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 살리는 도서정가제? "NO, 죽이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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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 살리는 도서정가제? "NO, 죽이고 있는 중"
  • 취재기자 김주영
  • 승인 2016.04.1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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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들 편법 할인 공세에 단골 소비자마저 뺏겨..."이런 불황 처음"

동네 서점들의 경영을 안정시키고 소형 출판사 매출 증가를 돕기 위해 도입된 도서정가제가 되레 이들 영세 업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 영세 서점들은 도서정가제에 따라 책을 정가대로 판매하고 있는 반면, 온라인 서점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많게는 40%까지 할인공세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마다 천차만별이던 도서 판매가격의 할인율을 제한, 모든 도서의 판매가격을 최대 10% 할인, 5% 적립만 가능하도록 규정한 제도다. 2013년 2월에 제정된 법률에 따라 2014년 11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된 뒤에도 온라인 서점들은 카드회사와의 연계하는 수법 등으로 책에 명시된 가격보다 수십%씩 싸게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오프라인 소형 서점들은 이 도서정가제에 묶여 곧이 곧대로 책을 정가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책을 사기 위해 어떤 서점을 선호하게 되는가는 물어보나마나다. 즉, 동네 영세 서점을 보호하기 위해 시행된 도서정가제가 기대했던 효과는커녕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부산 진구 당감동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이모(55) 씨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매출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단골들이 와서 이따금 책을 사갈 뿐 대부분 사람들은 여전히 온라인 서점을 이용한다"며 “25년 째 책장사를 하고 있지만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도서정가제 실시 이전이나 이후에도 책값의 변화가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 온라인 서점들은 할인율이 제한된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에도 제휴카드, 경품 증정 등을 이용해 실제적으로는 일반서점보다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여 싸게 책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온라인 서점 'yes24'는 도서정가제 규제에 걸리지 않는 할인 방법인 카드사와의 제휴를 통해 도서 판매가격의 최대 40%까지 추가 할인해주고 있다. yes24의 관계자는 제휴카드 할인은 카드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이므로 도서정가제의 할인율 제한과는 별개라고 했다.

▲ 온라인 서점 에서 도서정가제에 따라서 10% 가격 할인과 5% 적립이란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지만, 제휴카드 40% 추가할인을 해준다는 사실이 바로 아래에 제시되고 있다(사진: yes24 홈페이지 캡처).

도서정가제 위반에 대한 신고는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에 접수하면 된다. 그러면 유통신고센터는 사실 조사에 착수해 도서정가제 위반에 해당하면 지자체에 신고하고, 그후 지자체가 처벌 수위를 결정한다. 도서정가제 위반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에 따르면, 'yes 24' 제휴카드의 경우 정가제 위반사항으로 신고 접수돼 조사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유통신고센터 관계자는 제3자가 비용을 100% 부담하는 경우 제3자 할인이므로 도서정가제 위반 사항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yes 24의 제휴카드를 이용한 추가 할인은 사실상 편법 할인인데도 도서정가제 위반이 아닌 것으로 최종 판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성미시 실장은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들이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이윤을 낼 수 없는 중소서점은 남는 게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책값의 거품을 뺀 완전 도서정가제를 시행해 착한 가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의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다. 도서정가제가 서점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 신문에 따르면, 한국출판인회의 114개 출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조사 대상 출판사의 71.1%인 81개사가 도서정가제 이후 매출액이 하락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 중 78.6%는 매출이 하락한 이유로 도서정가제를 꼽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할인율이 높지 않은 오프라인 서점대신 할인율이 높은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던 소비자들은 할인율이 제한되자 책값이 비싸졌다고 느끼고 있다. 평소 책 구매를 자주 하는 주부 황경아(56,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 씨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후 책을 잘 사지 않는다. 황 씨는 "옛날 책 같은 경우에는 50%까지 할인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전에는 한 달에 새 책 3권은 구입했지만 요즘에는 1권 정도밖에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 출판산업 동향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의 도서구입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15년 구매 비용은 1만 6,623원으로 2014년 1만 8,154원보다 8.4% p 줄어들었다(출처: KPIPA 출판산업 동향).

지난 2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4분기 및 연간 가계 동향’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가구당 월 도서구입비는 1만 6,623원으로 5년 연속 감소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책 소비는 2010년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지만, 2014년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한 후 도서구입비가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원 안모(46, 충남 서산시 예천동) 씨는 “도서정가제는 제 값 주고 책을 사서 책 시장을 살리자는 의미로 시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시행 이후 책값이 비싸져 책을 사기보다는 빌려 읽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소현(20, 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도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에 비싼 가격으로 책을 판매하는 것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 네티즌들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사진: 네이버 캡처).

한국경제원 정회상 박사는 2월 15일 자 <빅이슈> 기사에서 전에는 책을 출간한 지 18개월이 넘으면 출판사나 유통사 측에서 할인율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 50% 이상으로 할인 판매하는 책도 있었으나, 지금은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크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소비자가 누려야 할 가장 큰 서비스는 가격이다. 영세 서점과 출판사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소비자 입장에선 실질적으로 책값 인상으로 연결되는 현행 도서정가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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