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사다리, 사법시험 55년 만에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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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다리, 사법시험 55년 만에 역사 속으로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06.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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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치 논란은 현재 진행형…"서민 출세길 막혀" vs "사시도 돈 없으면 못해" / 정인혜 기자
사법시험이 지난 21일부터 사흘간 치러진 제59회 시험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사진: 더 팩트 제공).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뒤 막노동을 병행하던 남자 송우석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다. 영화 <변호인>의 줄거리 일부다. 하지만 이런 장면은 이제 영화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불려온 사법시험이 올해 시험을 끝으로 폐지됐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치러진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을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됐다. 지난 1963년부터 사법시험이 시행된 지 55년 만이다.

사법시험은 법조인이 될 자격을 검증하는 시험이다. 오직 성적으로만 합격자를 가린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계층 상승’ 채널로 꼽혀왔다. 이런 의미에서 개천에서 용이 된 남녀를 뜻하는 ‘개룡남 개룡녀’라는 단어는 주로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여 왔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폐지됨에 따라 앞으로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로스쿨 제도는 사법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던 김영삼 정권에서 논의되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7년 ‘로스쿨법’이 제정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법시험은 이때부터 선발 인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해 지난 24일 마지막 시험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오랜 논의 기간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 존치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분과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든 노력과 실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공정 사회의 상징적 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며 “사법시험 존치는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가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학벌과 재력, 집안의 배경과 상관없이 노력하는 이라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사법시험은 누구든 노력과 실력으로 시험에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사법시험의 문제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시촌을 전전하는 ‘고시 낭인’과, 제한된 합격 인원 탓에 ‘장수생’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사법시험의 합격률이 2.93%에 불과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사법시험 폐지에 동의한다는 한 변호사는 “사법시험은 과거 급제에 준할 정도로 3%도 안 되는 낮은 합격률을 보이는데, 나머지 97%의 우수한 인재들이 고시에만 매달리는 폐단을 없애야 한다”며 “사법시험 폐단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존치하자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찬반으로 갈려 격론을 펼치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한 네티즌은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지도, 시도도 되지 못하게 사법시험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돈 없으면 법조계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온당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사법고시 폐지에 찬성하는 한 네티즌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요즘에는 사법고시도 돈 없으면 준비 못 하는 것 다 알지 않느냐”며 “차라리 장학제도가 더 나은 로스쿨로 일원화하는 게 저소득층 입장에서도 훨씬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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