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배송," "로켓배송"... 택배 속도 경쟁에 기사들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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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배송," "로켓배송"... 택배 속도 경쟁에 기사들 '아우성'
  • 취재기자 방민영
  • 승인 2017.02.21 23:35
  •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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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 "왜 이리 늦나" 독촉 일쑤, "쓰레기 대신 버려 달라" 황당 심부름도 / 방민영 기자

2017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배달 전쟁’ 중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당일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등 구호를 내걸고 “오늘 아침에 주문한 물건이 오늘 저녁에 도착합니다”라고 광고한다. 택배회사들이 속도 경쟁을 벌이면서 늘어난 택배 의뢰를 더 빨리,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택배기사들의 고충도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택배물량이 사상 처음 20억 개를 돌파했다. 물동량이 크게 늘면서 택배업체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산출한 국내 택배시장 매출액 추이에 따르면, 2009년 2조 7,200억 원이던 택배업계 매출이 2015년에는 4조 원을 넘었고, 작년에는 4조 7,444억 원을 기록했다. 7년 사이 약 2조 원이 늘어났다.

택배회사들은 전국의 택배 상품을 접수받아 분류작업을 거쳐 중계지, 배달지 터미널로 보낸다. 이 상품들은 다시 지역별 대리점으로 이송되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택배기사들이 세세한 배송구역별로 상품을 분류한다. 이게 끝나야 비로소 택배기사들이 배송에 나선다. 택배기사 김모(33, 부산시 동래구) 씨는 매일 새벽 칼바람이 부는 추위 속에서 난로도 없는 택배 대리점에서 받은 택배 물품 중에서 다시 자신의 배송구역 것을 찾아 분류한다. 배송에 나서면 수취인과 마찰이 빚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물품을 전해 주다가 “왜 이리 늦었느냐”는 불평을 들어도 고객에게 반박 한마디 못하고 웃으며 나와야 하는 일에도 이제는 익숙하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국내 택배시장 매출액 추이’(자료: 한국 통합물류협회, 본지제작).

급격하게 늘어나는 택배 물량은 택배기사들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택배기사의 하루는 김 씨처럼 대리점에서 시작한다. 대리점에서의 분류작업 강도는 악명이 높다. 분류 작업으로 몸이 녹초가 될 무렵, 택배기사들은 배달에 나서게 된다. 이제부터는 수취인인 고객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택배기사 한모(40, 부산시 기장군) 씨는 이젠 고객들의 하대나 막말에 익숙하다. 한 씨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수취인들이 엉뚱한 다른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다. 한 씨는 어느 날 택배를 전해주고 가려는데 고객이 쓰레기봉투를 내밀며 내려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했다. “바빠서 안 된다고 말했다가 내려가는 길에 버려주면 되지 그것도 못해 주느냐며 화를 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보내는 사람이 주소나 연락처를 잘못 적어 곤란해지는 일도 많다. 배송시스템 상 택배기사마다 배송구역이 정해져 있어 각자 맡은 구역이 아니면 옆 동네라도 일과 중에는 갈 수가 없다. 사정이 이렇지만 이를 설명해도 고객들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택배기사 김 씨는 “주소가 틀려 다른 곳에 가 있는 택배를 막무가내로 빨리 보내달라고 전화로 재촉하는 수취인들도 있다”며 “시스템 상 당장 다른 구역으로 배달해 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는데도 이해를 해주지 않으니까 답답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국 택배연대노동조합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기사 10명 중 8명이 ‘주소가 잘못 적혀 다른 지역으로 배송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택배기사들은 무례한 고객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바로 ‘CS평가’ 때문이다. CS는 customer service의 줄임말로 택배를 받은 고객들에게 택배기사의 서비스 점수를 매기도록 하는 것. 택배기사 문모(46, 부산시 금정구) 씨는 택배기사들의 대부분은 특수 고용된 계약직 개인 사업자라며 “이 평가에서 매겨진 점수가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불평 한마디 못 하고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대학생 임예람(23, 울산시 북구) 씨는 택배기사가 와도 집에 없는 척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지난해 6월 택배기사로 위장한 강도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한 후 택배물을 직접 받기가 꺼려진 것이다. 임 씨는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기사들을 번거롭게 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씨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택배기사는 배송지까지 가서도 수취인을 못 만나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수취인의 연락 두절도 골칫거리다. 택배기사 이모(36, 부산시 동래구) 씨는 최근 들어 빈번해진 수취인의 연락 두절에 일이 두 배가 됐다. 택배를 전해 주러 집을 찾아가면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는 “부재 중이라고 문자를 보내주면 집에 들르지 않고 경비실에 맡기면 되는데, 연락도 안 되고 집에도 없으니 택배를 들고 두세 번 같은 집을 방문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작년 여름 한시적으로 실시되었던 인터넷 교보문고의 착한배송 이벤트(사진: 인터넷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쳐).

지난해 여름, 교보문고에서 실시한 ‘착한 배송’이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착한 배송이란 꼭 당일 배송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이 넉넉하게 날짜를 뒤로 잡아 배송일을 지정하는 배송방법 개선 캠페인이다.

작년 여름 착한 배송 이벤트를 이용했던 박시연(23, 부산시 동래구) 씨는 착한 배송 이벤트가 다시 부활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받는 사람은 급하지 않은 물건을 받고 싶은 날을 선택해 받아볼 수 있고, 택배 기사들도 서두르지 않고 제 날짜에 배달할 수 있다. 박 씨는 “무더운 여름날 시간에 쫓겨 땀 흘리며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꼭 필요한 배송방식”이라고 말했다. 착한배송 이벤트를 두고 누리꾼 A씨도 “속도경쟁을 하는 당일배송, 총알배송도 중요하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는 착한 배송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에게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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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오신날 2017-02-26 20:09:28
진짜택배기사아저씨들월급올려줘야해요
쌀이라도시켰다간허리아작날듯요
그나저나쓰레기좀가는길에버려달라니
넘심하네요

밤톨 2017-02-26 17:29:43
정말 택배기사님들 수고 엄청 하셔요... 전 택배 그리 빨리 오길 바라지는 않는데, 어떤땐 엄청 빨리 와서 놀랠때도... 항상 감사함 가지고 있답니다

호이호이호이 2017-02-26 16:48:50
택배기사님들의 고충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소비자 입장이 되면
물건이 하루가 늦게 와도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 저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지네요
로켓배송 총알배송이를 말보다는 착한 배송이라는 말이 널리 널리 쓰일수 있도록
착한배송 캠페인이 보편화 되길 바라봅니다

라라라 2017-02-25 17:53:39
착한배송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밍이 2017-02-25 17:16:32
택배기사님들 항상 고생하시던데 ㅜㅜ 착한배송캠페인이 보편화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