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태 최대 피해자로 최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유명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는 본지 시빅뉴스와의 대담에서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물러난 2013년 이후부터 국고 지원 탈락이라는 융단폭격을 맞았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당시 16차례 지원 신청을 했다가 모두 탈락했다고 밝혔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권 때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본지 시빅뉴스는 지난달 28일 문화계 거목 이윤택 연극연출가와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초청해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 문화예술계 미래전망에 관한 특별대담을 진행했다. 여러 주제로 대담이 오간 이 자리에서 특히 블랙리스트 문제와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주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 연극계 독보적 연출가인 이윤택 씨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이용관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 탄압'의 대표적인 표적으로 거론돼 온 인물이다.
이윤택 씨는 지난 대선에서 고교 동창인 문재인 후보에 대한 TV지지 연설을 한 것이 빌미가 돼 박근혜 정권의 탄압이 시작됐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박근혜 정부 출범 한 2년간은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며 "박근혜 정부 출범 다음해 숭례문 복원 기념 공연 연출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나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사람인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모철민 정무수석과 문화체육비서관이 "괜찮다",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답해 연출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시작돼 이후 내가 정부에 지원 신청한 16건이 전부 탈락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최근 블랙리스트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엔 일부 지원 신청한 것이 통과되기는 했다"고 덧붙였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 벨> 상영 문제로 정부, 부산시와 마찰을 빚은 끝에 집행위원장 직에서 물러나고, 대표적 '좌파 영화인'으로 꼽혀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돼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이미 이명박 정부 때부터 존재해 왔다"고 증언했다.
이 교수는 "블랙리스트가 MB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미 만들어져 대표적 좌파 영화제로 정권 측이 꼽았던 부산국제영화제를 손보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문으로 촉발된 '촛불시위'에 놀란 당시 정권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탄압을 일시 중단했는데, 박근혜 정권 들어서 <다이빙 벨> 파문을 빌미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대담에서 이윤택, 이용관 씨는 최근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항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해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시민혁명의 단초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윤택 씨는 "4.19혁명이 이룬 민주화라는 하나의 물줄기, 그리고 5.16 쿠데타 이후 산업화라는 또 다른 물줄기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시민 자발적인 새로운 형식의 시민혁명이 지금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관 교수도 "단군이래 5000년 이래 처음 보는 이 역동적인 움직임 앞에서 이제는 정치인들도, 어떤 누구도 감히 반동적 태도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시민 자발적인 문화 형식은 문화예술계와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새로운 틀의 '광장문화'라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문화예술계는 물론 한국사회 전반에 시민 주체의 공동체 문화가 싹틀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윤택씨는 “사람들은 광장을 원한다. 광장은 어디에나 있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놀 수 있는 평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관 교수도 "광화문 광장이라는 특정 공간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광장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커질 것"이라며 "SNS를 하며 방 안에 숨어 있는 인간, 디지털 시대의 인간을 다시 열린 광장으로 불러내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 문화계가 당면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빅뉴스는 오늘부터 두 사람의 대담록을 2회에 걸쳐 연재하는 한편, 대담 영상물도 곧 보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