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자 택시 드라이버, 46년째 핸들 잡고 거리 누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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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 택시 드라이버, 46년째 핸들 잡고 거리 누벼요"
  • 취재기자 김유리
  • 승인 2017.06.0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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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기사모임 회장 최소숙 씨 "길 위의 에피소드 산더미"...회원과 무료 급식 봉사도 / 김유리 기자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유명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가 옛날에 택시 기사였단다. 언제나 도로 위에는 택시가 달린다. 우리는 도로 위의 택시를 날마다 보고 수시로 탄다. 만인의 승용차인 택시 안에는 만인의 기사인 택시 기사가 있다.

전국 택시운송사업 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3월 31일 기준으로 전국의 택시는 25만 3618대다. 모범 개인택시는 1918대. 그 중 한 대를 운전하는 여성 택시기사가 있다. 부산 북부 모범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그는 부산 여자개인택시 운전자회(여운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여운회 회장 최소숙 씨는 올해 나이 70이 무색할 만큼 얼굴이 곱다. 그는 부산 여운회를 2010년 9월에 설립했다. 처음에는 뜻이 같은 선후배 16명이 모여 정보를 주고받자고 창립했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져 80명을 훌쩍 넘겼다. 처음부터 3대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회장이 바로 최 씨다. 여운회는 한 달에 한 번 월례회를 가진다. 그날이 오면, 여운회 회원들은 택시 운전할 때 겪었던 경험들과 정보들을 공유하느라 까르르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최 씨는 항상 모임의 기둥이다.

최소숙(70) 부산 여자 개인택시 운전자회 회장. 일흔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곱다(사진: 취재기자 김유리).
여운회 월례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서로의 경험과 정보를 교류한다(사진: 취재기자 김유리).

어린 시절을 경남 창녕에서 보낸 그녀는 21세 때 부산에 올라왔다. “나라를 위해 무언가 일을 하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를 부모에게 전하고 고향을 떠났다고. 타월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던 최 씨는 매일 똑 같은 일을 남들과 같이 한다는 사실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색다른 직업을 찾던 최 씨에게 택시기사가 갑자기 머리에 자리 떠올랐다. 날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먼 곳을 갈 수 있다는 점이 그녀의 관심을 끌게 했다. 덥석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에게 주위에서 말이 많았다. 최 씨는 “1970년대만  해도 운전은 남자만 하던 일이었는데 여자인 내가 운전을 배워 기사가 되겠다니 다들 주위에서 '가시나가 미쳤냐'는 소리를 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그래도 꿋꿋이 운전을 배워 부산의 택시회사인 영남택시에 기사로 들어갔다. 그해가 1971년이었다. 그리고 무사고 경력으로 개인택시를 받을 자격이 되자 1990년 개인택시 기사로 전환, 현재까지 모범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모범 개인택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부산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그는 “운전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그녀에게선 언제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는 손님을 태울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46년 기사 경력에 수 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그녀를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힘들게 했다.

그녀는 1년 전 택시에 탄 한 손님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옛 동창을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기분이 너무 좋다는 한 손님이 택시비 이외에 2만 원을 팁으로 더 준 것이다. 그녀는 “그날 하루종일 너무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꼈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분 좋은 손님만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간혹 민폐 손님이 있다. 손님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빨리 계산하고 내려야 기사들은 다른 손님을 곧바로 태울 수 있다. 그러나 목적지에 다 와서 돈을 치렀는데도 바로 내리지 않고 이것저것 말을 거는 손님을 간혹 만나기도 한다. 그런 순간에 마침 앞에서 기다리던 손님을 태우지 못할 때는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한다. 그는 “손님들이 조금만 매너를 갖추고 기사들을 대해 주시면 우리도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여자 택시기사로서 겪는 불편한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차선을 변경하는 상황에서 운전석에 여자가 있는 것을 보고 일반 운전자들이 고의로 양보를 잘 해주지 않는 일은 자주 겪는다. 양보는커녕 도리어 끼어드는 차도 많다. 그는 “여자가 운전하는 것을 만만하게 보고 운전 매너를 잘 지켜주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손님들도 여자 기사를 깔보는 경우도 많단다. 그녀는 술을 마신 손님들이 반말을 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일을 수없이 많이 겪었다. 그는 “여자 기사를 똑같은 택시 기사로 보는 인식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욕구 중에는 식욕이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배고플 때가 생기기 마련이다. 최 씨도 장시간 운전을 하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기다려진다. 그래서 전국의 맛집을 기사들이 꽉 잡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주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지만, 부산 택시 기사 경력 45년의 베테랑 최 기사가 꼽는 부산의 맛집은 조방 인근의 음식점이라고 한다. 그녀는 “조방 앞 음식들이 대체로 맛이 좋다. 주로 영빈 횟집이나 한빛 기사 식당을 가는데 맛있고 편안해서 자주 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여운회 회원들과 함께 매달 꾸준히 ‘밥 퍼 봉사’라는 무료 노인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 장을 보고 직접 요리를 해서 매 달 셋 째 주 월요일에 초읍 어린이 대공원 주차장 옆 공터에서 급식소 봉사를 진행한다. 무료 급식소에 많이 찾아와 주는 어르신들 덕분에 봉사할 힘이 나고 매번 봉사 날이 기다려진단다. 그는 “자주 오시는 어르신들이 맛있다거나 수고한다고 해주시는 말 한 마디 덕분에 힘이 나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밥 퍼 봉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부전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는 최소숙 여운회 회장과 동료 회원들(사진: 취재기자 김유리).

최소숙 여운회 회장이 가지는 불만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화장실 문제다. 택시기사들은 급하면 근처 화장실을 찾아서 화장실 인근에 차를 주차해야 하는데 도로마다 CCTV가 설치돼 있어서 5분 이상 차를 세워 놓을 수가 없다고 한다. 주정차 단속 시간 5분 이내에 볼일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여자는 남자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가 많고, 여자 화장실에는 줄을 많이 서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는 “특히 해운대 센텀 신세계 백화점 주변 같이 도심에서 볼일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택시에 한해서 주정차 단속 시간을 현행 5분에서 10분으로 늘려줬으면 우리 여자 택시기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일찍 결혼해서 예쁜 가정을 꾸려던 게 꿈이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당시로선 만혼인 서른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하고 나서도 택시기사 일을 계속 하다 보니 딸과 가정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을 달고 산단다. 최 씨는 외동딸과의 남다른 애정을 뽐냈다. 서울로 시집보낸 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귀한 딸과 매일 연락하는 각별한 사이라고. 날마다 영상 통화로 딸과 손녀를 만나며 서울과 부산 간의 먼 거리를 뛰어 넘고 있다. 핸드폰 배경 화면 속 가족사진을 보여주던 그는 “나는 9남매 속에서 자랐는데 하나 뿐인 내 딸이 혼자 잘 큰 것 같아서 대견하고도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딸이 떠난 그녀의 곁에는 택시기사 동료들이 있다. 낳아준 부모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잘 알아준다는 동료들이 있어 항상 든든하단다. 그는 “김영자 북부 모범 회장님과 가장 마음이 잘 맞고 또 나를 잘 챙겨준다. 그리고 우리 김중근 소장님과 박삼병 사무지부장이 누나라고 부르면서 나를 잘 따라줘서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동료애를 자랑하듯 동료들의 실명을 말할 때 더 힘을 주었다.

그녀는 “밥 잘 먹고, 열심히 놀고, 지금까지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 모든 일에 만족을 느끼고 긍정적이게 사는 게 최고다. 바보 '비스무리' 하게 사니 참 행복하다”고 말하며 다시 핸들을 잡고 택시를 몰아 바람처럼 도로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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