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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2 오레곤 대학교 언론학 학사 / 장원호

기사승인 2017.07.14  06: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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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고학하는 유학생] 할머니 자취집과 백화점 알바의 추억

('④-1 오레곤 대학교 언론학 학사'에서 계속) 

나는 기숙사 생활을 청산하고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숙사의 음식은 불평 없이 먹을 수 있었지만 새벽 2시에 돌아와 잠 자리에 드는 바람에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은 늦잠을 자게 되어 배식 시간이 정해진 아침식사를 못 먹는 날이 태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알래스카 출신인 룸메이트가 좀 쌀쌀한 날도 문을 열어 놓아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하고, 일하고 새벽에 들어올 때마다 그 친구의 곤한 잠을 방해하는 게 미안해 결국 기숙사를 나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새로 얻은 방은 학교 본관에서 약 200m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으며 국민 학교 교사를 오래하다가 은퇴하여 혼자 사는 맥래(MacRae)라는 할머니의 집이었습니다. 2층집의 꼭대기에 있어서 지붕을 하늘로 두고 자야 하는 방이었다. 방 한 편으로는 침대와 책상이 있었고, 창문을 열면 뒷뜰 정원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집이 좋았던 것은 본의 아니게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원래 집안 일에는 게으를 대로 게으른 내 방을 할머니가 날마다 말끔히 청소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세를 놓는다는 마음보다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혼자 사는 외로움을 덜고픈 생각이 큰 듯했으며, 학생들 중에서도 한국 학생을 선호한 덕에 그 집에는 나 말고도 한국 학생이 세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한국외국어대학 사범대학장을 지냈고 한국 신학대학 교수를 지낸 예영수 박사였고, 또 한 명은 워싱턴에서 미생물학으로 방역 관계 연구원으로 있었던 윤지용 박사였습니다.

냉장고는 큰 것이 2개나 있었지만 부엌은 하나뿐이어서 셋이 같이 써야 했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기꺼워했습니다. 서투른 솜씨로 함께 만든 한국 음식을 놓고 셋이 자화자찬을 해가면서 먹는 맛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대로 된 음식을 해 먹으려면 들여야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메뉴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그 음식을 '유학탕'이라 불렀습니다. 힘을 하나도 안 들여야 한다는 것을 원칙에 충실한 이 유학탕은 파, 마늘, 고기 등 모든 재료를 다 넣고 끓이는 국인데, 이것도 여러 번 요리하다 보니 무엇을 먼저 넣고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그 맛이 전혀 달라진다는 시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맛이 입에 오래 붙어 있을 리가 만무했으며, 그러면 우리는 또 색다른 음식, 아니 우리가 아직 만들지 않은 음식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저마다 각지에서 조달해오는 재료로 만든 신종 한국 음식이 됐습니다.

나의 비상 음식 공급처는 박 씨 농장이었습니다. 음식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정이 많이들은 곳이라 가끔씩 그곳에 들렀는데, 어느 해 새해 인사를 하러 갔었을 때에는 할머니가 또 예의 그 눈물을 흘리시면서 “얼마 나 고생이 많누?” 하고는 크게 자른 무쪽이 성성이 들어 있는 김장 김치를 챙겨 주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김치 맛을 따라가는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을 만큼 그것은 달고도 맛 났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정성 때문이었겠지요.

보스톤 벗은 우리말로는 목살 부분이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루는 토요일 오후에 이 김치를 넣고 찌게를 해먹어 보자며 세 친구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보스톤 벗(boston butt)'이라고 불리는 돼지 목살 부분을 썰어놓고 찌개를 끓였습나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으려는 찰나였습니다. 맥래 할머니와 그 집에 살던 외국 학생 한 명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해짐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오우, 노우” 하면서 온 집안 문을 열어놓고 불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이웃집 할머니까지 찾아와서 이게 무슨 냄새냐며 면박을 줄 때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다시는 집안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 수 없다는 할머니의 엄명(?)을 받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또 그 찌게가 눈앞에 삼삼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동네 공원에 나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게를 끓여 먹었는데, 그맛은 집안에서 혼나며 먹는 그 맛 같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서로의 '까다로운 입맛'을 탓하며 집안에서 해먹을 수 있게 되는 날만을 암중모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봄이 되면 뒷마당에는 잔디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마당이 하도 넓어서 그 잔디를 깎는 데만 해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것을 동네 중학생 아이 한 명이 아르바이트로 가끔씩 와서 깎곤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동안 그 아이의 모습이 도대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잔디가 자꾸 자라자, 할머니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식사 시간에 그 아이를 원망하듯이 지나가는 말로 하는 소리를 들은 나는 학교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오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잔디를 말끔히 깎아 버렸습니다.

외출했다 돌아 온 할머니는 깜짝 놀라더니 고맙다며 얼마를 주어야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공짜에요” 하니 더 고마워하며 잘 정리된 잔디가 아름답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내 방을 말끔히 치워 주는 할머니의 정성을 생각하면 사실 그것은 오랜만에 내가 해드린 보답이었지, 할머니를 위한 특별 서비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진정으로 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닌 탓에 나중에는 오히려 내가 미안해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쌓인 정 때문에 나에게 그 집은 왠지 내 집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습니다.

할머니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 다음부터는 나를 더욱 친 자식처럼 여겨 주고 가끔은 할머니가 간식을 가지고 공부하는 내 방문을 노크하곤 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 때까지 나는 그렇게 즐겁게 지냈습니다.

할머니의 따뜻한 정으로 인해 한동안은 고향집 생각을 덜 하는 듯도 했으나,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한국에 있는 아내를 데려 와야 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져 갔습니다. 학교 생활도 안정되고, 경제 사정도 좋아졌으니, 굳이 떨어져 살 이유가 없을 듯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값 450달러는 역시 나에게 적잖은 돈이었고, 수중에 그만큼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내 사정을 안 할머니는 넉넉한 웃음과 함께 돈을 빌려 주셨습니다. 

영수증도 이자도 필요 없고, 오로지 내가 갚을 수 있다고 생각될 때 갚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해서 아내를 데려 왔습니다. 그리고는 여름 방학에 열심히 일하여 할머니로부터 꾼 돈을 바로 갚았으며, 나와 할머니는 저녁 식사도 함께 했는데, 할머니는 돈을 돌려받을 때도 역시 그 넉넉한 웃음으로 나의 고마움을 함께 받아 주셨습니다.

백화점에서 청소 일을 하도 열심히 하니까 관리인의 눈에 들었던지, 봄이 되면서 나는 부책임자의 지위로 승격, 나이가 많은 '죠'라는 책임자가 안 나올 때는 수천만 달러의 물건이 있는 백화점의 모든 열쇠를 맡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청소 파트에서 빈자리가 생길 때는 사람 채용에도 관여하게 됐습니다.

나는 밤 9시에 출근하여 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커피도 얻어 마시고 그 날 일할 자리를 배정받았으며, 자정이 되면 식당에서 청소원들을 위해 남겨놓은 야식을 먹으면서 비교적 쉬운 일을 했는데, 급료도 올라서 시간당 2달러 25센트를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백화점 측은 그 다음에 한국 사람을 둘이나 더 채용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미국에서 궂은 일 열심히 하는 '의지의 한국인' 중의 한 명 역할을 톡톡히 했나봅니다.

당시 일했던 백화점 전경(사진: 장원호 박사 제공)

나는 직원으로서 백화점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 말고도, 다른 유학생들을 위해서도 “착한 일” 한 가지를 했는데, 그것은 직원이어서 물건을 사면 받는 20% 할인 혜택을 다른 한국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사는 물건은 모두 내가 구매하는 것으로 하여 직원 할인을 받게 해주었습니다.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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