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교육정책, 창의성 진작에 전력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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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교육정책, 창의성 진작에 전력 기울여야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05.1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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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 기념 칼럼] 학교기업, 수익성 추구가 능사 아니다 /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며칠 전, 같은 학과 외국인 교수가 나와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최근의 고민 하나를 털어 놨다. 영어로 토론하는 자신의 세미나 수업은 수강생이 10여 명에 불과해 작은 세미나실에서 얼굴을 서로 마주보고 빙 둘러 앉아 수업을 진행한단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매주 수업 시간마다,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러 학생이 고개를 떨구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민망스럽고 황당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 대학 강의실은 ‘잠과의 전쟁터’다. 나는 조는 학생에게는 경고를 주지만 엎드려 자는 학생들은 결석처리 안 할 테니 아예 강의실을 떠나라고 요구한다. 학생들 말에 따르면, ‘수면 상습범’을 그냥 놔두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교수 중엔 정말 수면제처럼 졸리게 강의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모두 국민 강사 설민석처럼 청중을 사로잡을 수도 없다. 강의 시간에 엎드려 잘 정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학생은 교수에게 강의 시작 전에 개인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강의실 밖 다른 공간에서 수면을 취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아마도 일부 대학생들은 중고등학교의 교실붕괴 이유 중 하나인 이런 일탈행위가 대학에서도 묵인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왜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중 수면 행위가 묵인되는지 그 사유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수업 중 피교육자가 자는 행위는 이유가 어찌되었든 교육자에 대한 최악의 모독 행위다. 몇 년 전, 한 중학교 여선생이 수업 중 자는 학생들을 보고 갑자기 북받치는 교육자로서의 자괴감으로 “너희들 정말 왜 이러니...” 하면서 학생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는 말을 지인 자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 밤 새벽까지 알바를 해야 하는 생계형 학생도 개중엔 있다. 실제 상담 중에 그런 안타까운 사연을 고백한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다음날 낮에 무슨 일이 있든지 상관 않고 늦게 잔다.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채팅을 하거나 TV로 영국 축구를 볼 것이다. 그러다가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 강의 시간에 맞춰 놓은 얼람소리에 눈을 뜨고 부리나케 학교로 간다. 잠잘게 게 뻔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맞춰 가는 게 신기하다. 아마도 요즘 출석 체크가 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수업 시작과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잠을 견딜 수 없는 건 당연지사다.

학교를 다니는 목적과 과목별 학습동기를 정확하게 아는 학생은 그렇게 대책 없이 날마다 밤샘하지 않는다. 요즘 학생들은 한마디로 학습 의욕이 없다. 수동적이다. 3포세대, 7포세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잠자는 강의실’이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유치원, 학원, 학교로 부모 손에 이끌려 점수기계로 양성되다보니, 학생들은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환경을 만든 사회와 어른들의 책임을 탓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젊은이들이 이런 식으로 학교에 다니는 한,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노도(怒濤)와 같았던 이번 대선에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공약이 많이 나왔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의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자신의 집무실에 현황판을 설치해서 직접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했다. 다행이고 희망적인 일이다. 그런데 일자리 창출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과거,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을 때는 신생 산업이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로봇과 인공지능이 이끄는 오늘날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출되는 일자리보다 소멸되는 일자리가 더 많다.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사람들보다 그들이 쫓아낼 직업 종사자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찍이 문명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은 이를 “노동의 종말”이라 불렀다.

나라가 부족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자리에 어떤 인재를 공급하느냐는 '교육'이란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떤 생각(태도, 지식)과 어떤 재주(기능, 직무능력)를 가진 인력을 양성할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창의력’이란 독특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도록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한 교육 전문가가 서울대 성적 우수자를 분석했더니 교수가 가르친 대로 답을 적은 학생이 점수를 높게 받았다는 결론을 내놨다. 주입식, 암기식, 사지선다형 교수법이 우리 청춘들의 의욕은 물론 창의력을 억압하고 있었다. 최근 대학가는 ‘거꾸로 수업’, 또는 ‘교육 3.0’이라고 해서 강의식보다는 문제해결식 수업(이를 ‘캡스톤 디자인’ 수업이라고 한다), 또는 토론식 수업을 한창 논의하고 있다. 나 역시 28년간 고수해온 강의 위주의 교수법을 조만간 개선해서 학생들의 잠을 깨우고 싶다.

또 하나, 4차 산업혁명은 이론과 현실, 교실과 현장의 차이를 극복할 직무능력을 가진 인재를 학교 교육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조선일보의 2016년 10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한 기업 임원은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 공학과 나와도 프로그래밍 못하고, 전기공학과 나와도 전기회로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도대체 요새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같은 보도에서 “신입사원에게 업무 지시하면, ‘그런 것 안 배웠다’고 잡아떼는 신입사원이 수두룩하다. 채용을 무를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증언했다.

현장에서 써먹을 수 없는 추상적인 이론을 주입하는 교육은 오래 전부터 질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현장중심 교육, 직무역량 교육, 실무적합형 인재 양성, 이론과 실천이 통합된 교육, 학교/직업세계 연계 교육 등의 구호가 난무했다. 교육부는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사업(LINC, 링크 사업이라고 함)’을 벌여 연간 3000억 원 이상을 수십 개 선정 대학에 매년 40-50억씩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LINC 사업의 성과가 있었을까?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본지 2016년 10월 14일 보도는 현장실습의 허상을 지적하고 있다. 이 보도에서, 현장실습에 투입된 학생들은 “은행에 간 경영학과 학생들은 띠 두르고 손님맞이 인사만 시키고, 유치원에 간 유아교육과 학생들은 하루 종일 유치원 청소만 시키며, 병원에 간 간호학과 학생들은 실습과 관계없는 잡일만 한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사실 공장에서 학생들에게 고가의 기계를 만지게 하거나, 은행에서 학생들에게 돈을 만지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게 현장실습의 한계다.

본지 2017년 4월 20일자 보도는 더 기가 막힌다. 이에 따르면, 취준생들이 신입사원 뽑는다고 해서 면접에 가면 해당 업무에 경력이 있냐고 묻는 일이 많다고 한다. 취준생들은 “회사에서 취준생들에게 경력을 요구하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하나?” 하고 난감해 한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인용된 대기업 인사 관계자의 말에는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신입사원을 채용하면 직무교육부터 시작해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한다. 경력직원은 입사 후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고, 교육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경력직원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학교기업’이란 제도를 살펴 볼 이유가 있다. 학교기업은 산학협력촉진법에 의해 학교가 기업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제도다. 단, 학교기업은 기업 활동과 관련 학과의 교육과정을 연계해야 한다. 수익이 발생하면, 시설, 기자재, 장학금 등으로 교육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식품영양학과가 만든 와인공장 학교기업도 있고, 실업계 고등학교의 제과점 학교기업도 있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200여 개의 학교기업이 있다. 학교기업은 학생들에게 장점이 많은 게 명백한 사실이지만, 운영을 책임지는 교수들에게 일이 너무 많고 책임이 과하다는 문제도 있다. 만약 수익성이 좋아 이익을 많이 창출한다면, 그런 학교기업은 요즘 어려운 학교 재정에 보탬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차라리 '연세우유'처럼 학교의 자회사로 독립시켜 수업과는 무관하게 이익 창출에 전념케 하는 게 바람직할 듯하다. 학교기업이 수익에 치우치면, 학생들 실습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교기업은 교육적 목적이 우선되어야 한다. 

본지 시빅뉴스는 바로 경성대 신문방송 전공이 운영하는 학교기업이다. 이제까지 종일 근무하는 상근 인턴 학생과 주 3시간 근무하는 비상근 인턴 학생을 포함해서, 최근 2년간 누적 인원 530명의 학생이 시빅뉴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시빅뉴스는 직원 기자와 학생 인턴기자 사이에 주어진 업무 차이가 없다. 작년 1년간 시빅뉴스가 생산한 콘텐츠는 총 1374건이었다. 이중 직원 기자가 생산한 것은 320건으로 23%였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결과물로 생산한 것은 1054건으로 77%에 달했다. 이 통계는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시빅뉴스 운영의 중심축임을 보여준다.

최근 시빅뉴스는 학교기업 지원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으로부터 중간평가를 받았다. 한 평가위원은 평가발표회에서 학교기업 시빅뉴스 총괄책임자인 나에게 “국가지원금을 2억 원 이상을 받고서 이에 못 미치는 수익을 낸 것은 국민세금을 축낸 것“이라고 질책했다. 이공계열 학과가 세운 제조업 중심의 학교기업이 올리는 매출액에 비하면, 서비스업 인터넷신문인 시빅뉴스의 매출액은 초라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빅뉴스는 학생들의 현장실습에 국가 세금을 알차게 활용했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반대로 수억의 수익을 내는 학교기업은 학생 실습을 정말 제대로 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국민세금을 알차게 썼나를 따지고 싶기도 하다. 나는 수익은 적어도 학생 중심의 실습을 중시한 시빅뉴스가 국민세금을 축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국가는 학교기업의 현장교육 기능보다 영리 사업체로서의 돈 버는 기능을 더 중시한다는 말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국가의 학교기업 정책은 특히 인문사회 계열의 학교기업은 현장실습 기능을 줄이고 이익창출 활동을 늘리라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이점을 바로 잡아 주었으면 한다.

학교기업 시빅뉴스는 학생들의 피땀 어린 현장실습 활동으로 생산된 양질의 뉴스 덕분에 선정 비율 3% 미만의 불가능에 가까운 국내 양대(네이버, 카카오다음) 포털의 ‘뉴스검색제휴사’가 됐다. 국가가 학교기업을 수익창출 중심으로 운영하라고 요구한다면, 시빅뉴스는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상업성을 추구하는 ‘기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일자리의 본질은 양적 실적이 아니라 일자리의 미래지향적 질이다. 학교기업은 문제해결식, 자기주도적, 직무능력 중심, 학교-직업세계 연계식 알찬 현장실습으로 학생들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졸업 전에 현장 근무 경력을 제공하는 최적의 솔루션이다.

스승의 날이다. 허구한 날 수업 시간에 학습 의욕을 잃고 졸음과 싸우는 제자들에게 잠에서 번쩍 깨도록 사회친화적인 학교기업을 통해서 직무능력을 손에 쥐어주고 싶지만, 그 길이 순탄치 않다. 언제 내 명예를 구하기 위해 교단에 섰던가. 그러나 교육이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선생인 나에게 있기에, 요즘 제자들 앞에 서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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