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조기교육'...고교생들, 학교신문 제작으로 기자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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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조기교육'...고교생들, 학교신문 제작으로 기자 훈련
  • 취재기자 박영경
  • 승인 2017.01.3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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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성여고 신문동아리, '크로바' 발행...비판의식 양성 통한 민주시민 키우는데 한몫 / 박영경 기자

언론은 세상 일을 알려주는 보도의 기능과 세상 일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논평의 기능을 한다. 그렇게 해서 언론은 정부를 감시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민주주의의 작동에 중요한 기능을 맡은 게 바로 언론인 것이다. 미국은 고등학교에서 미디어를 실제로 운영하게 하는 과목이 있어서 언론을 통한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정규 교육과정에 그런 과목은 없다. 그러나 학생들이 언론의 역할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동아리를 운영하는 고등학교가 있다.

부산 남성여고 신문편집부원들이 자신들이 만든 신문을 펴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부산 대청동 남성여자고등학교는 학기 단위 또는 연 단위로 교지만 발행하는 일반 학교들과는 달리 분기마다 교내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2016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남성여고 신문편집부는 담당 교사의 지도 아래 2학년 6명, 1학년 4명의 학생 기자로 구성돼 있다. 이민철 담당교사는 “처음엔 70년 학교 역사를 소개하는 교지 역할 정도가 교내신문의 취지였다”며 “지금은 학교의 역사뿐 아니라 학교가 돌아가는 상황을 신문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학교 신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교내신문은 2015년부터 교사 중심으로 발행했으나 신문편집부를 구성해 학생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게 한 것은 2016년부터. 2015년 처음 나온 교내신문 ‘크로바’ 1~4호는 이 교사를 중심으로 이 학교 국어 교사들이 취재와 제작을 맡았다고. 

남성여고 신문편집부가 제작하는 교내신문 ‘크로바’(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크로바'의 기사는 학교 학사일정과 학생 활동 소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크로바'는 교내 행사, 동아리와 학생들의 수상 실적, 동창회 소식, 특별기획 인터뷰로 구성된다. 신문편집부 취재는 수련회 및 체험학습 등 1학년 행사는 1학년이, 2학년 행사는 2학년 기자들이 맡고 있다. 교사 연수, 학교 정책, 행정 업무는 이민철 교사가 직접 기사를 작성한다. 학생들이 작성한 기사로는 2학년 행사인 추계문화체험 활동을 담은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한껏 만끽하고 오다,’ 1학년 행사인 단체수련 활동을 담은 ‘경남청소년 수련원에서 찾은 나의 꿈’ 등이 있다. 신문이 발행되면 전교생에게 배포된다.

'크로바'를 받아 본 남성여고 1학년 소수연 양은 “요즘 학생들은 무겁고 진지한 주제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남성여고 교지편집부에서 활동했던 졸업생 이선주(21) 씨는 모교에서 교지뿐 아니라 신문까지 발행된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이 씨는 “신문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여고 후배들이 자랑스럽다”며 후배들의 활동에 기대감을 보였다.

신문편집부에 가입해 기자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깐깐한 서류심사와 면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이렇게 선발된 정예 기자들은 이민철 교사와 함께 동아리 수업 시간을 통해 신문 제작에 필요한 실무 위주 수업을 받기도 하고, 기자로서 사회를 보는 시각을 키우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도 한다. 이 교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 비판의식, 교내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기르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꿈꾸는 신문편집부 2학년 서한솔(18) 양은 교내 UCC 제작 자율 동아리인 ‘루케테’ 동아리장인데, 보다 체계적인 글쓰기를 배우고,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고 싶어서 신문편집부에 지원했다. 서 양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려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루케테’와 신문편집부 활동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신문편집부장 전서현(18) 양은 부서 가입 후 배운 지식으로 기사를 취재하고 작성하는 활동이 무척 흥미롭다고 말한다. 전 양은 부산일보 청소년기자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신문편집부에서 배운 실무능력이 기사 아이템을 찾아 기사화하는 기자단 활동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전 양은 “'크로바'가 지금은 교지 역할에 국한돼 있지만 앞으로는 김영란법, 국정교과서, 대통령 탄핵 등 사회문제를 학생들의 시선에서 취재해 지면에 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취재는 학사 활동 중 기사가 될 만한 행사에 기자들이 직접 참가해서 사진을 찍고 행사 내용을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기사로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사전에 상대방과 약속을 잡아두고 질문을 준비하는 등 기성 기자 못지 않게 기만한 움직임을 보인다.

1학년 김의선 양은 기자로서 행사를 취재하는 동시에 학생으로서 행사에 참여해야 해서 힘들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김 양은 “특히 춤을 춰야했던 독도 플래시몹 행사 때, 참여와 취재를 동시에 진행하는 바람에 너무 정신이 없었다”고 전했다.

학생기자들은 아무래도 학교신문인 만큼 지면이나 시설 제약이 있어서 기자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2학년 김다솔(18) 양은 '크로바'에 모든 학교 활동을 다 실으려는 욕심이 앞서서 내용이 다소 부실해질 때도 있다고 자평했다. 김 양은 “4면 체제여서 지면이 부족하다. 조금 더 지원을 받아 지면을 늘리면 우리 '크로바'가 질적으로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철 교사도 신문을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하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의 건의사항과 학교의 여러 문제를 담으려면 지면이 늘어야 하며, 그래야 ‘진짜 교내 언론’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한 번 훑어보고 던져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뉴스와 정보를 전하는 신문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현재 신문편집부 학생들은 동아리실이 없어 컴퓨터실 등 다른 공간을 이용해야 한다. 취재에 필요한 카메라도 구비돼 있지 않아 사진 촬영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다. 전서현 양은 “올해에는 학교에 신문편집부 지원 확대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사도 신문편집부 학생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 확보되면 더욱 재밌는 기사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신문편집부를 향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올해에는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남성여고 신문편집부 편집국장 역할을 맏고 있는 김종석 교감(사진: 취재기자 박영경).

'크로바' 편집국장을 맡고 있는 남성여고 김종석 교감은 신문편집부가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김 교감은 신문을 발행하는 고등학교는 전국에도 몇개 없고, 부산에선 남성여고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김 교감은 “신문편집부 활동 경험을 통해 배우는 비판적 사고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향후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정태철 교수는 남성여고의 신문편집부처럼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언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민주시민 교육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학생들 시각에서 학교와 사회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토론하는 일은 민주시민이 되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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