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일곱 자매들, 영국 ‘세븐 시스터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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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품은 일곱 자매들, 영국 ‘세븐 시스터즈’의 추억
  • 취재기자 조수연
  • 승인 2016.11.08 17: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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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여 년 전 생성된 석회질 절벽과 끝없는 해안에서 자연의 신비 만끽 / 조수연 기자

지난 1월, 나는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31박 32간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첫 시작점은 영국. 한 달에 7개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여정 중, 다음 여행지인 벨기에로 가는 기차표를 잘못 예약한 바람에 일주일을 영국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런던의 정교하면서도 적당히 높은 건물들이 가득한 도심 속에서 6일을 지냈다. 런던 킹스크로스 역이 우리 동네만큼 편안해졌을 무렵,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마음이 정화되는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 문득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에 앉은 언니가 추천해준 '세븐 시스터즈'가 생각났다. 우연히 이야기를 나눴던 언니가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이 ‘런던 시민'의 추천 방문지는 블로거들의 글보다 더 강력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세븐 시스터즈를 검색하니 광활한 들판과 절벽 사진이 가득했다. 몇 장의 사진만으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 이 곳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날 곧장 기차역으로 가 브라이튼 역으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그곳은 브라이튼 역에서 내려 이층버스로 한 시간이나 더 들어가야하는 거리에 위치했지만, 창 밖의 풍경은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드넓은 초원이 반겨주었다. 관광철이 아닌 겨울이라 그런지 걷는 곳곳에서 마주친다던 한국인도 만날 수 없어 쭉 이어진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영국풍의 공중전화 부스와 지나가던 강아지마저 화보의 한 장면으로 만들어 주는 드넓은 들판이 이어진다(사진 : 취재기자 조수연).

끝 없이 이어진 길을 걸으면서 눈 앞에 보이는 절경에 감탄하기도 잠시,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올라야할 오르막길이 보였다. 돌아갈 수 없어 걷던 그 언덕에는 주인도 없을 것 같은 수 많은 양 떼, 소 떼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여기 저기 묻은 진흙에 털부츠를 신고 온 것을 후회할 때 쯤, 드디어 눈 앞에 사진 속 절경이 나타났다.

세븐시스터즈 절벽 중 가장 높은 헤이븐브라우에서 걸어온 길을 내려다 보이는 절경.(사진 : 취재기자 조수연).

일부러 만들려 해도 힘들 것 같은 이 절벽들은 1억 3,000만~6,000만 년 전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작은 해조류와 조개껍데기의 석회질이 해저에 백악질의 산을 이루어 그 능선이 영국 해협과 만나 완성되었다고. 

세븐 시스터즈는 그 이름에서 뜻하듯 이름대로 7개의 절벽으로 만들어진 곳이지만, 사실 여덟 번째 절벽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름이 없고 작은 여덟 번째 절벽은 ‘에잇 시스터즈’가 되지 못했다. 세븐 시스터즈 절벽 중에서 가장 높은 헤이븐브라우는 높이가 무려 77미터에 달한다. 바닷물이 절벽에 부딪쳐 낙석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절벽의 모습은 계속 바뀐다. 하지만 그 속에 묻혀 있던 화석이 계속 드러나고 있으며, 이 중에는 흠 하나 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화석도 있다.

깎아내린 듯한 절벽과 끝 없이 이어진 해안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보고만 있게 만드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영화 <나우 이즈 굿>의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둔 시한부 환자 테사가 되어 보기도 했으며, 한국에 있는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절경을 보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마저 들었다. 그래서 한밤 중이었던 한국에 기어이 영상 통화를 해 부모님을 깨웠다. 그런데 1,300만 화소의 휴대폰조차도 이 찬란하고 빛나는 자연을 담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눈 앞의 풍경을 마음껏 눈과 카메라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절벽에 걸터앉아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안전한 들판에 앉아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사진 : 취재기자 조수연).

세븐 시스터즈에서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절벽 끝자락에 걸터앉아 ‘인생 샷’을 건지는 것이다. 하지만 먼 곳까지 와서 사진 한 장을 위해 목숨을 걸만큼 담력이 크지 않았기에 나는 함께 동행한 친구와 이곳저곳 수많은 사진을 찍으며 절벽 끝에서의 인생 샷 한 장을 대신했다. 겨울이 아니었다면 해질녘 붉게 물든 하늘을 보고 내려왔겠지만, 다음날 벨기에로 떠날 준비를 해야했기에 몇 번이나 뒤돌아보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여행하던 한 달간 많은 여행지와 관광명소를 다녔음에도 세븐 시스터즈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자연이 빚어낸 경이로움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눈에 담기도 아까운 이 풍경들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한다면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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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2016-11-17 23:24:50
이런 멋진 곳이 한국에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