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한국 IT 개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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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한국 IT 개발자들
  • 이재혁
  • 승인 2013.01.16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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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한국이 IT 강국이라 말한다. 인터넷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IT 업계의 개발자들은 과중한 업무와 근로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부산의 ㈜삼성전기(부산 북구 구포동 소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직으로 일하고 있는 박성준(26)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 삼성계열사는 그래도 대기업이라서 근로시간과 급여수준이 좋지만, 수많은 중소 업체들은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중소기업에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주 40시간 근무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매일 야근에 시달렸다” 며, “프로그램 작업에 실수가 있었다는 이유로 사장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적도 있다. 머리를 몇 차례 쥐어 박히는 인격모독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 면서 중소 IT 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호소했다. 박 씨의 말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급여에 대한 확실성이 없으며, 대기업에 대한 로비가 잘 이루어져서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잘 받아야지만 회사의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는 것이었다.

박 씨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서는 개발자에게 단기간에 무리한 프로젝트를 요구하고, 언제든지 쓰다가 버릴 기계의 부속품 같은 취급을 한다” 며 넋두리를 했다.

또한, 대구의 중소 IT 업체인 ㈜ANYit에서 일하고 있는 이상은(36)씨는 “프로그램을 짜다가 주문 형식이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되는데, 고객이 기존업무와 다른 새 업무를 추가시켰다. 결국 팀원들이 주말 밤을 꼴딱 샜는데, 월요일에 고객이 와서 결과물을 보더니 하는 말이 ‘거봐, 갈구니까 되잖아.’ 이러더라. 군대가 따로 없다” 면서 무리한 업무량과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하소연했다.

그나마 소수의 대기업의 경우는 사정이 좋다고 한다. IT서비스 기업 SK C&C에서 근무하는 최현준(29)씨는 “예전에 있던 중소기업과 비교하면 여기는 천국이다. 급여수준과 사원복지수준부터 차이가 나고, 주말에는 쉴 수 있다. 회사 자본금도 중소기업보다 훨씬 많다. 이번에는 동유럽권에 프로그램 수출을 한다고 하니 해외 진출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중소기업에 있던 시절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며 힘든 IT 업계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IT 개발자들 10명 가운데 7명이 주 3회 이상의 야근(70.8%)과 주당 평균 50시간 이상의 과로 노동(73.2%)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는 자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기업들의 모임인 자바개발자단체(JCO)가 2007년 7월부터 2007년 8월 21일까지 정보기술 개발자 18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나온 결과다.

개발자의 절반가량은 주 4회 이상(46.7%), 하루 평균 2~4시간의 야근(53%)을 하지만, 연봉은 1000만~3000만원 선(48.8%)에 머물고 있다.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을 넘는 노동자가 38.3%, 70시간을 넘기는 이들도 16.7%나 됐다. 때문에 10명 가운데 6명 가량(57.9%)은 40살 이후에는 현역 근무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IT 업체들은 수익을 위해서 개발자들을 부려먹기 일쑤이며,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로 나가려고 하고 있다. 입사의 문턱이 높고, 갑의 입장에 있는 대기업 직원들은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을의 입장인 수많은 중소기업 IT 개발자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지 않고 있다. 이상은(36)씨의 경우도 해외로 나가기 위해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개발자들의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은 이공계를 점점 기피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T 업체 경영자들의 생각이 변해야 하고, 정부에서는 관련부처를 통해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하고 대책을 마련해 IT 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능력 있는 개발자를 진정한 전문가로 인정해주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국내의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이 진정한 IT강국이 되기 위해선 인터넷 이용만 편리할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심신이 편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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