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 등 일부 지역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서 뜨거운 '배구열풍'이 불고 있다. 방과후나 토, 일요일 등에 부산 일대의 초등학교 교정에 가보면, 교사들이 배구공 토스 연습을 하거나 편을 갈라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교사들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건강 증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건 이같은 배구열풍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제는 원치 않는 교사들에게도 무조건 참여를 강요하는 사례가 적지않아 일부 교사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 개인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학교장 등의 암묵적 ‘강압’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배구열풍은 인권침해의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등 교육계에 따르면, 일부 지역 초등학교에선 매주 한두 차례 교사들이 학교장배 배구 경기에 사실상 강제적으로 동원된다. 명목은 교직원 친목 도모라지만, 배구를 하기 싫은 교사도 억지로 참여해야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승진을 위한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학교 교사 A 씨는 날씨가 선선해지는 게 끔찍이도 무섭다. 유난히도 더웠던 지난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배구를 못했지만,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는 배구경기가 계속 열리기 때문이다. 전날에도 배구 연습을 하고 왔다는 A 씨는 “교장이 수업보다 배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요즘에는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인지 배구 선수인지 모를 정도”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배구를 잘 하는 교사를 ‘스카웃’해 오는 일도 있다. 학교장이 ‘초빙교사제’를 이용해 해당 교사를 학교로 끌어온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교 교사들 사이에선 ‘배구=승진’ 공식이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분위기다.
A 씨는 “2월에 초등학교 교사 인사이동 결과가 발표되면 배구를 잘하는 교사들이 어느 학교로 가는지에 모든 학교의 관심이 쏠린다”고 설명했다. 배구로 유명한 교사가 발령받은 학교는 축제 분위기로, 그렇지 못한 학교는 분위기가 침울해지기도 한다는 것. 이는 학교장의 배구 사랑 정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교사와 다르게 초등학교 교사는 ‘특정 교육대학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시작한다. 이 때문에 특정 교대의 학벌주의, 경직된 조직문화 등 부작용이 함께 수반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학교장이 배구를 좋아하는 경우에는 모든 교직원이 의무적으로 배구에 매달려야 한다”며 “초등교사 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성격상 어쩔 수 없이 교장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배구 문화는 교사들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규모가 큰 배구대회가 열릴 때면 배구연습을 위해 쉬는 시간, 심지어는 수업 시간을 단축하고 하교 시간을 앞당겨 배구연습을 하는 학교까지 있다. 심지어 담임교사들은 배구 연습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과전담 교사들과 시간표를 바꾸거나 학생들에게 학습지 자습을 시키고는 교실을 비우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끝난 후 교사들이 출장 명목으로 우르르 학교를 비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큰 대회가 목전에 있을 때는 학생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며 “성과급 제도에서 배구를 못하면 승진은 꿈도 못 꾸는데 솔직한 말로 수업이 더 중요할 리가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르치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인데...막상 와보니 학교에서는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제일 뒷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지난 7월 충청도 교육청에서는 일선 초교에 배구를 자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기도 했다. 공문은 배구 등과 관련한 교사 연수 참여는 교사들의 자율에 맡길 것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대다수 시·도 교육청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사 B 씨는 “교원 간 화합 도모, 체력 증진이라는 구색 좋은 변명거리가 있는 이상, 배구 문화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학교 존재 이유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다들 깨닫고 지나친 배구 활동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