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말하기가 두려워요" 데이트 폭력에 '안전 이별' 관심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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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자 말하기가 두려워요" 데이트 폭력에 '안전 이별' 관심도 급증
  • 취재기자 김지언
  • 승인 2017.07.2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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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통보에 폭력 휘두르는 '이별 범죄' 방지 시급...정치권 특례법 제정 움직임도 / 김지언 기자
이별을 고하면 폭행,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잦아짐에 따라 '안전 이별'을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지난해 8월 종영한 JTBC 드라마 <청춘시대>는 최근 악질 범죄로 대두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그려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정예은(한승연 분)이 자신에 열등감을 가진 남자 친구에 의해 차에서 강제로 끌어내려지고 무차별적 폭언을 듣는가 하면 ‘헤어지자’고 했다가 감금·결박당하고 남자 친구가 휘두르는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헤어진 연인 또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종 범죄 ‘데이트 폭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이를 피해 최대한 순조롭게 헤어지고자 하는 ‘안전 이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안전 이별이란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스토킹, 감금, 구타, 협박 없이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며 이별하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와 함께 연인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를 의미하는 ‘이별 범죄’도 새롭게 떠올랐다.

앞서 지난 19일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서 손모(22) 씨가 여자 친구인 A 씨의 이별 통보를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트럭을 몰아 A 씨에게 돌진하는 사건이 일어나 시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 집중 단속·수사 결과 9364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8367명이 입건됐다. 아울러 지난해 연인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혐의로 입건된 사람은 52명에 이르렀으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33명이 연인에 의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일시적인 문제라고 여기거나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경우에는 피해자의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밝혀지지 않은 범죄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포털 사이트에서 ‘안전 이별’을 검색하자, 여러 가지 지침이 쏟아져 나왔다. 단 둘만 있는 공간에서의 이별 통보는 피할 것,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힐 것, 협박 등이 심해질 경우 법적인 제재를 가할 것 등 피해를 입지 않고 이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인터넷상에 만연하게 퍼져있었다.

데이트 폭력은 남성들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데이트 폭력 피해자 이모 씨는 “이별 통보를 하자 여자 친구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 앞에 찾아와 나를 걷어차고 난동을 부렸다”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 심모 씨는 “안전하게 이별하려고 내 마음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면서 몇 달을 버텼다”며 “‘내가 왜 이렇게 부당하게 당해야 하나’ 싶어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트위터리안 mymi****는 “요즘 여성들이 서로 ‘안전 이별 하세요’라고 조언하는 걸 보면 딸 키우기 정말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분들, 데이트 폭력 신고 제발 하찮게 여기지 말아 달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트위터리안 tuva****는 “갖은 애를 써서 노력해야만 안전이별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충격적”이라며 경악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에 대한 특례법을 제정한 상태다. 영국에서는 2009년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사건 발생 후 상대방의 폭력전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클레어법’이 시행되고 있다. 1994년부터 미국에서는 민사상 접근 금지 명령을 중심으로 한 데이트 폭력 처벌 규정을 담은 ‘여성폭력방지법’을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2월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데이트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가 해산되면서 자연스럽게 폐기됐다. 이에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데이트 폭력 방지 및 처벌 강화 입법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약자에 대한 폭력은 가장 치졸한 비인간적 범죄”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창원대학교 법학과 류병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입법, 사법, 행정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 및 사회단체가 데이트 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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