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은 우리에게 맡기세요," 이주민 여성들 사회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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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은 우리에게 맡기세요," 이주민 여성들 사회 봉사
  • 취재기자 이하림
  • 승인 2016.05.04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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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이주민 통·번역조합 '링크,' 중국·필리핀·베트남·네팔어 등 10개 언어 서비스
▲ 이주민 통번역 협동조합 '링크' 조합원들 (왼쪽부터)테스 마낭안, 남인선, 이수연, 이하연, 한아름 씨(사진: 취재기자 이하림).

그동안 정부나 사회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아오던 이주민 여성들이 이번에는 지역에 봉사를 돌려주기 위해 통·번역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탄생한 ‘링크 이주민통번역협동조합’이 바로 그것. 최근 출범한 이 조합은 필리핀, 베트남, 네팔, 중국 출신의 이주여성 4명과 한국인 1명으로 조합원이 구성돼 있다.

조합원들은 한국으로 이주한 이후 여러 해 동안 통·번역 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각자의 언어 통번역 분야에서 전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조합 이사장 테스 마낭안(46) 씨는 필리핀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학생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1993년 한국으로 왔다. 당시에는 이주민 자체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이주민을 위한 시설도 없었다. 기본적인 한국말도 잘 못해 시어머니와 소통이 가장 어려웠다. 그래도 한국생활을 계속하며 자신이 하던 영어강사 일과 지금의 통·번역 일을 이어왔고 현재 조합 이사장까지 맡게 됐다.

2006년 중국에서 온 남인선(39) 씨는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경주 본사에 통역사로 파견을 오게 됐다. 파견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의 환경도 그녀를 이곳에 남게 한 이유였다. 그는 “내가 살던 중국 삼향은 공업도시라서 공기가 너무 탁하고 안 좋은데, 한국 땅을 밟는 순간,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억양이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던 그녀는 남편에게 경상도 사투리 특별과외를 받아가며 한국어를 익혔다. 그 덕에 지금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부산 사람이 다 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시간에 여유가 생겨 사회에 한 단계 더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지금의 통·번역 일을 시작하게 됐다.

네팔인 이수연(40) 씨는 네팔의 초등학교에서 일하면서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사촌오빠가 지금의 한국 남편을 소개해 줬는데 가족들의 반대를 걱정해 일자리를 찾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2005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언어는 가서 차차 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왔지만 막상 말이 안 통해 답답했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2년간 공부에 집중했고,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하며 지내왔다. 종교가 힌두교였던 탓에 처음에는 소고기도 멀리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진짜 한국인이 됐다.

베트남인 이하연(29) 씨는 베트남에서 친오빠가 소개해 준 한국 남편을 만나러 한국에 왔다. 결혼중개소가 아닌 친오빠의 소개였기에 믿고 왔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한국생활 적응이 더 힘들었다고. 중개소를 통해 올 경우, 사전에 교육도 받고 중개소가 도움을 주지만, 하연 씨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서 알아보고 부산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지금은 통·번역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조합의 전무이사 한아름(35) 씨는 사단법인 ‘이주민과 함께’에서 활동하다 지난 2010년 이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통·번역 활동에 나섰다. 이후 2013년 본격적으로 ‘링크’라는 이주민 통·번역센터를 만들어 지금의 조합원들과 함께 일했다. 당시 비영리단체였던 링크는 기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했던 터라 기금을 다 쓰면 사업을 할 수가 없는 불안전한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공익활동을 이어가자는 생각으로 링크 이주민협동조합을 설립한 것이다.

조합에는 이들 조합원 외에도 50여 명의 통·번역사가 연계돼 활동하고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필리핀어, 네팔어, 캄보디아어, 미얀마어, 몽골어, 우즈베크어 등 10여 개 언어의 통·번역이 링크를 통하면 가능하다. 통·번역은 이주민들이 한국생활에서 의사소통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으면 무료로 진행된다. 이주민들이 출입국, 노동청 등에 갈 일이 있을 때 통역을 해 주거나, 산재를 당했을 때 진술서 작성, 병원 진단서를 번역해 주기도 한다. 이와 함께 기업이나 기관에서 비즈니스 통·번역을 유료로 주문받아 처리해 준다. 수익 일부는 다시 이주민 지원에 쓰일 예정이다. 수익 외에 후원을 받기도 한다.

통·번역 일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준 일도 많다. 지난해 미나리 농장에서 일하고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한 중국인 노동자들을 도와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나리 농장 사업주가 미등록 이주민이었던 노동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임금을 주지 않은 것. 이를 노동청에 신고하자, 사업주가 되레 이들이 불법 체류자라며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했다.

곤란한 상황에 있던 노동자들이 지인을 통해 링크를 알게 됐고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함께 6개월여 동안 시위현장을 다니고 도운 결과,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의 일부를 돌려받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에 도움을 받았던 중국인들이 링크에 감사의 선물을 보내왔다. 남인선 씨는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얼마나 곤란하고 도움이 간절했겠어요.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또 그렇게 소포까지 보내줘서 정말 보람이 컸다”고 전했다.

이들은 앞으로 링크를 통해 전국에 사는 모든 이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또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 한아름 씨는 “우리가 조합 활동을 열심히 해서 이주민들도 전문가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이 됐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로는 이 분들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이주민의 대표로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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