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나는 비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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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나는 비혼자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7.01.2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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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세태 반영, 비혼 선언하는 젊은이 급증...'비혼식'열고 축의금 돌려받기도 / 정혜리 기자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이유로 비혼 문화가 퍼지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나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며 중소기업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찬웅(33, 서울시 관악구) 씨는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인 그는 자신을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비혼주의자는 결혼을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뜻한다. 김 씨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결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여자 친구 역시 결혼할 마음이 없는 비혼주의자라고 했다. 혼자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대한민국에서 결혼제도에 스스로를 얽어매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은 큰 부담이라는 것.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혼주의 트렌드는 어찌 보면 한편으로 당연하다.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고도 취직하기 어려워 고등학생부터 40대 아저씨가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하나에만 목을 매는 나라. 남 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면 혼자 벌어 저축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사치다. 결혼 준비에만 수천 만 원이 들고 가진 돈에 맞는 신혼집은 출퇴근만 2시간이 걸리는 외곽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 모니터'가 만 19세~59세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비혼족 설문조사(복수응답)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들은 비혼족이 증가하는 이유로 돈 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71.2%), '자녀 양육비 부담감'(63.1%), '높은 주거비 부담'(60.8%)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비혼을 놓고는 '이해가 된다'(68.3%), '나도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63.6%), '공감이 간다'(60.8%)고 답했다.

그밖에 '자신에게 투자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비혼의 이유를 꼽은 이들도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자신에게 올인하고 싶다는 것. 같은 비혼족 설문조사에서 '자신에게 투자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85.1%), '직업 있고 능력 있으면 연애만 하고 살아도 좋다'(69.9%), '나는 결혼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42.8%)는 반응도 나왔다. 

한편 2007년부터 비혼여성 축제를 열어온 '언니네트워크' 측은 비혼문제에 관해 “여성의 경우 결혼 이후의 평등이나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압박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 패스트푸드업체에서 일하는 이연옥(27, 부산시 연제구) 씨는 최근 부점장으로 승진했다. 남자 친구와 4년째 연애 중이지만 결혼 생각이 없는 이 씨는 “결혼하면 아무래도 여자가 살림도 해야 하고 애도 낳을 텐데 그 생각하면 큰 부담”이라며 “지금은 결혼이나 아이보다 내 성취에 가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달리 결혼하고는 싶지만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의 혼인 제도에선 결혼은 남녀가 부부관계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바로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만 할 수 있는 제도. 성소수자들은 이 제도를 거부한다. 레즈비언 최모(30, 경북 대구) 씨는 “나는 대한민국의 혼인제도를 거부하는 비혼 상태”라고 말했다. 혼인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결혼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최 씨에게 자신은 언젠가 결혼할 ‘미혼’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는 ‘비혼’이다.

방송인 박수홍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혼식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 tvN 택시 중 캡쳐).

‘비혼’을 선언하며 ‘비혼식’을 가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방송인 박수홍 씨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비혼식’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친구, 지인들의 결혼식, 자녀 돌잔치에 낸 축의금을 결혼할 일 없는 자신은 돌려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비혼식’을 열어 축의금을 돌려받을 예정이라는 것.

캐나다 유학생 이모(36, 캐나다 밴쿠버) 씨는 한국에서 떠나기 전 몇몇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자신이 낸 축의금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장난으로 받아들이던 친구들은 진지하게 결혼하지 않을 것임을 설명하는 이 씨에게 흔쾌히 축의금을 돌려주었다. 이 씨는 외국으로 떠나서는 직장상사, 친척들에게 듣던 “언제 결혼할 거냐?”는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이 씨는 “한국 사람들은 인생에서 결혼이 필수이고, 결혼을 해봐야 어른이 된다고, 여자는 아이를 낳아봐야 여자가 된다고 여긴다”며 “결혼하지 않는다고 미래에 고독사하는 것도 아닌데... 결혼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외롭지 않은 다른 관계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결혼은 선택이라고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선택하지 않은 쪽만 문제 삼는다.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거나, ‘결혼하지 못한 이들은 어딘가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언니네트워크 측은 결혼 제도 거부 트렌드에 관해 “먼저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란 굳어진 사회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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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맘 2017-01-25 17:38:28
어렸을 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소꿉놀이도 자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이제는 결혼이 환상이 아니라 현실로 느껴져요. 아직 결혼 할 나이는 아니지만요! 기사를 통해 가슴 아픈 현실을 느껴서 착잡하고 쓸쓸합니다. 그래도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룰루 2017-01-23 10:08:42
제 주변만봐도 여러 상황때문에
비혼자를 생각하는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혼에 아예 뜻이 없는
분들도 계시고 경제적인 부분에서
비혼자를 선택하신 분들도
계시고요.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저도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뜻을 존중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앞서 만약,
비혼자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우리 사회
구조탓이라면 그에 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