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발품, 남다른 소통으로 얻어낸 "우리 박 통장"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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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발품, 남다른 소통으로 얻어낸 "우리 박 통장" 별명
  • 취재기자 임소강
  • 승인 2017.06.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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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1동 박귀선 통장..."독거노인 많은 가난한 동네지만 고독사는 한 명도 없어요" / 임소강 기자

부산시 남구 대연 1동 29통 박귀선 통장(53)은 주민들로부터 ‘우리 박 통장’으로 불린다. 주민들이 골목 모퉁이에서 그를 향해 “아이고~ 우리 박 통장”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 목소리에는 남다른 친근감이 듬뿍 묻어난다. 통장이 된 지 5년째, '우리 박 통장'은 주민들과 희로해락을 함께 해 온 두터운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그의 별명이다.

대연 1동 29통은 10년 간 기약 없는 재개발 계획으로 인구 유출이 많은 동네다. 현재 노인과 차상위 계층 주민들이 다수다. 연고가 없는 독거노인도 적지 않다. 그래서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에서 박 통장이 주로 하는 일은 어르신께 직접 방문하기. 최근 우리 이웃 간의 소통 단절과 무관심으로 고독사하는 노인 얘기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러나 우리 박 통장이 있는 29통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박귀선 통장은 노인들이 거동이 불편한 점을 감안해 번거롭더라도 직접 가정을 방문해 주민들을 만난다. 매달 구청에서 배포하는 남구신문을 비롯해 예방 접종, 보조 기구 지원, 경로 행사 등 주민들이 놓치기 쉬운 정보들을 직접 전달하며 안부를 묻는다.

남구신문을 배부하기 위해 가정에 직접 방문하는 박귀선 통장(사진: 취재기자 임소강).

지난 2013년 남구는 복지 사각 지대 해소를 위한 ‘온 발굴단’을 발족시켰다. 박귀선 통장 역시 단원으로 임명되어 복지 통장으로서 활동했다. 그의 작은 폴더 폰에는 수백 개의 통민들 연락처가 가득하다.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과 언제든지 연락하기 위해서다. 생계 절벽의 위험에 놓인 주민들을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연계하는 역할도 한다. 국가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치더라도 사각 지대는 존재한다. 자칫 놓칠 수 있는 곳까지 박 통장의 손길이 전달되는 것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통장 만족도는 높다. 29통 주민 주순자(78) 씨는 “곤란한 일이 생길 때 언제든지 들어주는 통장이 있어 고맙다”고 했다. 비록 ‘가난한 동네’라는 타이틀을 가진 곳이지만, 29통은 지난 해 남구에서 가장 많은 적십자 회비를 납부했다. 작은 기부 활동이지만 박 통장의 설득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다. 주민들은 우리 박 통장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얇은 지갑을 선뜻 열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11월, 박귀선 씨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원래 박 통장은 ‘신발 집 딸내미’로 유명했다. 그의 친정은 대연동에서 40년 째 신발 가게를 운영 중이다. 장사하기 전부터 살았던 세월을 포함하면 5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대연동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가게는 매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신발 사러 온 손님이 아니라 친정 어머니의 친구들이자 동네 주민들이 방문한다. 판매 수익은 거의 없지만, 신발 가게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약속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그의 친정 어머니는 “딸이 통장이 된 이후 박 통장네 집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소방서에서 제공한 화재 경보기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박귀선 통장과 설명을 듣고 있는 동네 주민들(사진: 취재기자 임소강).

박귀선 씨는 올 해로 10년 째 주민 자율 방범 활동의 총무로도 활동하고 있다. 매주 화·수요일 저녁 주민 방범대원들과 함께 대연동 일대를 순찰한다. 방범 활동은 그가 통장이 되기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혼자 하교하는 학생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밤에는 가로등이 없는 우범 지역을 살피기도 한다. 인구가 적고 골목이 많은 동네 특성상 사람들이 골목을 다니는 것만으로도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그런다고 도둑이 없어지겠냐”고 회의적으로 반응했던 주민들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먼저 “충성! 수고하십니다”하며 군댜식 거수경례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는 단 한 번도 방범 활동을 생략한 적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해서 걱정이 많다. 이 동네 부모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에서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박 통장에게 방 범활동 시간은 통장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진심’이 담긴 활동이다. 그의 노고가 알려지자, 부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12월 그녀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그는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이다. 함께 해준 방범 대원분들게 감사하다”며 방범 활동을 계속할 뜻을 밝혔다.

방범 활동을 하는 주민들과 박귀선 통장(사진: 취재기자 임소강).

박귀선 통장은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며 오히려 힘을 얻는다”며 “나는 많은 돈을 기부할 수 있는 부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내 자리에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계속해서 주민이자 통장으로서 우리 동네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불통을 거울삼아 새 정부는 ‘소통’을 사회적 최대 화두로 내걸고 있다. 발품을 팔아 주민들을 위무하고 교감하는 ‘우리 박 통장’의 소통 행정에서 우리는 그 작은 형태의 모델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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