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뽑기 게임방 속 학교폭력의 이름, "인형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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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 게임방 속 학교폭력의 이름, "인형셔틀"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03.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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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들여 쌓아둔 인형 탑 '일진'이 뽑아가...피해 학생은 말도 못하고 울먹 / 정인혜 기자
인형 뽑기방이 새로운 학교폭력 온상지로 지목돼 우려가 제기된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전국적으로 인형 뽑기 광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인형 뽑기방을 무대로 새로운 학교 폭력이 싹틀 조짐을 보여 학부모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21곳이었던 뽑기방은 지난해 8월 147곳, 올해 1월 116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형 뽑기에 열광하고 있지만, 뽑기방의 주 고객층은 단연 교복 입은 10대 학생들이다. 적은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가거리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이 인형 뽑기를 학교 폭력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명 강제로 인형 뽑기에 돈을 쓰게 만드는 ‘뽑기 셔틀’이 유행하고 있는 것. 뽑기 셔틀은 일진 친구가 인형을 잘 뽑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인형을 집어 투입구에 넣지 않고, 투입구 인근에 인형탑을 쌓아 올리는 식이다. 인형탑이 완성되면 기다리고 있던 일진 학생은 탑을 무너뜨려 한 번에 인형을 챙겨간다.

인형탑을 쌓는 데는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3만 원까지 들지만, 탑을 무너뜨리는 데는 500원이면 충분하다. 인형은 뽑고 싶지만, 용돈이 부족한 학생들이 과거 ‘빵셔틀’과 같은 학교 폭력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27일 오후 부산의 한 인형 뽑기방. 주택가에 위치한 이곳은 학원이나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1년 넘게 성업 중이다. 150㎡가량 정도 되는 매장 안에는 교복을 입은 청소년 무리가 몰려 있었다.

다만 기계를 직접 조작하는 학생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뒤에 서서 핸드폰을 만지거나 서로 장난을 하는 등 인형 뽑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기계 앞의 학생도 인형을 ‘쌓는데’ 열중하고 있을 뿐, 직접 인형을 뽑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를 지켜본 한 20대 남성은 기계 앞의 학생을 “인형 셔틀”이라고 귀띔했다. 뒤에 서 있는 다른 학생들이 인형을 쉽게 뽑아갈 수 있도록 인형 탑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뽑기방에 오면 저렇게 인형셔틀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며 “용돈은 부족한데 인형은 많이 뽑고 싶으니 ‘노는’ 학생들이 약한 학생들 등쳐먹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난 뒤, 남학생 무리는 “와아”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양손에 인형을 하나씩 쥐고 인형뽑기방을 떠났다. 기계 앞에 있던 학생은 빈손으로 학생들 뒤를 따랐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는 '인형탑'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이 같은 학교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물리적 폭력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폭력 행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해 학생들도 물리적 폭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문제없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1학년 유모 양은 친구에게 인형 탑 쌓기를 시켜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유 양은 “돈을 뺏은 것도 아니고, 때린 것도 아닌데 문제가 되느냐”며 “빵셔틀처럼 빵 심부름을 시킨 것도 아닌데 인형셔틀이란 말은 과한 것 같다. 자기 돈 넣고 자기 손으로 게임을 한 건데 별문제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 현행법상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을 가져오는 강제적 심부름, 협박도 학교폭력에 해당된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는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형 셔틀의 경우 학교 폭력으로 처벌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체적 폭력만 없을 뿐 협박, 심부름 등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며 “이 같은 경우에는 학교 담당 전담 경찰관에게 상황을 알려 도움을 요청하거나 학교폭력 신고 상담전화‘117’로 연락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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