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때도 블랙리스트 있었다" "그거 만든 사람들 정말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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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때도 블랙리스트 있었다" "그거 만든 사람들 정말 무지"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7.03.01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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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빅뉴스의 네이버 뉴스검색사 피선정 기념, 연극인 이윤택 씨 · 전 BIFF 집행위원장 이용관 씨 특별대담 지상중계(상) / 정리 정혜리 기자
28일 경성대 건학기념관에서 시빅뉴스 주최로 열린 특별대담에서 참석자들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용관 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 대학장, 연극연출가 이윤택, 시빅뉴스 강동수 편집국장.(사진: 촬영기자 최준성).

시빅뉴스가 새 봄을 맞아 독자들을 위해 ‘빅 이벤트’를 마련했다. 우리 시대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몰고 다니는 문화계의 거목, 이윤택 연극연출가, 그리고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한 자리에 초청해 대담을 연 것. 지난 달 28일, 경성대 건학기념관에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3시간에 걸쳐 최근 시국흐름, 문화계 이슈, 새로운 시대의 문화예술의 방향을 화두로 열띤 대담을 나눴다. 시빅뉴스 강동수 편집국장이 진행을 맡은 이날 대담을 지상 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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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 이윤택

극단 연희단 거리패 대표와 밀양연극촌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오구, 죽음의 형식>, <시민K>, <문제적 인간 연산>, <느낌 극락 같은> 등 연극, 뮤지컬, 영화 가릴 것 없이 숱한 작품을 공연하며 사회 현실을 고발하고 한국 연극의 원류를 탐색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국립극장 예술감독,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대상, 2008년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영화평론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산파역을 맡았던 그는 현재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중앙대 영화학과 교수, 중앙대 예술대학원 원장을 역임하고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오키나와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조직위원장, 서울단편영화제 심사위원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지난 2015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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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이하 생략)_최근 두 분의 근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담을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겠다. 이윤택 선생은 한국 연극계의 독보적 존재인데 고 기형도 시인이 ‘문화 무정부주의자’라는 별칭을 헌사하기도 했다. 본인은 '문화 게릴라'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지만...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이윤택_ 한동안 본의 아니게 블랙리스트 올라가지고 3년 동안 정부 지원을 못 받았다. 근데, 요즘은 신청하니까 다 지원해 주더라. 이젠 블랙리스트가 아닌 사람이 돼버렸다. 하하.

지금까지 블랙리스트 하면 매스컴에서 맨 앞자리에서 꼽는 사람이 아니었나?
이윤택_ 제가 정치적인 사람 아닌데, 어쩌다 그렇게 됐고 거기에 대해서 그 동안 가타부타 안 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달라지면서 저절로 풀린 것 같다.

요즘 하고 계시는 작업은 어떤게 있나?
이윤택_ 요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개인적으로 좀 안타까웠던 건(최순실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더라는 소문이 항간에 퍼지면서) 굿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가 퍼진 것이다. 굿을 사교와 같은 행위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굿이 대중을 나쁘게 미혹시키는 미신이거나 비이성적 행위로 치부되지 않나.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굿이란 걸 잘 모르니 거꾸로 굿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굿을 무대로 끌어들였던 작품 세 편을 연달아 기획하고 있다. 3월 1일부터 <씻김>을 공연하는데 진도 씻김굿으로 연극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제 대표작이기도 한 <오구, 죽음의 형식>을 재상연하려고 하고 있다. 또 10년 전에 제주 4.3사태를 굿의 형식으로 풀어낸 <초혼>이란 작품이 있다. 이걸 차레로 무대에 올릴 생각이다. 

이윤택 선생은 한국의 굿을 연극에 가장 먼저 접목시킨 분이 아닌가?
이윤택_ 가장 먼저는 아니다. 우리 선배 세대들도 했던 작업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긴 하다. 나는 모던하고 해체적 방법으로 굿을 연극과 결합했었다. 

이용관 교수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이용관_ 저는 뭐 학교로 돌아가서 학생들과 열심히 놀고 있다. 그동안 영화제 하느라 학생들과의 교류가 좀 소홀했는데... 학교에 돌아갈 기회가 다시 생겨서 자리를 만들어준 총장님한테 은혜 갚으려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그리고 <다이빙 벨> 사태로 촉발된 부산시, 정부와의 갈등의 후유증으로 기소됐는데 지금은 재판 2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윤택 연출가가 대담 중 발언하고 있다(사진: 촬영기자 최준성).

지난해 10월 이래 지금 한국은 거대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있다. 지금 광장에선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바로세울 것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집회에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4.19, 6.10에 이어 이번 시민 궐기는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 같다. 당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이를 지켜본 소회를 듣고 싶다.

이윤택_ 저는 이번 상황을 보면서 단순하게 정치적인 문제로 국한되는 게 아니고 우리 사회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1987년 민주화 시위 이후 큰 변화를 겪어왔다고 하는데, 저는 그보다 더 앞으로 가서 60, 70년대로 소급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19혁명이 이룬 민주화라는 하나의 물줄기, 그리고 5.16 쿠데타 이후 산업화라는 또 다른 물줄기가 그것이다. 민주화 세력과 이른바 산업화 세력이 말하는 군사혁명을 대표하는 두 세력인데, 한쪽은 민주, 한쪽은 자유라는 양대 큰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서로 격돌하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 왔다고 본다. 

한쪽은 도덕적, 윤리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고 한쪽은 경제적 성장논리를 펴면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는데 지금은 두 이데올로기 자체가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경제성장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 민주화 논리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나왔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보여주는 대로인데,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속에서 남도 북도 아닌 제3의 지대로 망명하지 않나. 최인훈 시대의 '광장'은 정말로 최루탄 날아다니고 함성과 아우성, 그리고 물리적 폭력이 난무하는 혁명의 광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촛불 광장이란 것은 그런 혁명의 광장이 아니다. 일상 속으로 들어온 축제와 같은 혁명이다. 부모가 민주교육을 시키겠다면서 아이들을 데려 나온다. 일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에 스며든 시민들의 혁명이라는 거다. 지금 일부 극우에선 집회를 막으려면 군사혁명하라, 비상계엄령을 내려라고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그렇지 않다. 예전처럼 군을 동원한다든지, 폭력적 방법으로 진압하려는 것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전의 군부 문화, 민주화 문화가 아닌, 새로운 시민문화, 시민사회가 시작될 조짐이 아닐까 본다. 그 단초가 이번 촛불집회에서부터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4.19가 터졌던) 1960년이면 벌써 57년 지났다, 60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져 왔던 흑백논리,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서 변증법적으로 양쪽을 다 극복할 수 있는 세련된 시민사회가 열리기 전야라고 생각한다.

이용관_ 개인적으로 이번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명예혁명부터 시민혁명까지 갖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그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날 정도로 위대한 시민혁명이다. 혁명이라고는 말을 하지만, 나라의 정치적 틀이 바뀐다는 외형적 개념보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누구인가 확인하게 된 계기라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이런 자발적, 평화적 운동은 역사상 처음이 아닌가. 이윤택 선생께서 한편으론 반동을 우려하셨지만 저는 대단히 희망적으로 본다. 단군 이래 5000년 동안 이런 일이 있었는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역동적인 움직임에는 특별히 이 선생과 같은 문화예술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식인들은 한편으론 나약한 존재이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도 보이곤 했는데, 이제는 정치인들도, 어떤 누구도 이처럼 거대한 시민혁명 물줄기 앞에서 감히 반동적 태도를 보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시민의 위대한 승리다. 이런 도도한 움직임을 목도하면서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흥분까지 느낀다.

이윤택_ 저도 특히 연극인으로 참 다행스러운 게 새로운 변화 물결 속에 젊은 연극인들이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광장에 텐트를 쳐놓고 소극장을 열고 있다. 영화 쪽도 그렇겠지만 요즘 젊은이는 싸가지가 없고, 개인적이고, 선배나 스승을 알아보지 않고, 연대하지 않는 세대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나. 그런 세대들에게 정부가 지원금을 끊었다. 돈이 나올 데가 없으니까 젊은 세대가 비로소 연대하기 시작했다. 좋은 시절, 지원금 받는 시절에는 연대하지 않다가 이제 연대에 눈뜨기 시작한 거다. 제가 <씻김>을 올렸는데, 진도에 다니면서 굿을 전수받아 만든 연극이다. 그 진도 국립국악원이 팽목항을 바라보는 곳에 있다. 그래서 제가 극의 마지막 대목에 세월호 배를 띄웠는데 당시 난리가 났다. 이번에 젊은이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를 초청했다. 와줄 수 있겠는가 하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이 아름다운 광장에 기꺼이 졸병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뻘보다 더 어린 친구들과 공연했다. 그래서 내가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대에 내가 단순히 원로가 아니라,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고 젊은이들과 광장에서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것, 전선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난 참 행운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낸 이용관 교수.(동서대 임권택영화예술대학 학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 촬영기자 최준성).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서는 보수-진보 양측의 갈등도 심화될 조짐이 보인다. 이번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보면?

이윤택_ 저는 과정에 대해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 또는 각하되든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인 권력과 관련된 어떤 변화가 오는 것과 관계없이 거대한 물줄기를 틀었다. 권력 상층부의 변화가 아니라 바로 바다처럼 넓은 기층시민들의 변화가 도래할 거다. 이건 막을 수 없다.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지배층에서 어떤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다. 이 물줄기라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 시민사회가 이심전심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새로운 예지력을 가지고 이를 선도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지 비전 제시하는 역할이 우리들 지식인, 문화예술인들에게 주어졌다. 영화계건 연극계건 모든 사람들이 디스토피아를 벗어나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야 한다. 20세기에는 국가, 민족, 토지 같은 현실적 헤게모니에 집착했다면 21세기는 국가보다 무정부주의적 자유, 인류평등, 공존, 플라톤의 이상국가 같은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좋은 생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 이후 우리가 자연을 학대하고 오염시켜온 것을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 생명 중시가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지금은 너무 개인주의화됐으니까 새로운 공동체 운동의 전망이 제시돼야 한다. 요 근래 이미 진행되고 있다. 10년 전에는 개인 빌라, 전원주택 짓다가 외로우니 요즘은 마음 맞는 사람끼리 지어서 공동생활하고 있지 않나. 더 이상 국가주의에 함몰되지 말고 국가 대신 공동체를 이루는 운동, 이런 생태생명운동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용관_ 이 선생과 생각의 기본적 틀은 같으니 보완해서 말씀 드리겠다. 우리 삶이 변증법으로 발전하지만 앞으로도 이런저런 모순은 생길 거다. 이런 모순들을 극복해 갈 수 있는 시야를 우리 국민이 확고히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정체성,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국민들이 쓰나미보다 더 큰 힘을 가졌으니 설사 모순이 생겨나더라도 우리 스스로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분열, 양극화 현상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치인이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느냐는 불신감이 팽배하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맡기는 것만이 아니라는 자각을 했다. 그래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번 기회에 문화예술인들이 생명 생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깨닫고 성찰하고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저도 운이 좋은 사람에 속하는데, 블랙리스트로 예술인들을 제압, 억압하려다 정권이 흔들리는 사태가 왔는데 나도 그 상황에 들어있었던 것 말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스스로의 힘을 느끼고 사회에 기여하면 좋지 않을까. 굿판으로 치면 그동안 관객과의 호흡은 정치인, 지식인들이 해 왔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무기력하고 때로는 역기능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문화예술인들과 국민들이 동참하니까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지 않았나. 나는 지식인 그룹 언저리에 있지만 그런 변화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일까. 남북 분열 때문에 여러 가지 일어나는 부작용 등을 극복해나가는 데 문화예술인들이 고민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이 선생도 아직 원로 아니다! 아직도 청춘이다. 선배다. 우리 사회를 위해 활동 더 열심히 해줘야 한다.(웃음)

연극계의 독보적 존재, '문화 게릴라' 이윤택 연출가(사진: 촬영기자 최준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요약되는 이번 사태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든 것에는 이번 정권이 민주공화정의 기본적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분노가 깔려 있는 것 같다. 특히 뒷전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을 억압한 사태가 민주공화정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블랙리스트 사태를 따로 떼내 표현의 자유와 연관해 논의를 더 진전시키면 좋겠다. 

이윤택_ 저는 처음 블랙리스트에 내가 들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정치적이지 않았고 항상 스스로를 두고 ‘나는 회색분자다’ 하고 산 사람이다. 문재인 씨가 지난 대선에 나왔는데 그는 경남고 같은 반 친구였다. 당시 학교 안에서도 계급(?)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계급, 공부 못하는 계급, 공부 안 하는 계급... 나는 계속 딴짓하는 자유로운 백수였고 문재인 씨는 굉장히 공부 잘하고 도덕적으로도 거의 가톨릭 수사 같은 친구였다. 집이 가난해 양달양 교복을 3년 동안 입어서 팔굽 부분이 미어져 나올 만큼 어렵게 살았던 친군데 항상 정의로웠다. 나는 항상 개구쟁이였고. 학교 다닐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TV 선거연설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처음엔 안 한다 했다. 연극하는 사람인데 정치발언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생으로서 인간 문재인을 얘기해 달라고 하더라. 우리 단원들이 "선생님께 부탁이 들어온 걸 보니 연극하는 사람들이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 아니냐,  하세요!" 하더라고.  그래서 TV연설에 나섰다. 당시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았다. 품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통령의 품격... 수첩에 글 쓰고 브리핑 받는 것, 이게 다가 아니다. 그건 재능 있는 전문가가 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말 잘하고 안목 있어야 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도 2년 동안 문제 없었다. 그 다음해 박근혜 정부에서 숭례문 복원 행사 연출을 맡기도 했으니까. 그때 문화체육비서관에게 나는 문재인 후보 지지한 사람인데 괜찮겠냐 물으니 비서관이 "괜찮지 않겠어요?" 했다. 모철민 정무수석과 식사하면서 얘기할 때도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유진룡 장관이 물러나고 2013년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 거다.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갑자기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져 지원 신청에서 떨어지기 시작하고, 잘리나? 제가 그때 융단폭격을 맞았다. 16차례 지원신청했는데 모두 잘렸다. 예전 70~80년대 시절엔 저항하는 집단에겐 물리적 폭력까지 가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은 아니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다행이라 할까. 견딜 만했다. 이번에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폭로된 것은 시민들과 매스미디어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문화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시민과 매스미디어의 힘이 구세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시키는구나, 그 새로운 세대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검열 체제를 한꺼번에 뒤엎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당사자로서는 담담했다. 예전에 어마무시한 폭력적인 검열, 빨간 줄긋기도 견뎌냈는데 이런 것도 못 견디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연극보다 영화 쪽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연극은 돈 없어도 할 수 있는데 영화는 자본이 필요하니 더 심각했을 것 같다.

이용관_ 아니다. 연극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면 영화는 자본주의적인 특징이 있다. 애초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니까 정부의 지원 여부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영화계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알려졌고, 정부의 탄압에 더 앞장서 문제 제기를 했는데, 연극쪽이 왜 더 시끄러웠을까. 정부가 연극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다. 그동안 정권을 쥔 자들은 ‘연극, 이것도 돈으로 조용하게 만들 수 있어’라며 길들여 왔다. 그런데 그것조차 안 주니까 빈자들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거다. 잘못 건드렸다. 글쎄, 영화계에선 지원금에 구애되는 곳으로 독립영화 쪽이 있긴 하겠지. 상업영화는 그렇지 않다. 경쟁과 자본 논리가 있다. 천만 관객이 들어오는 영화를 정부가 막을 수 있나? 정부가 독립영화처럼 라면 먹고 예술하는 사람들을 자극한 거다. 개인적으로 내가 대단히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거대한 흐름에 저도 작게나마 일종의 참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이빙 벨> 이후 탄압 속에서도)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려운 길을 가자고 했는데 이 시대가 저를 구제해 주지 않았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가 헌법이다. 그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국가가 무슨 의미가 있나. 여러 가지 검열의 방법이 있는데,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이들이 최고의 학력, 권력을 갖췄지만 문화에 너무 무지했다. 교양이 없고 품위가 없는 분들, 야만적이 분들이 문화 정책을 다루는 바람에 시민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지 않았나.

따지고 보면 문화예술인들이 대부분 좌파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건 생리적인 거다. 정권을 쥔 사람들이 예술의 태생적인 속성이 저항이란 것을 모르는 거다, 정말. 풀어놨으면 오히려 정권이 더 움직이기 쉬웠을 것이다. 검열은 어차피 안 되는 것이고 문화예술이란 그 자체가 사회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예술의 원초적인 기능이 이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놀이 아니냐. 유희를 통해 영혼을 다스리는 것, 사회를 치유하는 것, 세월호 문제에 발언하는 것. 이것을 블랙리스트로 묶어 놓겠다는 것은 문화예술을 부정하는 것이다. 정권이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이날 대담에서 참석자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부터 최근 광장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화두삼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 촬영기자 최준성).

제가 알기로는 이 정권이 출범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야만적인 짓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세월호 이후 문화예술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것 같다. 세월호 사태를 겪으며 정부가 자신감을 잃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정부가 세월호 문제를 제기하는 모두를 좌파로 몰아간 게 아닌가?

이용관_ 문화예술인은 좌우를 떠나서 우리 시대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이다. 이윤택 선생이 공연에서 세월호 배를 띄웠다고 했다. 영혼을 달래는 것, 씻김굿, 그런 것이 예술의 역할이 아니냐. 그런 것조차 좌파로 몰아서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유희 본능을 억압하려고 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정권이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는 거다.

이윤택_ 이번 사태로 드러난 것 중의 하나는 국가를 관리하는 권력자도 이제는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 것일 것이다. 이전에 영화인들은 정부가 시키는대로 반공영화 같은 것도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출가, 배우들이 굉장히 래디컬,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기 시작했다. 배우들이 영향력이 세잖나? 저런 배우들이 과감하게 자기발언을 한다는 게 문화가 성숙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행정가들, 법학자들, 경제 전문가들이 우리 문화에 대해 소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만 잘하고 법망만 미꾸라지처럼 피해다녔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일어났고 자멸했다.

이용관_ 60, 70년대에는 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부지식인들이었다. 이후 탄압에 순응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영화가 제일 심해서 새마을 영화 등등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그때는 정부를 거스르고는 연명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 정권이 착각한 것은 유신정권 때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지금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영화인들이 가장 앞장서고 연극도 정말 래디컬,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 정치 문제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구를 표출한 것 아니냐. 정치인들이 바보가 아닌데 왜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작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 사실 문화예술인들이 분노하고 자존심 상해했던 것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을 돈 몇 푼으로 좌우하겠다는 정부의 천박한 물질주의적 발상 때문이 아니냐.

이윤택_ 잡아가서 고문하면 차라리 저항도 더 거세질 텐데...이번에 문제가 터지자 김모, 조모 두 장관이 그랬어요. "우리는 이윤택 씨를 탄압 안했다, 최고의 대우를 했다. 15억 지원했다, 2년 동안." 깜짝 놀라 고소하려 했다. 알고보니 내가 국립극장 감독을 하면서 연출했던 작품의 총 제작비가 15억인 거다. 국립극장에 지원한 돈을 내가 받은 것처럼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인 거다. 

이용관_ 자존심을 짓밟았다. 라면값이 없는 사람들에게 라면값을 지원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저급한, 천박한 방식이 있나. 차라리 내 말 잘 들으면 라면 하나 더 줄게, 이랬으면 나았을 거다. 아예 감옥에 넣든지... 제일 중요한 생계 문제로 치사하게 굴었는 다는 게 참...

부산국제영화제 파문이 발생한 지 이제 2년이 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정부와 부산시가 개입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게 '다이빙벨 파문'의 본질이 아니겠나. 지나고 나서 보면 이 문제도 블랙리스트 전조랄까, 정부의 치사한 탄압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용관 교수가 당시 집행위원장으로서 정부 탄압의 최일선에서 여러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사태의 전말과 부산국제영화제 파문이 가진 문화사적 의미를 좀 설명해 달라.

이용관_ 당사자 입장이라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측면만 보면 된다. 사실 MB정부가 들어서면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는데 그땐 대상자가 극소수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던 황지우 시인 몰아내기,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손보기, 연극계 손보는 것, 이렇게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당시 이미 좌파로 낙인 찍혀 있었다. 손보려 하는데 광우병 문제로 촛불시위가 일어나자 이에 놀란 이명박 정부가 일단 중단했던 거다. 이번 정권 들어섰을 때 "아. 나는 찍힌 사람이다. 그러니 이후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안일하게(?) 큰 문제 없이 흘러가겠지 했던 게 불찰이었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그 사건만 아니었으면 부산국제영화제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지도 않았을 거고 정권도 관계자 극소수만 정리하려고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김기춘 비서실장이 부임하면서 갑자기 유신 때처럼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전면 탄압에 나섰다.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이... 당시, '나 하나 다치면 되지. 감옥에 들어가서 책이나 읽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근데 이게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쨌든 지금 생각하니 문제가 크게 터진 게 오혀려 잘 됐다 싶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영화제를 살렸으니. 그나마 내가 지키려고 노력했으니까 영화제가 앞으로는 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잘됐다는 생각이 들다. 그 사태에 굴복했으면 제자들 앞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쪽도 아주 단순한 논리였고 저희도 그러니까 싸울 수 있었고...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져나온 것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 흐름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고맙다. 다시 생각해도 내가 행운아라고 생각한다.(웃음)

이윤택_ 저는 부산영화제 사태에 굉장히 우려했다. 아 큰일 났다, 영화인들은 자본이 중요한데 부산국제영화제가 이 외압을 버텨낼 수 있을까 우려했다. 그런데 버텨내더라고. 이거 보면서 아, 우리 영화가 살아있구나 생각했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가 당한 정도로 계속 얻어맞아 영화제 정신이 축소되고 약화되고 한 사례가 많지 않았나. 그런데 끝까지 버텨냈다. 그건 이용관 교수처럼 영화제를 낳고 키워온 비판적 지식인들이 잘 버텨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강수연 씨 같은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눌러보다가 잘 안되니까 정부와 부산시가 대안으로 물타기를 하자고 했는데 영화인들이 원칙을 잘 지켜냈다. 부산영화제를 전국 영화인과 외국 영화인들이 지켜냈다. 외압에 꺾이지 않고 부산영화제가 정말 잘 버텨냈다는데 박수를 보낸다.

이용관_ 꼭 말씀 드려야 할 것이 있다. 일부 문화 예술인들이나 일부 시민들, 나아가 정권 담당자들이 착각하는 게 부산영화제가 처음 창설한 몇 사람에 의해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은 부산시민,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고 영화예술인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자산이다. 그런데 정권이 몇 명만 손보면 된다고 착각한 것이다. 정치하는 분들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진짜 저력을 제대로 인지했으면 좋겠다.

이윤택_ 부산국제영화제가 승리한 이유는 끝까지 싸운 거다. 굴복하거나 협력했으면 패배했을 것이다. '너희들이 우리를 압박한다면 우리 안 할게! 그런 영화제 없애자.' 이러면 아무리 문화를 조작하고 조종하는 사람들도 더는 손을 못대거든. 영화제가 결과적으로 파산하면 책임은 고스란히 자기들이 지게 돼 있는 거다. 문화는 타협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비바람을 이겨낸 것은 이끌어 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마음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를 디딤돌 삼아 부산국제영화제가 좀 더 보편적이고 권위 있는 영화제로 성장하지 않을까.

이용관_ 신구 갈등은 어느 나라든, 어떤 영역이든 보편적 현상이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다. 그걸 어떻게 보완하고 치유해 나가느냐에 한국영화의 성공이 달려있다. 현재 집행부도 앞으로의 성찰이나 각오도 중요하지만 영화계에 믿음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더 심하게 말하면 언제든 이 정도의 시련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그걸 겪어내야 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거다. 언제나 편한 인생은 없다. 그래도 부산국제영화제의 미래는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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