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트는데 산더미 서류 필요..."휴~. 통장 만들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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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트는데 산더미 서류 필요..."휴~. 통장 만들기 이렇게 어려워서야"
  • 취재기자 송민아
  • 승인 2016.11.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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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대포통장 막는다며 온갖 증빙 요구...''통장 고시(考試)' 신조어도 등장 / 송민아 기자

통장 개설자와 사용자가 다른 통장인 ‘대포통장’이 보이스피싱, 탈세, 대출사기 등 각종 범죄에 사용되자 은행들이 대포통장을 막는다는 이유로 신규 계좌 개설시 계좌의 사용 목적을 확인하기 위한 각종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출하라는 서류가 너무 많고 까다로워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본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 도장만 있으면 통장 개설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신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선 본인임을 증명하는 서류 외에도 통장 사용 목적별로 까다로운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빗대어 통장 발급받기가 고시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뜻으로 ‘통장 고시’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금융감독원은 대포통장으로 인한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2015년 3월부터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제출 제도’를 시행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에서는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신규 계좌 개설시 ‘금융거래목적확인서’와 ‘객관적 증빙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금융거래목적확인서’란 금융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는 서류다. 확인서에는 금융거래 목적을 필수로 기재해야 하며, ‘타인으로부터 통장 대여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타인으로부터 신용등급 상향, 대출 등의 목적으로 통장개설을 요청받은 사실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기 어렵거나, 증빙서류를 갖추지 못해 계좌를 개설하는 목적이 불명확하다고 판단되면 은행은 신규 계좌 개설을 거절할 수 있다.

최근 각 은행 입구에는 ‘금융거래목적확인서 제출 제도’ 시행에 따라 증빙서류 구비를 요청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사진: 취재기자 송민아).

새 제도에 따라 통장을 개설하려면 우선 그 통장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통장의 목적이 월급을 받는 통장이면 급여계좌, 사업자가 각종 사업상 거래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사업자 계좌, 동창회 등 모임용이면 모임 계좌, 대학생이 알바 월급을 받는 용도면 아르바이트 계좌, 교수 등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받고 사용하는 목적이면 연구비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일반인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사용하는 일종의 ‘막통장’ 같은 것은 금융거래 한도계좌를 개설하는데, 1일 통장 입출금 한도가 100만 원, 1일 ATM이나 전자금융 한도는 30만 원으로 제한이 되는 불편함이 따른다.

신규 입출금 계좌를 개설할 때 필요 서류는 통장의 목적에 따라 다르며 은행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신한은행을 예로 들면, 급여계좌 증빙서류는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급여명세표, 명함 등이며, 사업자 계좌 증빙서류는 물품공급계약서, 세금계산서, 재무재표, 부가가치세증명원, 납세증명서 등이고, 모임 계좌 증빙서류는 회칙 및 구성원 명부 등 모임 입증 서류, 아르바이트 계좌 증빙서류는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 사본, 근로계약서, 급여명세표 등 고용확인 서류, 연구비 계좌 증빙서류는 연구비 계약서와 지급 단체 사업자 등록증 또는 증명서 등이다.

증빙서류 미제출 등으로 인해 신규 계좌 발급이 불가능한 경우는 하루 이체한도가 제한되는 한도계좌밖에 개설할 수 없다(사진: 취재기자 송민아).

새로운 계좌 개설 제도가 이처럼 복잡한 증빙서류를 요구하자,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갖가지  불만이 새나오고 있다. 

대학생 정모(22, 부산시 진구) 씨는 최근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을 계좌를 개설할 목적으로 은행을 찾았다. 정 씨가 면접을 본 가게에선 월급을 A은행 통장으로만 입금하기 때문에 A은행 통장사본을 그 가게에 제출해야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계좌 개설을 위해 은행을 찾은 정 씨는 은행원으로부터 아르바이트 통장을 개설하려면 고용주의 사업자등록증 사본, 근로계약서, 급여명세표 등 고용확인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정 씨는 당시 면접만 본 상태이기 때문에 고용을 증명할 서류를 은행에 제출할 수 없었고, 알바를 할 가게에서는 정 씨에게 계좌 번호를 알려줘야 월급을 준다는 것이어서, 정 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은행원은 정 씨에게 “그럴 경우엔 목적 없이 사용하는 ‘한도계좌’를 발급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정 씨는 겨우 한도계좌를 개설하고 통장을 받아서 가게 주인에게 제출할 수 있었다.

정 씨 사례처럼, 증빙서류가 미비하거나 증빙서류의 진위 여부 판단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인해 원하는 목적의 통장 발급을 거부당한 경우, 금융 소비자는 하루에 인출할 수 있는 한도가 적은 ‘한도계좌’를 발급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은 거래 목적이 뚜렷하지 않거나 증빙서류를 갖추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한도계좌 통장을 받는 사례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대학생 최모(22, 경남 창원시 동읍) 씨도 아르바이트 일당을 받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려다 거부당했다. 올해 7월, 최 씨는 경남 창원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급한 사정이 생겨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친구 대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행사 주최 측은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통장 사본을 보내주면 통장 계좌로 일당을 입금해 주겠다고 했다. 최 씨는 해당 지역의 B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하기로 했다. B은행을 찾아간 최씨가 “아르바이트 일당을 받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려 한다”고 하자 은행 측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통장을 발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빈 자리를 메꿔준 것이라 증명할 서류가 없던 최 씨는 “친구 대신 3일간 일한 것이라 증명 서류가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사진은 인정되지 않느냐”고 물었으나 그것으로는 입증할 수 없다며 통장 개설을 거부당했다.

미성년자가 통장을 개설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최근 주부 김모(46,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초등학생 자녀에게 통장을 만들어주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큰 불편을 겪었다. 대포통장 방지 규제로 인해 미성년자인 초등학생에게 통장을 발급하기 위해선 구비해야할 서류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통장 개설자인 자녀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보호자 신분증과 도장을 제출하고 난 후에야 겨우 통장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김 씨는 “지금은 초반보다 규제가 약간 완화된 것이라는 말을 은행원으로부터 들었다. 대포통장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구비할 서류가 너무 많아 불편했다. 조금 더 현실에 맞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해영 국회의원(부산 연제구)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금융거래 한도계좌 개설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통장 발급 강화 제도 시행 후 한도계좌 개설 건수가 150여 만 건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많은 금융소비자들이 현 제도로 인해 목적에 맞는 통장을 발급받지 못하고 주로 한도계좌를 발급받는 불편을 겪고 있는 것.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국민은행의 한도계좌는 57만 6,608건, 신한은행의 한도계좌는 59만 1,050건이 발급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김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100만원으로 하루 거래 금액이 제한된 소액 계좌가 1년 사이 150만 건이나 개설된 것은 주로 어린 금융 소비자들이 ‘통장고시’라는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불편 정도를 보여주는 수치”라며 “대포통장을 막기 위해 지나치게 금융소비자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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