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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주민들의 모범적 마을재생 사업 '아만토'에 깊은 감동

기사승인 2017.02.14  09: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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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한일관계 속 일본의 속살을 보다...‘JENESYS2016' 일본문화 탐방기 / 박준우 기자

기자는 얼마 전 일본 외무성이 주최한 대일 이해 촉진을 위한 교류 프로그램인 ‘JENESYS2016' 일본 문화 탐방단의 일원이 돼 일본 오사카 일대를 총 10박 11일간의 일정으로 참가했다. ’문화의 창의력, 파급력‘을 테마로 한 이번 탐방은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 체험 및 한일 대학생들 간의 교류를 통해 양국 간 상호 이해를 키우는 것이 그 목적이다.

오사카부(大阪府)와 오사카시(大阪市)의 위치. 보라색으로 색칠된 부분이 오사카시(大阪市)다.(사진: 위키백과).

오사카는 서일본 최대 도시인 오사카시(大阪市)뿐만 아니라 오사카시를 부청 소재지로 삼는 오사카부(大阪府)를 뜻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33개의 시(市)와 9정(町), 1촌(村)으로 이루어진 오사카부는 도쿄 수도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광역경제권이며, 인구수로는 도쿄, 요코하마에 이어 세 번째다. 과거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오사카는 현재는 수도인 도쿄에 이어 일본 제2의 도시라 불린다.

그런 오사카를 돌아보면서 많은 것이 부산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와 대비되는 약간은 거센 말투의 오사카 방언과 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고,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처음 마주한 바깥 풍경이 바다여서 더 그랬다.

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오사카 시내에 도착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버스에서 하차한 뒤 잠깐 걸으며 든 생각은 길가에 한국어가 참 많이 보인다는 것.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간판과 표지판 위에는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가 적혀 있어 아직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주 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우리의 첫 공식 일정은 도톤보리 옆에 위치한 주(駐)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영사관은 교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재외기관으로 외교 업무를 맡은 대사관과는 다른 개념이다.

하태윤 오사카 총영사가 탐방단에게 오사카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탐방단을 맞은 하태윤 오사카 총영사는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오사카 사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오사카가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도시라고 했다. 실제로 오사카는 재일교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이며, 역사적으로도 한국과의 연관성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1,600여 년 전 일본이 백제에 학자와 서적을 청하자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건너간 학자가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왕인 박사로 그가 일본에 전해준 한자는 이후 일본 문자의 초석이 됐다. 그는 일본 태자의 스승이 돼 학문을 가르치는 등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해 일본 문화의 시조로 숭앙받고 있다고 한다.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 있는 왕인 박사의 묘는 일본 문화재로 지정됐고 뿐만 아니라 매년 그를 기리는 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하 총영사는 "재미 있는 것은 현재 주 오사카 대한민국총영사관이 과거 왕인 박사가 살았던 땅에 세운 것이며, 일본 중앙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우리 교포들이 직접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총영사로부터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점 등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외관상으로도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그것보다 내면의 사고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이분적으로 나누자면, 한국인은 감성적인 반면, 일본인은 매우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또한 일본 사회는 철저히 권위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라고 했다. 그래서 때로는 권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역기능도 보이지만, 전문가를 인정하고 따르는 분위기여서 한 분야에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열정을 가진 이른바 장인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실력을 키워야만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 총영사는 "한국과 일본 양국관계는 싸움과 경쟁, 그리고 관계 회복의 역사로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미래"라며 "미래의 중심이 될 젊은이들이 새로운 한일관계 발전에 역할을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오사카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이쿠노구. 이쿠노구는 재일교포가 다수 살고 있는 곳으로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탐방단은 ‘야마모토 화학’과 ‘산에 금속제작소’라는 중소기업을 방문했다.

공장에서 금속제품을 만들고 있는 직원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야마모토 화학은 석회석을 재료로 고무를 생산하는 곳. 그곳에서 제품 생산의 공정을 참관할 수 있었다. 산에 금속제작은 재일교포 3세가 운영하는 곳으로 주방 싱크대의 배수구, 자동차 부품 등 다양한 금속제품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공장의 시스템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직원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얼핏 보아도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규모도 꽤 큰 이곳에서도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젊은 신입사원들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베트남 연수생을 불러 인력을 보충해 현재는 베트남 사원이 25명에 이른다고 한다. 공장장은 “회사가 커지면서 젊은 신입사원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이 3D업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음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오사카 시 기타구에 있는 나카자키쵸. 나카자키쵸는 오사카 교통의 중심지인 우메다 역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백화점 등 상업시설과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우메다와는 다르게 나카자키쵸는 개발되지 않은 한적한 마을이다. 노년층과 빈곤층이 많이 살고 있던 이 동네는 낡은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리모델링을 해서 영업하는 가게가 많았는데, 이곳에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인 ‘아만토 마을’이 조성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아만토 마을은 골목과 마을을 허물고 새로 다시 짓는 도시 재개발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원래의 것을 그대로 둔 채 그곳에 필요한 부분만 덧대었다. 정부나 민관 합작사업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도시재생을 실현하고 있다. 그래서 아만토 마을은 마을 공동체의 살아있는 모델이며 도시 재생의 이상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다. 그런 이곳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창의성.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 마을의 활력을 되찾아 주고, 활력을 되찾은 도시가 지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며, 외부인에게는 이 도시를 방문하도록 해 문화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오리센터 내부의 모습. 수공예품들과 바느질 도구들이 눈에 띈다(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사오리센터.’ 사오리센터의 오리는 바느질을 뜻하는 단어인데, 한 장애인이 100년 전의 건물을 개조해 가게를 열었다고. 그는 매월 100명 정도의 수강상에게 직접 수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곳곳에 바느질 도구들과 형형색색의 옷감들이 보였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의 턱을 없앤 것도 눈에 띄었다.

아만토 마을의 극장 내부. 최대 30명까지 관객들을 수용 할 수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다음으로 우리가 방문한 곳은 마을에 있는 작은 극장. 이곳은 일반 영화관과는 달리 상영하는 영화가 정해져 있지 않고, 4명 이상의 관객이 모여 특정 영화를 요청하면 그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최대 수용 관객은 30명으로 2015년 네팔 지진, 2016년 일본 구마모토에서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한 상영회도 열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나카자키쵸 도시 재생사업의 창시자 니시오 준 씨를 만났다.

나카자키쵸 도시 재생의 설립자 니시오 준 씨가  도시 재생 사업의 목표와 경과에 대해 탐방단에게 설명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예술가인 그는 2001년 당시 120년 된 옛날 연립주택을 개조해 주민들과 함께 ‘살롱 드 아만토’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가 집을 만드는 원칙은 하나였다. 마을에 버려진 물건들을 재활용 하는 것.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려 마을 공동체의 시초가 된 살롱 드 아만토가 문을 열었다.

아만토(Amanto)란 한자로 천인(天人)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 이 단체에는 각기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 30명이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주민들과 화합하고 있다고 한다. 한 예로 극장에서는 마을 청년과 주민이 함께 출연해 촬영한 작품을 상영하기도 하는데, 니시오 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이 아만토가 추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과 누리는 것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니시오 씨에게 도시 재생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처음 도시 재생을 결심한 순간을 회상했다. “과거 90년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부동산 시세가 10분의 1로 추락했다. 그 때 한 건물주가 매각도, 임대도 불가능한 건물을 헐값에 빌려줄 테니 건물을 활성화해 달라는 제안을 했고, 흥미를 느껴 수락을 했다. 그리고 거리의 활기를 되찾는 데 5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고. “그 뒤 지역 부동산이 활기를 띄자 건물 주인은 재계약을 거부했고, 순식간에 우리 모두는 도시에서 쫓겨났다. 사실 그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나는 기업의 자본에 기대지 않고 자립적인 기반을 쌓는 것에 초점을 둔 아만토 마을을 세우기로 결심했다”며 “그러려면 지역사회의 주민들과 함께 살아야 하며 그곳의 주민들과 협동할 때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 없이 도시 재생이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의 목표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일하는 것”이라며 “가령 누군가가 의류판매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인테리어에 관한 자문을 해줄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욕구로 새로운 기회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아만토 주민들은 수익을 목표로만 하고 있지는 않다”며 “점포 모두가 흑자를 내지는 못하지만, 지역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매출이 100이라면 순 이익은 30 정도가 되는데, 그 중에서 10은 지역사회 활동과 기부를 전제로 해 아만토 마을의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순환 가능한 소비를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며 “소비자는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고, 마을을 유지하는데 보탬이 되는 동시에 사회적 기부 활동을 하는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장 옆 그래놀라를 파는 카페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그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3원칙을 강조했다. 첫째는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일 것, 두 번째는 지역 주민이 참여할 수 있을 것. 셋째는 세계의 시민을 위한 일이어야 할 것. 

니시오 준 씨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단편적으로나마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한국이 걸어온 길이기도 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들이,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숙소로 향했다.

취재기자 박준우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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