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대상을 발견해 되살릴 때, 시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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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대상을 발견해 되살릴 때, 시가 탄생"
  • 취재기자 박준우
  • 승인 2016.10.17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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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 씨, 15일 제5회 부산국제문학제서 '시적인 것을 만나는 순간' 초청 강연 / 박준우 기자
'시적인 것들을 만나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부산국제문학제에 강연을 하러 온 안도현 시인의 모습 (사진: 취재기자 박준우)

제5회 부산국제문학제가 13~15일 부산예술회관과 경성대 누리소강당 일대에서 열렸다.

부산국제문학제는 부산문인협회가 주최하고 부산국제문학제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는 ‘문학 속의 미학과 종교’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15일 오후 2시 경성대 누리소강당에서는 ‘시적인 것을 만나는 순간’이라는 주제로 안도현 시인의 강연이 열렸다.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 <스며드는 것>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시인. 현재는 우석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인기를 증명하듯 강당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찼다.

이날 강연에 나선 안도현 시인은 평소 시를 쓰며 어떤 점에 중점을 두는지, 시적인 순간을 어떻게 만나는지, 어떤 방법으로 시를 쓰는지 등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청중들에게 상세히 풀어 놓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를 청중들에게 보인 그는 “이 시는 내 시 중 교과서에 제일 먼저 올라간 시”라며 “학교에서는 '시의 종류는 자유시, 음률은 내재율, 내용상 서정시' 등으로 구분해 학생들에게 가르치지만, 난 그렇게 일일이 나눠서 생각하면서 시를 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는 무엇무엇이다’라는 식으로 쪼개서 분석하는 건 시를 배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시적인 걸 찾을 수 있는지, 또 그 방법은 무엇인지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시인은 이어서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엔 걸레가 있다'가 전문인 짧은 시 <너와 나>를 청중들에게 소개하면서 시적인 언어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그는 “흔히 밤하늘에 별을 바라보면 누구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만, 구석에 걸레를 보면 더럽다는 생각을 한다”며 “하지만 별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주변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걸레도 별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창작 의도를 전했다. 그는 “이 시에서 가장 시적인 단어는 ‘별’이라고 흔히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걸레’가 더 시적인 언어”라며 “시적인 언어는 남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때 생기고, 누구나 생각하는 말은 누구의 가슴에도 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생이 쓴 <엄마>라는 동시와 <엄마의 런닝구>라는 시를 비교하며 시적인 언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작품 <엄마> 중 "엄마라고 부르면 목이 멘다"는 구절과, "비록 자신을 회초리로 때리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든다"는 구절 등을 들어 초등학생다운 순수함이 없는 시라고 말했다. 그는 “회초리로 자신을 때리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건 아이가 아니라 성모 마리아이며, 엄마라고 부르는데 목이 메는 건 치매가 걸린 친정 엄마를 보는 딸은 돼야 가능한 소리”라며 “초등학생 5학년이 쓰기엔 과장됐고, 시적인 언어가 없는 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찢어진 엄마의 속옷을 소재를 바탕으로 가족의 대화를 담은 <엄마의 런닝구>를 들어 그는 시적인 언어로 쓰인 시라고 말했다. 그는 “런닝구는 백과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기 때문에 누구도 런닝구를 제목으로 삼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하지만 런닝구를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시의 의미가 잘 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런닝구는 굉장히 시적인 단어”라고 말했다.

이어 간장 게장을 소재로 모성애를 설명한 시 <스며드는 것>을 보여주며 그는 시적인 것들을 발견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는 “시적인 것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찮게 여겨 잘 쓰지 않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시적인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이날 펼쳐 보인 그의 시론.

질의응답 시간에선 “시는 재능보다 노력이 우선된다고 강연 요지에 적혀있는데, 얼마나 노력해서 시를 썼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시를 잘 쓰기 위한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많은 시를 읽어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많은 시를 써보는 것”이라며 “나 자신 시를 한 편 쓸 때 최소 50번에서 많게는 200~300번까지 고칠 때도 있다”고 답했다.

“문학이 침체되어 가는 이유로 문학소년, 소녀가 없는 것을 들 수 있는데 문학을 어떻게 대중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현대 사회는 시보다 더 재밌는 것이 많지만 시가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돌이켜 보면 시의 독자는 언제나 늘 소수였고, 좀 더 좋은 시를 쓰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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