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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 흙수저 고통 한 번 겪어봤어?

기사승인 2016.06.09  18: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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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빅뉴스 논설주간 강성보

# 몇 년전 내가 맡은 취재보도론 강좌에 L군이라는 단골 지각생이 있었다. 첫날만 제대로 출석했을 뿐, 그 후 14주 내내 줄곧 지각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짜리 연속 강좌 수업인데, 매번 한 두시간 늦게 모습을 나타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고, 어떤 때는 아예 수업을 마칠 즈음 얼굴만 삐죽히 들이밀기도 했다. 수업에 들어와서도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L군, 어제 또 한 잔 쎄게 마셨구만”이라며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는 이에 가타부타 대답은 않고 씩 웃기만 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L군을 따로 불러 “리포트는 그럭저럭 써왔지만, 출석점수가 모자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 왜 그렇게 맨날 지각을 했니?”라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다 털어놓은 그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L군의 고향은 경남 함안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자식을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L군은 “학비와 생활비는 내가 스스로 벌어서 할테니 걱정마시라”며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부산 사립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도회지 생활은 그리 녹녹치 않았다. 편의점 알바, 야간 주점 알바, 공사장 노가다 일, 심지어 신문배달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등록금 대고 먹고 살기가 빠듯했다. 겹치기 알바도 여러 번 했다. 취재보도론 수업을 들을 당시 그는 3학년 1학기였는데, 세 가지 알바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낮시간 동안은 편의점에서, 야간에는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고 원룸 숙소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 4시면 다시 일어나 신문배달을 했다.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하며 즐길 시간이 있을 턱이 없었다. 대학생활의 낭만은 완전히 딴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 수업시간에 매번 지각을 하고, 수업에 들어와서도 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의 말을 다 들은 후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쓰려왔지만 “지금의 고난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큰 자산이 될 것이야.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조직에 몸담든 간에 웬만한 장애물은 너끈하게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을 것이야”라고 입에 발린, 별 영양가 없는 격려의 말을 하는 것 외에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의 학점란에는 A+를 매겼다.

# K양은 5년 전 내가 처음 경성대 초빙교수로 오면서 받았던 현장실습 과목 학생 6명 중 한 명이었다. 쾌활하고, 씩씩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아 사회에 나가면 무슨 일이든 잘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서울의 한 대형 광고홍보회사 K사에서 인턴 사원을 찾는다고 해서 K양을 추천했다.

서울로 K양을 떠나보내면서 “이제 너의 활약 무대는 서울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울 생활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6개월 인턴 기간 그는 열심히 했고, 그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해외 클라이언트가 많은 그 회사는 영어에 능숙한 사람을 필요로 했고, 토익점수가 모자란 K양은 인턴이 끝난 뒤 퇴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광고홍보회사 인턴 기간에 사귀었던 친구의 추천으로 여성월간지 보조기자로 취업했으나 말이 보조기자지 그에게 맡겨진 일은 허드렛일에 불과했다. 게다가 편집장의 인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여성지 특유의 조직 문화 속에서 지방 사립대학 출신의 보조기자는 언제나 찬밥 신세였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잡지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군소 홍보회사 몇 군데를 전전했다.

군소 홍보회사는 대형 홍보회사에 비해 대우가 열악하다. 사원들은 겨우 생활이 가능할 정도다. 각박한 서울 생활에 지친 K양은 고향으로 내려갈까 생각을 여러 번 했으나 “무조건 서울에서 버텨야 한다”는 나의 당부에 주박이 걸려 힘든 생활을 견뎌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K양은 영어공부 등 자신의 소양을 확장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덕분인가. 얼마전 K양으로부터 카톡 문자가 왔다. 다시 K사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했다는 소식이었다. 함께 입사한 동료들 사진과 함께였는데, K양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서울의 명문대 출신, 혹은 미국 유수의 대학 졸업자였다. “그래, 장하다. 너의 인간승리다. 이제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홍보맨이 되기를 바란다”고 답신을 해줬다.

#요즘 번역서 한권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구리하라 야스시(栗原康)이라는 일본 대학 시간강사가 쓴 <학생에게 임금을>이란 책이다. 그의 주장은 당돌하다.

“학생도, 실업자도, 주부도 모두 사회적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모두 묵묵히 공짜 노동을 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착취다. 어째서 여성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는데 돈을 받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학생은 나중에 공장을 돌리기 위해 재미없는 공부를 하는데 돈을 받지 못하는 걸까. 어째서 실업자는 당연히 일하러 가야한다는 괴로움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돈을 받지 못하는 걸까.”

“대학은 불온한 곳이다.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악의가 대학을 탄생시키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대학이 무상화되어 이러한 학생들의 잠재적 힘을 개화시키고 힘껏 표현하게 해야한다. 그런데 지금의 대학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학생의 자치공간을 없애버리고 수업은 직업설계로 넘쳐나고 있으며 학생은 입학하자마자 바로 취직활동에 돌입한다. 학점에 전전긍긍하고 자격증 취득에 힘쓰며 공무원 시험준비를 위해 도서관으로 파고 든다. 형편이 열악한 학생들은 학비와 용돈과 방값을 해결하기 위해 알바전선에 뛰어든다.”

“대학은 취직을 하고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라고 부추긴다. 대학 수업료는 자기계발로 끌어들이는 실마리가 된다. 수업료를 올리고 그만큼 학생에게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빌려주면서 자기계발의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진다. 하지만 한 번 돈을 빌린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관리당하고 만다. 이 과정의 파렴치한 공범은 무능력하게 손을 놓고 있는 정부와 비싼 수업료를 거둬들이는 대학과 이자놀이의 탐욕에 빠진 금융권이다.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빚을 갚기 위한 지옥의 노동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고도의 선진기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생활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대학생은 미래의 노동력이 된다.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해 대학에서 선진기술을 학습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하고 있는 셈인데, 공짜 노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싼 등록금으로 완전히 착취당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들에게 임금을 달라’고.”

물론 이 책은 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막중한 채무의 압박감 속에서 시간강사로 근근히 생활하는 35세 일본인의 격정토로다. 하지만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대학진학율은 68%다. 고교졸업자 10명중 7명이 대학에 간다는 얘기다. OECD 국가중 1위다. 한국의 4년제 사립대학생은 연평균 734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 입학금, 주거비, 교통비 등을 포함하면 입학에서 졸업까지 8,510만원(<대학생 삶의 비용에 관한 리포트>/더민주 유기홍의원 2015년 조사발표)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6,03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5년간 매일 8시간씩 해야 자신의 힘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자제가 아니라면 20대 초반 대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L군처럼 대학생활 모두를 알바에 바치거나 장학재단과 금융권 대출의 문을 노크하는 길 뿐이다.

대학생의 생활지수를 나타내는 ULI(University Student Living Index)지수라는 게 있다. 일종의 대학생 빈곤지수다. 이 지수가 1.0이면 대학생 스스로 모두 생활을 해결할 수 있고 0.0이면 전혀 해결할 수 없음을 뜻한다. 지난해 숙명여대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대학생의 ULI지수는 0.21로 나타났다. 1985년엔 0.72였는데 점차 악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또 한국 장학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학자금 대출잔액은 12조 3,149억원이며 대출 이용자는 182만명이다. 이중 1만1,200명은 대출을 제대로 갚지 못해 장학재단으로부터 피소당했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미래의 동량을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학생에게 임금을>으로 돌아와 보자. 저자는 1968년 유럽을 휩쓸었던 ’68 저항운동’이후 웬만한 유럽의 국가에서는 대학교육이 무상화됐다고 밝히고 “그런데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이어받고 있는 일본(한국도 마찬가지)에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대학교육이 온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대학이 공짜여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학생은 돈을 받아야하는 노동자다. 학생은 지식 생산의 분명한 주체다. 지식생산 노동에 따르는 임금지불은 당연하다.” 그는 또 한걸음 나아가 “대학은 예비 노동자를 기르는 곳이다. 대기업이 수확할 열매가 자라는 과수원이다. 그 과수원에 비료를 제공하는 것은 대기업의 당연한 의무다”라고 주장했다.

요즘 신문 지면을 도배질하고 있는 부실 조선업체 구제금융 소식을 접하고 오늘도 힘겹게 살고 있는 학생들의 눈망울을 떠올려본다. “저들에게 쏟아부을 혈세 수십조 원이면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편안하게 학창생활을 즐기게 할 수 있을 텐데, 최소한 반값 등록금이라도 실현시킬수 있었을텐데”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부모를 잘못만나 흙수저를 물고 나온 지금의 대학생들은 고단하다. 대부분 기본급 이하의 알바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누군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했던가. 하지만 실제 젊은이들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전혀 모르고 하는 헛소리다. “개뿔, 우리 흙수저들의 통증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겪어봤어?”하는 비아냥이 점점 볼륨을 높이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논설주간 강성보 reporter1@civicnews.com

<저작권자 © CIVICnews / 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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