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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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뭣이 중헌디?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6.11.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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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으로 얼룩진 국정감사 정국에서 연예인 발언 물고늘어진 한국 언론들 / 편집위원 양혜승
편집위원 양혜승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영화 <곡성>에서 의문의 증상을 겪는 효진이 아버지 종구를 쏘아보며 내뱉는 대사다. 영화 개봉 후 이 대사는 수많은 개그와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었다. 그야말로 2016년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로 등극했다. 이 대사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유는 효진이 이 대사를 내뱉는 장면이 영화 속 아버지 종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객을 놀라게 하며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유행어가 유행어로 그치면 좋으련만, 2016년 우리 국민들은 긴장감이 아닌 허탈함 속에서 “뭣이 중헌디?”를 연일 읊조린다. 그야말로 뭣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정치인들에 대한 허탈감 때문이다. 올해 국정감사는 이런 허탈감을 더욱 높여놓았다. 국정감사는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중요한 장치다. 국민의 대의기구로서 입법부가 정부정책의 난맥상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주문하는 기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목격한 기억이 거의 없다. 혹시나 했지만 올해도 역시나였다.

집권여당의 책임이 컸다. 여당 대표가 단식에 돌입하며 국정감사 초반 3분의 1을 허송해야 했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였지만 그 짧은 국정감사 기간을 날려버린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국정감사 초반부터 국민들은 “뭣이 중헌디?”를 읊조려야 했다.

단식사건 이후 재개된 국정감사는 온통 가관이었다. 우병우 정무수석과 관련된 의혹,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 그리고 그와 결부된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도 용두사미였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한심한 작태로 치면 국방부 국정감사가 하이라이트였다. 국방부 국정감사는 줄곧 연예인 김제동의 영창 이야기로 판을 채웠다. 문제의 발단은 백승주 의원이었다. 백 의원은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 김제동 씨가 지난 여름 한 방송에 출연한 영상을 틀었다. 김 씨가 군 복무 당시 군 사령관 사모님께 아주머니라고 불렀다가 13일간 영창에 수감됐다는 일화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김 씨가 군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방부 국정감사에는 김제동 이야기만 남았다. 사드 배치 문제, 방위산업 비리 문제 등 어마어마한 이슈들은 묻혔다. 백 의원은 국방부 차관 출신이다. 그런 사람의 눈에 굵직한 국방 관련 현안들보다는 연예인의 일화가 더 크게 비쳐지는 모양이다. “뭣이 중헌디?” 하는 국민들의 장탄식도 들리지 않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걸로 치면 정치인이나 언론이나 도긴개긴이 아닌가 싶다. 아니, 정작 더 큰 질책을 받아야 할 대상은 언론이 아닐까도 싶다. 무엇이 중요한 뉴스인지, 뉴스가치(news value)를 따지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9월 26일부터 10월 19일) 동안 우리 언론이 보여준 보도행태를 보면 기가 차기까지 하다. ‘국방부 국정감사’를 키워드 삼아 생성해본 워드 클라우드는 그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제동’이 독보적이다. 국방부 국정감사와 관련해서 언론들이 김제동 영창 이야기만 주야장천 다루었다는 증거다. ‘북핵 위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다루어졌다. ‘사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프로'를 이용해 워드 클라우드를 도출해보았다. 3개 방송사, 13개 중앙신문사, 25개 지역신문사 기사가 분석 대상이다(사진: 양혜승 제공).

어쨌거나 올해 국정감사가 지나갔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가 주인공인 막장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이 막장드라마는 그렇지 않아도 허탈감으로 가득한 국민들의 마음에 분노, 좌절, 참담함을 더하며 복잡 미묘하게 만들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규명하지 못했던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을 공영방송도 아닌 종편채널 JTBC가 발가벗겼다. 분명 2016년은 언론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해가 될 것이다. 언론이 사회에서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 정치가 죽었을 때 언론이라도 깨어있어야 한다는 가슴 아픈 증거로 말이다.

하지만 2016년은 우리 사회의 공영방송을 비롯한 주류언론에게는 부끄럽고 참담한 해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의혹에는 침묵하더니 속된 말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를 하고 있다. 안타깝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도대체 그동안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고는 있었는지 뼈아픈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쩌면 주류언론도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사들이 항간에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들먹이곤 한다. 물론 여론이 심상치 않은 이유일 게다. 하지만 사태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한 건 올리겠다는 특종욕심이나 선정주의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뭣이 중요한지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도대체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어떻게 유린되었는지 속속들이 파헤쳐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언론을 향해 “뭣이 중헌디?”를 또다시 읊조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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