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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천안문) 사태, 류샤오보, 그리고 중국의 민주화

기사승인 2017.07.15  06: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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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인 정태철

1989년 톈안먼(천안문) 중국 민주화 운동은 ‘탱크 앞 남자’ 사진으로 중국민의 강렬한 민주화 투쟁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 톈안먼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어 투옥, 출소, 민주화 투쟁을 반복했던 중국 민주화 운동의 대부 류샤오보가 어제(13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돌연 류샤오보의 꿈대로 중국이 민주화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1989년 중국의 톈안먼 사태 당시 '탱크 앞의 남자'로 널리 알려진 사진. 이 사진은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하며, 이 남자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살해되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사실이 증명되지는 않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969년 미중 수교 이후 시장경제가 급속히 확산된 중국을 보고 1990년대 정치학자들은 ‘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라 불렀다. 이는 사적 소유가 제한되는 사회주의 기반에 시장경제가 일부 가미된 체제라는 의미였다. 그후 중국은 우리나라와도 수교했으며, 21세기에는 중국 대륙에 한국은 물론 세계적 기업과 투자자들이 몰려왔다.

국내 대학가에도 중국 유학생 유치 특수가 시작되면서, 나는 2005년부터 약 4년간 국제 교류를 담당하는 대학 처장 일을 맡아 중국을 수 없이 방문했다.

한번은 청도의 자매 대학 안내인과 저녁 식사 후 시내를 걸어 호텔로 가던 중, 나이트클럽 네온사인이 보였다. 중국의 나이트클럽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호기심이 일어, 우리 일행은 안내인의 중재로 클럽 입구의 건장한 사내들의 허락을 받고 약 10분 정도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대륙의 나이트클럽은 규모가 달랐다. 초등학교 운동장만한 거대 플로워 위에 수백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번쩍이는 조명과 귀를 찢을 듯한 음향에 맞춰 발바닥이 닳도록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장면은 중국은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그런데 내가 방문한 중국 자매 대학들의 조직이 한결같이 이상했다. 총장 위에는 대학 당서기가 있었고, 학장 위에는 단과대학 당서기가 있었다. 그리고 대학 당서기와 총장이 한 자리에 있으면, 항상 당서기가 상석을 차지했다.

정주대학을 방문했을 때, 중국 상(商)나라 유물을 모아 놓은 박물관 구경을 하게 되었다. 일요일인 그날,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학교 직원이 역사학과 교수를 부르겠다고 전화를 하려했다. 우리는 기겁을 하고 일요일인데 굳이 해설을 위해 교수를 오라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다. 그러나 그 직원은 “내가 부르면 오게 돼 있다”면서 호기를 부렸고, 실제로 늙수그레한 역사학과 교수 한 분이 달려와 우리 일행에게 박물관을 안내했다. 나중에 우리는 그 직원은 공산당원이고 그 교수는 비당원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공산당의 그림자가 상아탑 중국 대학에까지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중국 대학 저녁 만찬 자리에서 '마호타이'란 고급 중국 백주가 나왔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마호타이는 가짜가 많다고 들었다고 하자, 그 대학 당서기가 “감히 공산당에 가짜 백주를 납품할 간큰 업자는 중국에 없다”고 단언했다. 전두환 시절의 보안사 '끗발' 같은 공산당의 당당한 위세가 느껴졌다.

적어도 내눈에 중국의 정체(政體)는 공산당이 통치하는 1당 독재국가였다. 그리고 그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나 마오이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중국의 정권을 장악한 독점적 권력 집단일 뿐이었다. 과거 세계의 여느 군부 독재 정권처럼.

최근 국내의 중국 유학생들로부터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중국에서는 맘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또 대학생들은 아직도 군사훈련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깜짝 놀랄 일이다. 사드 문제 발생 후, 국내에 중국 단체 관광객이 끊기고, 롯데 등 한국 기업 불매 운동이 중국 현지에서 일사분란하게 벌어진 것이 국가 통제에 따른 관제 현상임이 분명하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하는 동북공정도 관제 역사 왜곡 냄새가 진동한다. 전 세계가 류샤오보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의 물결을 이루는데도, 정작 중국에서는 류샤오보 이름이 인터넷 검색도 안되고 사실 보도도 찾아 보기 힘들다고 한다. 중국의 정치 현실과 언론 통제가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국내 촛불 집회 때 회자됐던 '이게 나라냐'라는 유행어가 떠오른다. 중국은 통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란 저서에서 민주화된 나라끼리는 전쟁 위험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 독일과 프랑스 등 선진 민주 국가끼리 전쟁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했다. 그들 국가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언론과 시민 여론의 견제를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직후, 미국 정계에서는 중국의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에 항의하기 위해서 저개발 국가에게 부여했던 무역 최혜국 지위를 중국으로부터 박탈하자는 견해가 득세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성장이 종국에는 중국의 민주화를 촉진한다는 주장이 더 우세해서 중국의 무역 최혜국 대우는 지속됐다. 잘 살게 되면 교육을 더 많이 받을 것이고, 그러면 중국인들의 권리 의식이 강해져서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언젠가는 다시 점화된다는 논리였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선 산업화, 후 민주화가 그 모범 사례일 것이다.

한 서양인이 중국에서 류샤오보 석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기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저서 <강대국 국제 정치의 비극>은 세계 역사는 강대국 간 끊임없는 ‘패권 경쟁’의 연속이어서 세계의 미래는 낙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위주의 국가가 군사력이 커지면 그래서 더 위험하다. 1당 독재국가인 중국은 여론을 무시하고 자유, 인권, 인류애 같은 세계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의사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당 독재국가인 중국은 중화사상과 같은 민족주의로 국민의 후원을 유도할 가능성도 높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가 그 대표적 사례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 민주화가 우리 통일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비민주적 대국이 옆에 있다는 건 근본적으로 껄끄럽다. 류샤오보의 죽음을 보며, 중국의 비민주적 현실을 다시 우려하게 됐다.  

발행인 정태철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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