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은 ‘문화혁명,’ 저항은 ‘특권의 향수(鄕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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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은 ‘문화혁명,’ 저항은 ‘특권의 향수(鄕愁)’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6.10.0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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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심장 이상으로 갑자기 쓰러진 미국 국내선 항공기 승객 한 명이 마침 같은 항공기에 승객으로 탑승했던 심장 전문의의 응급처치를 받고 급히 공항으로 회항해 목숨을 건졌다. 같은 승객으로 이 광경을 기자 한 사람이 목격했다. 항공기 내 응급환자의 생명이 승객 중 의사 탑승 여부라는 우연에 달려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런 의문을 품은 기자는 취재 끝에 미국 국내선 항공기가 응급환자로 인해 한 해에 수백 회 회항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리즈 기획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현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모든 항공기 승무원들은 응급환자 처치 능력을 필수로 습득해야 하고, 항공기의 제세동기 비치가 의무화됐다. 기사 하나가 법을 만들었고, 그 법이 다수의 인간 생명을 지키고 있다.

9월 28일, 대한민국에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김영란법도 미국 항공기 응급환자 관련 법 제정 사례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오고 있다. 처음에는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일상화된 사교 방식을 이렇게까지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왔고, 위헌심판 청구도 뒤따랐다. 한국적 정이 사라진다는 볼멘소리도 나왔고, 학생이 교수에게 강의시간에 캔커피 하나를 건네도 위법이란 게 말이 되냐는 투정도 자자했다. 그런데 수만 원짜리 고급 한정식 식당은 김영란법의 직격탄을 맞았고, 닭똥집과 삼겹살을 파는 서민 식당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골프장은 한산했고, 조기 축구회는 아침에 공 차는 데 전혀 불편이 없었다. 김영란법 시행 1주일을 맞아, 이를 보는 반응이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김영란법이 지긋지긋했던 접대문화를 없앨 한국판 ‘문화혁명’이란 찬사이며, 다른 하나는 ‘아! 옛날이여’를 외치며 과거 좋은 시절을 못잊어 하는 ‘특권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김영란법 출현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관계가 있다. 대개 민주화된 선진국에서는 부정부패가 적다. 뇌물로 탱크도 살 수 있다는 북한 같은 고도의 비민주 독재국가에서나 극성을 부리는 게 후진적 뇌물상납이다. 그런데 국제투명성 기구가 발표한 2015년 부패지수에 따르면, 부패 청정 상태를 100으로 했을 때, 덴마크가 91점으로 1위고, 핀란드, 스웨덴이 각각 2, 3위, 싱가포르 8위, 미국 15위, 일본 18위, 우리는 56점으로 전체 국가 중 37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5년 국가 경쟁력 지수 순위를 보면, 우리의 국가 경쟁력은 26위, 비정상적인 뇌물 지급 순위 46위, 공공자금의 전용 순위 66위, 정책결정의 투명성 순위가 123위다. 민주화 이후에도 비민주적인 청렴 요소가 낯 뜨거울 정도로 우리 사회의 선진화 발목을 붙잡고 있다.

1980년대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여러 나라들은 고질적 군부 독재로부터 속속 민정으로 이양됐다. 그러나 군부와 토착 지주들이 뿌리 깊게 지배해온 남미 국가에서는 법과 제도는 민주주의로 근사하게 포장됐으나, 국민들의 의식은 이를 존중하고 지키려는 태도와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는 권부와의 친분에 따른 특혜가 일부 법으로 제한되자, 과거 독재시대로 돌아가자는 일부 기득권층의 여론이 득세했다. 이를 미국의 정치학자 게이(Gay)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는 의미로 ‘후기 권위주의(post-authoritarianism)’라 불렀다. 후기 권위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권력으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이익을 독점했던 엘리트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종의 특권 노스탤지어 현상이라고 게이가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권위주의는 갔으나 진정한 민주주의는 아직 오지 않은 과도기 수렁에 빠졌다. 우리나라를 후기 권위주의의 덫에 빠트린 것이 바로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이 지칭하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다. 부정 청탁과 이에 따른 금품 수수의 악습을 끊어야 선진국이 되고 나라가 바로 선다는 혁명적 발상을 한 사람이 바로 김영란 전 국민권익 위원장이었고, 이를 실천에 옮긴 사람이 최현복 당시 권익위 부위원장이었다. 최 부위원장은 최근 언론에 출현해서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선진 사회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김영란법 입법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처음 혼란은 있겠지만, 실천하면서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화 이후 여전히 비민주적인 사회 악습과 관행을 법 하나로 바꿔서 후기 권위주의의 덫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는 의도가 곧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였던 것이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공공기관, 학교, 언론사와 관련해서 진행되는 14가지의 업무 영역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인허가, 행정처분, 채용과 승진, 성적, 사업 선정, 포상, 입찰과 경매, 정부 자금 지원, 공공기관과의 거래, 병역, 평가 업무, 행정단속, 사건수사 등이다. 우리는 언제라도 이런 일 중 어느 하나의 문제로 관공서 갈 일이 있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권력기관이나 언론에 어디 아는 사람 없나를 반사적으로 찾는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학교 선후배나 친인척 연줄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습관적 행위이니, 이게 곧 청탁 ‘문화’다. 이때 기댈 언덕이 없거나 ‘근본 없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는다. 대개는 학연, 지연, 혈연에서 끈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소외의 찬바람을 맞는다. 이게 영어 유치원을 번창시켰고, 중학생은 특목고에, 고등학생은 일류대학에, 대학생은 대기업이나 공무원에 목을 매는 지극히 한국적인 병폐를 만들었다.

연줄을 찾았다면, 그 다음은 무언가를 청탁하기 위해서 그 연줄에 전화를 넣어야 한다. 통성명 후 서로의 인적 관계가 닿게된 제3자라는 연결고리와 각자의 친밀도가 확인되면, 그 다음 나누는 말이 “언제 밥 한 번 먹읍시다”이거나 “언제 식사 한 번 모시겠습니다”다. 진도가 빠르면, "오늘 날짜 잡읍시다"로 이어진다. 교제와 접대 문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접대 문화에서 여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올해 외무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이 70%를 넘고, 남자 합격자가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에서 정한 30%에 미달해서 일부 남성 지원자를 추가 합격시켰다고 한다. 이미 관가와 각급 학교에서 여풍당당 여초 시대가 열렸음에도, 여성 고위직 공무원 비율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OECD 최하위다. 그것은 남성 친화적 한국 스타일의 교제 및 청탁 문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OECD 성평등 지수는 28개국 중 꼴찌이고, 140개 국가 중 117위다. 그리고 여성 고등교육 비율, 남녀 임금 격차, 기업 여성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종합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OECD 28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회식 문화, 룸싸롱 문화, 골프 문화와 같은 우리의 후기 권위주의적 업무 문화가 아마도 여성 승진에 유리천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를 바꿀 것이며, 단언컨대 여성이 그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여성 고위직의 숫자와 비율 증가도는 아마도 김영란법 정착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듯하다.

란파라치 학원이 생겼다든지, 일부 계층이 경제적 손실을 입는 등 김영란법의 ‘의도되지 않은’ 역기능도 나타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한우, 자연산 송이버섯, 홍삼을 자기 돈으로 사먹으면 ‘을’이고, 선물로 받아먹으면 ‘갑’이란 말이 나돌았다. 이제 이런 고급 농축산물이 선물로 오가는 ‘미풍양속’은 종말을 맞게 됐다. 농축산가, 꽃집 등은 후진적이고 부도덕한 관행이 주 수입원이었다는 점을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어딘가에는 다른 살 방도가 있을 것이다.

원로 기자 조갑제 씨는 그의 특종 사냥법을 소개하면서 “(기자는) 술을 마심으로써 취재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지양하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맑은 정신으로 취재해야 정확한 정보를 취재원으로부터 얻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기자들이 알코홀릭이어서 취재원 붙잡고 술먹었던 것이 아닌 바에는 이참에 우리 언론의 취재 문화를 바꾸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공무원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문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매뉴얼대로 업무를 보면 된다. 끼니때마다 밥 먹자는 민원인들과의 달콤한 추억을 잊어야 한다. 금단현상은 당분간 있겠지만, 더치페이가 제일 속편하다. 학부모는 자녀 담임 선생님을 언제든지 만나 상담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상담이란 ‘업(業)’에 최선을 다하면 역시 그만이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스웨덴처럼 10평도 안 되는 좁은 사무실로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는 게 정상이고 우리가 비정상이란 생각만 하면 만사형통이다. 엘리트들끼리 형님 아우하면서 상부상조하던 의기투합형 의리 문화, 카르텔 문화, 그리고 배타주의는 이제 역사적 유물이 되어야 한다.

최현복 전 권익위 부위원장은 처음에는 공무원만 법 적용 대상으로 고려했으나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그 대상이 나중에 확대된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민간의 금융과 건축 분야가 다음에는 꼭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친 김에, 우리 사회는 금융과 건축 분야 종사자들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되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탤 필요가 있다. 김영란법은 이제까지 접대 문화에 끼지 못하는 소외 계층이 응원한다. 그게 김영란법의 최대 정당성이며, 기득권층이 특권과 특혜를 내려 놓아야 할 ‘불리한’ 근거다.

김영란법이 우리 국민의 의식을 바꾸어야 우리 사회도 선진국이 된다. 장석주 시인은 최근 출간한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산문집에서 “단순하게 살려면 모든 것을 작게, 더 작게 하라. 그릇이 작아야만 음식도 더 적게 담을 수 있다. 음식이든 인생이든 마찬가지다. 최소 규모의 삶에 최대의 행복이 깃든다”고 말했다. 인생 별 것 없다. 단순하고 작게 살자. 우리 국민이 그렇게 살아야 김영란법이 문화혁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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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뜸맘 2017-01-08 07:29:27
학생때 대놓고 선물요구했던 선생님 생각하면
좋은법같기도 하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음료사가는건데도 문제되는건 또 안타깝고..
그래도 좋은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