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 <첫사랑> 등 TV드라마는 시청률 60%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끌었다. <모래시계>는 '귀가시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사람들은 방영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다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 앉아 시청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라마를 보려고 귀가를 서두르거나 TV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대신 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OTT서비스의 발달,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로 이제는 TV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미디어를 소비하는 제로 TV시대가 오고 있다. 제로 TV가구는 TV수상기는 있어도 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 스마트폰 등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가구를 말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해 6월 7일∼8월 19일 전국의 만 13세 이상 남녀 7,3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 방송 매체 이용행태' 결과에 따르면, '방송 프로그램을 TV 수상기 대신 스마트 기기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비율이 20대 응답자 중에서는 20.9%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학생 장용호(24, 부산시 남구) 씨는 집에 TV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 장 씨는 “방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원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서 볼 수 있어 TV를 거의 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로 TV 시대의 도래는 OTT시장의 성장과 함께한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TV 서비스를 말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6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통한 OTT 서비스 이용률도 14%에서 27%로 증가했다.
OTT 서비스 사업자인 CJ의 티빙 가입자는 2015년 약 700만 명으로 지난 2010년 30만 명에서 23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상파 TV가 운영하는 푹(pooq) 서비스도 가입자가 300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지난 1월 세계 최대 OTT 업체인 미국 넷플릭스도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국내 OTT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장인 서진원(28, 서울 중구) 씨는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다시보기(VOD)로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으며, 방송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마음대로 시청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다”며 “당장 TV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점점 TV의 중요도가 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예측했다.
점차 제로 TV가구가 증가하지만, 당장 TV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TV는 보편적인 매체이며 가장 많은 이용률을 보인다. 방송국 FD 김모(26, 서울 영등포구) 씨는 “방송업계에서도 점점 스마트폰을 통한 웹 드라마나 다양한 모바일 관련 콘텐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추세”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TV 콘텐츠의 중요도가 높고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어 TV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경성대 신문방송전공 정일형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게 무료라는 인식 때문에 제로 TV 시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저작권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 단순히 TV 프로그램을 TV 대신 스마트폰으로 본다는 인식은 저작권을 어기는 행위이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