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 볼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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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운세, 볼까 말까?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01.3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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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1994년 1월 어느날, 나는 한 시사 월간지 신년 특집 기사를 읽었다. 여러 예언가들이 우리나라 그해 국가 운세를 예언한 것을 취재한 기사였다. 점잖은 잡지들도 예나 지금이나 가끔은 이런 종류의 흥미성 기사를 내보내는데, 그 기사에 실린 내용 중엔 어느 무당이 김일성이 조만간 죽는다고 예언한 게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아내에게 보여주면서 “이게 정말 맞을까?” 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그해 7월 어느 날, 나는 차를 몰고 아내와 같이 어디를 가고 있었다. 그 때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긴급뉴스가 들렸다. 나와 아내는 동시에 그 기사를 떠올렸고,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김일성 사망을 예언한 무당은 일약 스타가 됐다. 그 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그 집에 장사진을 쳤다고 한다. 그 무당은 그후 언론의 주목에서 서서히 멀어졌는데, 아마도 그의 신통력이 날이 지날수록 예전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빅뉴스 설 특집 기사 중에 ‘토정비결의 진화, 이젠 스마트 폰 앱으로 새해 운세 봐요’라는 기사가 있었다. 설날 연휴에는 믿거나 말거나 토정비결이나 올해의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 결혼, 이직, 사업, 건강 등 결과를 궁금해 할 일은 우리 일생에 끝도 없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서양식 타로점도 부산의 남포동은 물론 전국 각지에 타로거리가 있을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사주, 관상, 손금, 점성술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 지인 중 한 분은 역학 공부에 심취했다. 주변 사람들 사주를 봐줬고, 모두들 그 쪽집게 같은 예지력에 감탄했다. 그분은 부산의 좋은 직장에서 이직 제의가 왔으나 자신의 운세에 남쪽으로 갈 운이 없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그분은 내가 유학 가기 직전 나에게 박사가 될 사주이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별다른 종교가 없는 나는 당시 석박사 종합시험 등 유학 중 중요 고비가 있을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심리적 압박감에 사로 잡혔으나,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그 분이 말한 사주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힘이 되어 주었다. 결국, 내 사주 덕인지 내 능력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나는 박사가 되어 교수자리에 올랐다.

기독교 전통이 있는 서양에도 미신적인 요소가 많다. ‘palm(손바닥, 손금) reader’나 ‘fortune teller’ 같은 간판이 도시 골목에 눈에 띈다. 보스턴 레드 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 등은 월드 시리즈 시즌이 되면 미국 언론에서도 흥미 있게 다룬다. 영어권에서는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옆 사람이 재채기하면 “Bless you”라고 얘기해 주는 게 예의다. 신이 재채기를 하게 해서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잡귀를 내쫓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신이 너에게 축복을 내렸구나,” 즉 “God bless you,” 혹은 줄여서 “Bless you”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재채기한 사람은 "Thank you" 하고 답례하는 것이 예의다. 또,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와 같은 예복을 입고 그들의 친구들이 들러리를 서기도 한다. 결혼식이라는 좋은 일을 방해하려고 악마가 신랑이나 신부를 납치하러 온다는데,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럿이면, 악마가 진짜 신랑 신부가 누군지 못 찾아 납치하지 못한다는 미신에서 들러리 전통이 유래했다고 한다.

각종 미신적인 예언들을 믿는 사람의 심리를 심리학에서는 일종의 ‘위약(僞藥, 가짜약)효과’라고 한다. 환자들은 증류수를 주사해주면서 진통제라고 속여도 실제 통증을 잊는다는데, 가짜약을 뜻하는 영어 플라시보(placebo)를 따서 ‘플라시보 효과’라고도 한다.

‘바넘효과(Barnum effect)’라는 설명도 있다. 미국의 19세기 서커스 흥행사 바넘이 거인, 인어, 100세 넘은 사람 등 엉터리 전시물로 사람들을 모아서 흥행에 성공했는데, 그는 거짓이지만 사실에 가깝게 만든 전시물을 홍보로 교묘히 포장해서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이 속아 넘어 가게 했다고 한다. 이것처럼, 심리테스트나 혈액형에 따른 성격을 대강 얘기해주면, 개개인은 마치 자신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으로 믿는 것을 바넘효과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예언가 말을 믿는 경향도 일종의 바넘효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신처럼 과학도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다만, 과학은 그 예측을 증명하고 인과관계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신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과학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미래에는 그 현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자연과학에서 뉴턴의 운동법칙은 거시적인 우주의 운동은 물론 미시적인 분자와 원자의 운동도 정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미래 운동 방향도 예측해 준다. 이는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될 수 있다. 물이 100도에서 끓고, 특정 세균이 특정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도 모두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과학적 예측이라 불린다. 

문제는 사회과학이다. 1991년 소련 공산국가가 멸망했을 때 서방 언론들은 70년 간의 공산주의라는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사회현상은 미리 사람을 상대로 실험해 볼 수가 없다. 윤리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로 실제와 동일한 실험 조건을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닌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사회 운영방식을 실험 없이 국가와 국민들에게 직접 적용한 것이었고, 러시아 국민은 물론 공산주의 정권 밑에서 신음했던 전 세계 수많은 공산국가 국민들은 공산주의라는 제도의 생체실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선거 때마다 공약이란 이름으로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들은 선례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면 '무책임한 예언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개헌 논의도 실험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게 얼마나 긴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줄지 아무도 모른다. 분권형 정부, 내각책임제, 이원집정부제, 4년 중임제 등을 놓고 우리는 실험해 볼 수도 없고 미신에 의지할 수도 없으니, 목소리 큰 정치인의 의견에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을 뽑는 문제도 누가 나을지 실험해 볼 수 없으니 인기 투표처럼 선거로 뽑을 수밖에 없다는 게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럴수록 언론과 국민은 정신 바짝 차리고 중의를 모아야 한다. 젊은 연인들이 '궁합'을 보는 것도 계약결혼처럼 사전에 결혼을 실험해 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미래를 모른다는 것이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면, 미래를 알면 인간은 행복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서 결과를 알고 그 원인을 바꾸면, 현재나 미래가 바뀐다는 주제를 영화화한 <백 투 더 퓨처>, <어바웃 타임>, <당신, 거기 있어 줄게요>란 영화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화적 상상력이며 희망적 기대(wishful thinking)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히려 현실에 충실하는 게 인생에 좋다는 교훈을 줄 뿐이다. 

간혹 정치인들은 <삼국지>의 제갈공명 같은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 듯하다. 정권을 잡는 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더 킹>의 한 장면처럼 특정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또는 되지 않게 해달라고 굿을 올리고도 싶을 것이다. 누가 제왕상이며, 차기 대권은 누구에게 갈 것이라는 예언을 어느 신통방통한 무당에게 미리 듣고 정치적 배팅을 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그런 일은 없다. 바둑 고수는 몇 수 앞을 내다본다지만, 현실 정치 세계에서 아무리 정치 9단이라 해도 몇 수 앞 예측은 불가능하다. 정치 상황에 대한 그럴듯한 분석과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이게 바로 정치학자, 언론인, 정치평론가들의 내공이다. 요새 종편 방송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로 그들의 안목이 신통치 않아 소음으로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적 예측력이 세계 역사에 기여한 바가 없지는 않다. 국제정치학자 키신저가 자기 이론대로 미소 간 양극체제의 국제질서를 다극체제로 전화시켜 냉전체제를 완화했고, 케인즈의 '큰 정부' 이론대로 미국 정부가 뉴딜 정책을 실시해서 대공황을 극복했으며, 우리나라 서강학파의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이론이 한국의 70년대 고도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이 갑작스런 소련 공산주의의 멸망과 동서독 통일 시기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리 과학적 설명력과 예측력을 총동원해도 우리나라 과거의 IMF 도래, 최근의 트럼프 당선, 미래의 남북통일 시기, 올해 차기 한국 대통령 당선자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주식으로 떼돈벌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다음 에피소드는 학문적 이론보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더 귀중한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옛날 어느 마을에서 가뭄이 지속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기우제 직후 기적처럼 비가 왔는데,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 단 한 명의 꼬마아이 만이 우산을 가지고 왔더란다. 사람들이 "너는 어떻게 우산을 가지고 올 생각을 했냐"고 묻자, 그 꼬마는 “비 올 거라는 확신도 없이 어떻게 기우제 지낼 생각을 하셨어요?”라고 어른들에게 반문하더란다. 현 상황을 입력하면 미래를 알려주는 인공지능이 생긴다고 한들, 미래를 미리 알면 무슨 사는 재미가 있을까? 부질없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인간의 진정성 있는 '노오력' 말고는 답이 없다. 취준생, 정치인들이 곱씹어 주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이 글의 제목, '오늘의 운세, 볼까 말까?'에 답할 차례다. 뉴욕 타임즈에도 ‘오늘의 운세’가 실리는 모양이다. 오늘의 운세가 잘 안 맞는다는 항의가 여러 날 빗발치자, 편집국장이 오늘의 운세를 담당한 예언가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신이 연재한 오늘의 운세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계셨겠지만, 당신은 오늘부로 해고요“라고. 오늘의 운세? 그거 볼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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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랭이 2017-02-04 20:45:30
오늘의 운세보다 오늘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좋을 것 같네요 ^^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