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가져보는 이기적인 단상
상태바
스승의 날에 가져보는 이기적인 단상
  • 편집위원 양혜승
  • 승인 2016.05.16 1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집위원 양혜승

올해도 어김없이 몹시 어색하고 불편한 그날이 지나갔다. 스승의 날이다. 올해는 다행히 5월 15일이 일요일이었던 까닭에 다른 해보다 조금은 덜 어색하고 덜 불편하게 지나갔다. 학생들로부터 카네이션이나 선물을 받는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교육자라면 대부분이 스승의 날이 주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공감할 듯하다. 어쩌면 그 이유는 ‘스승’이라는 단어에 있다. 사전적 의미로 선생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스승은 ‘제자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면 선생과 스승의 차이는 두 가지다. 첫째, 스승은 단순히 가르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이다. 둘째, 선생이란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지만, 스승이란 가르침을 받는 피교육자가 판단하는 주관적인 개념이다. 모든 선생이 스승일 수는 없음이 명확해진다.

언제부턴가 ‘멘토(mentor)’라는 단어도 흔하게 사용된다. ‘인생길잡이’라는 우리말로 순화시켜서 쓰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왠지 표현이 부자연스럽다. 멘토는 ‘새로운 인생 설계를 위해 도움을 주는 조언자 또는 후견인’이다. 의미적으로는 스승과 유사하지만 스승이라는 개념이 가진 심오함을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함께 근무하는 외국인 교수에게 스승의 날을 설명해주려니 ‘Teacher’s Day’라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스승이라는 개념이 담고 있는 무게감을 충분히 설명해주기란 역부족이었다.

어쨌거나 교직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스승이라는 개념이 주는 심오함과 무게감은 부담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스승의 날은 선생으로 하여금 자신이 학생들에게 스승일 수 있는지 학생들의 입장에서 돌아보게 만드는 날이다. 그래서 반성의 날이자 고통의 날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대학 강단에 있는 교수들은 선생, 스승, 교수라는 다양한 이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마저 갖게 된다. 스승의 날이 주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초중고 선생님들보다 더한 것이 사실이다.

스승의 날은 있으되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은 어디 갔는지도 동시에 물어야 마땅하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초중고에서의 교권침해가 1만 3,000건이라고 한다. 교사에 대한 폭언과 욕설, 수업진행 방해 등이 주를 이룬다. 교육자에게 스승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과 더불어 교육자에 대한 존중도 절실하다. 이처럼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변하면 언어도, 그리고 그 언어와 관련된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규정한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삶을 규정한다. 스승의 날이라는 이름은 이제 없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갖는 이기적 바람이다. 그게 안 된다면 스승의 날을 선생님의 날이나 교육자의 날쯤으로 격하(?)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예 교사의 날이라고 이름 짓는다면 필자와 같은 대학 교수들의 ‘고통’이 해소될 수도 있겠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깊어지는 생각이 있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되는 일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인생을 인도하는 스승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솔직히 없다. 그 노력을 놓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매년 5월의 한복판에서 만나게 되는 스승의 날은 ‘고통’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