공유 경제? 데이트 폭력과 에어비앤비 사고가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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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공유 경제? 데이트 폭력과 에어비앤비 사고가 비웃는다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07.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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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우버(uber)’라는 택시 서비스가 있다. 이는 자가용이 노는 시간에 자가용 소유자는 돈을 벌고 택시 이용자는 편리하게 목적지에 가도록 스마트폰 앱으로 양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2010년 경 미국에서 시작된 이 신종 모바일 택시 서비스는 카풀 내지는 차량을 타인과 새롭게 공유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이보다 이른 2008년에는 마국에서 빈방이 있는 집을 가진 사람이 여행 중 숙소가 필요한 사람에게 방을 빌려주는 일을 역시 모바일 앱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태어났다. 집주인에게는 엑스트라 수입을, 여행자에게는 가정집 숙박의 편안함을 주니, 이것 역시 집의 공유 형태이며, 이를 사업화한 게 바로 ‘에어비앤비(airbed와 breakfast의 합성어)’다. 2016년 기준 세계 3만 4000여 도시에 200만 개 참여자들이 있다고 한다.

우버는 택시 회사와 전 세게 어디서나 충돌한다. 사진은 폴란드에서 일어난 택시 회사의 우버 항의 집회 장면이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2008년 하버드 법대 로런스 교수는 개개인이 모든 물건을 각자 소유하는 방식에서 필요한 만큼 빌려 쓰고 필요 없는 시간에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소비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공유 경제’라 했다. 이는 소유의 대안이며 일종의 나눠쓰기다.

폴란드 한 에어비앤비 숙소의 이용자 단체 사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요새는 공유 경제를 우버 택시화, 즉 ‘우버화(uberization)’라고 한다.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각자가 사지 말고 필요에 따라 빌려 쓰자는 게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자동차를 공유하는 ‘쏘카’ 서비스도 있고, 한옥을 공유하는 한옥 스테이 ‘코자자’, 아이 옷을 공유하는 ‘키플’, 책을 공유하는 ‘국민도서관 책꽂이’ 등의 공유 서비스가 현재 운영 중이다. 별천지가 아닐 수 없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소유의 종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유 경제, 우버화의 전제 조건이 있다. 신뢰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가 자동차든 집이든 모바일 앱 하나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신청하고 사용하는데, 서로 믿지 못하면 공유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Trust: 신뢰)>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서로 필요한 것은 물질적 자본(돈, 토지, 원료 등)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 즉 구성원 간의 신뢰, 그 신뢰를 통제하는 규범, 신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라고 했다.

일본의 에어비엔비에 참여한 한 남자 집주인이 한국인 여성 손님을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다. 숙소 제공자가 손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짐승처럼 행동한 셈이니 피해자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는 몰카가 발견된 에어비엔비 숙소도 있었다. 에어비앤비는 신뢰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해외여행 갈 때 한 번 이용해 볼까 하는 호기심이 싹 가셨다.

건장한 청년이 한 여성의 배를 발로 걷어차고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하는 동영상이 TV에서 방영됐다. 그들은 연인 사이였으며, 이는 잔혹한 데이트 폭력 장면이었다. 신뢰 없는 사랑의 끝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데이트 폭력으로 8387건이 입건되었다고 하니 입이 안 다물어진다.

시골의 한 여고에서 한 체육교사가 여학생 수십 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 중인 사건도 발생했다. 교사와 학생은 신뢰 없이는 존재 의미도 없다. 20일 언론들은 1000년을 자랑하는 독일 카톨릭 소년 합창단 학교에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60년간 540명의 소년 단원 학생들이 사제와 교사들로부터 신체적 학대와 성폭력을 당한 사실이 폭로되었다고 보도했다. 보스턴 글로브 지의 가톨릭 보스턴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추적 보도한 실화를 영화화한 <스포트라이트>와 유사한 사건이 또 터진 모양이다.

독거노인들도 고아가 아닌 이상 한 때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고독사할 때 그 가족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한 때 애지중지하던 반려동물을 길가에 버리는 사람들이나, 예약을 펑크 내고 안 나타나는 노쇼 족이나, 국정 농단에 빠져버린 위정자들이나 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등진 철면피들이다.

인간관계의 배신이 싫어서 아예 인간관계를 의도적으로 끊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관계의 권태기를 뜻하는 ‘관태기’에 빠졌다고 한다. 이들은 혼밥, 혼술, 혼행(혼자 여행), 혼영(혼자 영화 감상), 혼고(혼자 치는 고스톱)까지 즐긴다고 하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공유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문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믿을 놈 하나 없는 세상에서 신뢰 기반의 공유 경제가 가능할까?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정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다는 세태는 신뢰 부재의 가면적 인간관계를 조롱한다.

김춘남 시인의 <안전벨트>라는 동시 속 오누이의 '신뢰'가 전 세계의 어른들 고개를 못들게 한다. 

전동차를 탄 오누이 / 초등학생 누나가 / 제 무릎 위에 앉힌 / 유치원 동생을 / 두 팔로 / 꼬옥 / 껴안으면서 / 말한다 / “안전벨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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