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가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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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가 느리다
  • 취재기자 강지현
  • 승인 2013.05.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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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컬레이터 오른쪽은 걷는 사람들에게 양보해 주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다(사진: 강지현 취재기자).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는 걷거나 뛰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있고 잦은 고장 유발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경고문에 아랑곳 없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원래 한국사람들 성질이 급해서일까? 그런 측면도 없지 않지만 일각에서는 국내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느리기 때문에 마음이 바쁜 지하철 승객으로 하여금 자꾸 걷거나 뛰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한 계단에 2인이 탑승 가능한 에스컬레이터일 경우 언제부터인가 '왼쪽은 걷는 사람 용, 오른쪽은 서있는 사람들 용'이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생 김하영(22) 씨는 “저는 느긋하게 가고 싶어서 늘 계단 오른쪽에 타요. 근데 뒤에서 급하다고 빨리 좀 올라가자고 소리치는 사람들 때문에 계단 오른쪽에 서도 걸어 올라가야 할 때가 있어요”라고 불만을 말했다.

최근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원활한 지하철 이용을 위해 승강장과 대합실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높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에스컬레이터 운행 속도가 국제기준에 비해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국립기술품질원 규정에 의하면, 국내 에스컬레이터의 최대 허용 속도는 분속 40m(초속 0.66m)로, 현재 국내 대부분의 에스컬레이터는 분속 30m(초속 0.5m)로 운행 중이다. 서울지하철공사의 통계에 의하면, 서울 지하철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중 가장 긴 6호선 버티고개 역 에스컬레이터의 길이가 43.1m라고 한다. 승강장에서 대합실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데만 약 1분 40초가 걸리는 셈이다.  

한국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비슷한 연간 지하철 이용객을 가진 다른 나라에 비해 느린 편이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피키디아의 2011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서 가장 큰 지하철 노선인 서울 지하철은 연간 지하철 이용객이 25억 1800만 명으로, 세계 지하철 연간 이용객 순위에서 연간 이용객이 30억 명이 넘는 도쿄 지하철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지하철공사와 런던 지하철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연간 이용객 순위에서 3위를 기록한 모스크바 지하철의 역내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분속 50m(초속 0.83m), 11위인 런던 지하철의 역내 에스컬레이터 속도는 분속 45m(초속 0.75m)로 한국보다 훨씬 빠르다.

2011년 연간 지하철 이용객이 14억 8200만 명으로 세계 순위에서 10위로 집계된 홍콩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분속 45m(초속 0.75m)로 한국보다 약 1.5배가 빠르다. 홍콩 전기기계서비스국 승강기 담당자는 시빅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 맞춘 것이며,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일본, 싱가포르도 같은 속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홍콩의 중심지에 있는 센트럴 역이나 홍콩 역에 설치되어 있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시 외곽에 있는 역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보다 빠르게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통근 시간의 역내 번잡함을 줄이는데 효율적이라고 이 담당자는 답변했다.

또한 빠른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이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와 에스컬레이터의 고장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담당자는 덧붙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은 이용자가 걷거나 뛰어올라가는 동안 발생하는데,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빠르니 굳이 급하게 뛰어올라갈 이유가 없어지고, 자연히 사고도 적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홍콩에서 유학중인 대학생 이수현(23) 씨는 “한국에서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느려서 급하면 자주 뛰어올라갔어요. 하지만 홍콩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늘 손잡이를 꽉 잡고 두 줄로 서서 절대로 뛰지 않아요. 속도가 빠르니, 조급해질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2009년부터 실시한 두줄서기 캠페인 정착에도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증가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줄서기는 한국사회서 관행이 된 한줄서기 문화를 대신해 시민의 안전과 에스컬레이터의 고장을 줄이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전기기계 팀의 서정대 차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두줄서기는 계단을 앞지르는 사람과 서서 가는 사람의 충돌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줄로 서서 갈 경우 에스컬레이터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불균형에 의해 한쪽 에스컬레이터의 체인만 늘어납니다”고 말했다. 두줄서기를 통해 이러한 기계적인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고장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지하철에는 한줄서기가 보편적이다. 그게 급한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가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주연(23) 씨는 “솔직히 다들 바빠서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올라갈 때 앞에 사람 있으면 짜증나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이 씨는 바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한줄서기를 계속 유지하는 게 좋겠지만, 만약 지금보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높인다면 두줄서기가 쉬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한때 국립기술품질원에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1999년 2월 4일자 동아일보는 서울시가 공문을 보내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높여달라고 요청했으나 국립기술품질원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공식적 입장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서 차장은 지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조절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높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속도를 높일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서 차장은 대답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는 분속 40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속도를 높인다고 에스컬레이터가 전기가 더 소모되는 것은 아니므로 추가 전력 손실도 없다고 덧붙였다.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시민의 안전을 우려해서다. 서 차장은 젊은 사람들이야 속도를 높여도 문제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지만, 아이들이나 어르신 등 노약자들이 이용하기에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서 차장의 설명이었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높이면 수송량은 높아지겠지만 안전상의 문제가 커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서 차장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처음부터 수송량을 늘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게 올라갈 수 있게 설치한 것이죠. 지금도 어르신들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는데 (속도가 빨라서) 애를 먹었다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올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빠른 외국은 어떨까. 홍콩 전기기계서비스국의 승강기 담당자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빨라서 오히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데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사고가 많이 나지 않는 편이라고 답했다. 홍콩에 거주하는 바바라 웡(76 ) 씨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오래 전부터 역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가 빠른 것에 적응됐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나 같은) 노인들이 이용하기에 빠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만약 에스컬레이터에 타기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면, 그 때는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타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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