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게임 세계에선 초등학생도 성인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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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게임 세계에선 초등학생도 성인 대접?
  • 취재기자 최영민
  • 승인 2016.02.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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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행위 게임에 '12세 이용가능' 마크 버젓이...구멍 뚫린 ‘자율심의제도’

주부 백모(35) 씨는 자신의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아들 김모(7) 군을 무심코 지켜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 군이 하고 있던 게임은 ‘성형수술 시뮬레이션’으로 의사가 되어 환자에게 성형수술을 해주는 게임이었다. 백 씨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메스를 이용해 환자의 살을 가르고 뼈까지 조정하고 있는 아들을 보고 기겁을 하며 스마트 폰을 뺐었다. 백 씨는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 폰 게임을 하게 놔뒀는데 이젠 유심히 살펴야겠다”며 “아이들이 하기엔 이 게임은 너무 자극적이고 잔인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군이 이용한 게임의 이용 등급은 ‘만 3세’였다.

스마트 폰 게임은 접근하기도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청소년과 영유아 층도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선정성과 폭력성에 비해 낮은 이용등급을 가진 게임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 만 3세 이상의 이용등급이 지정돼있는 성형수술 시뮬레이션 게임(사진: 구글 앱스토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한·중·일 동남아 모바일게임 이용자 조사보고서’에서는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10대 중 89.2%가 스마트 폰 게임을 이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현재 스마트 폰 게임은 모든 연령층이 즐기는 콘텐츠가 됐지만 한창 게임을 좋아할 나이이기도 하고 PC게임과 달리 손쉽게 다운 받고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특히 ‘취향 저격’인 셈이다. 스마트 폰 게임을 자주 즐긴다는 권형준(10, 부산시 남구 대연동) 군은 “스마트 폰 게임은 학교에서도 즐길 수 있어 좋다”며 “집에서 형이 컴퓨터로 하는 게임은 너무 어려워서 하기 싫다”고 말했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김수현(14, 부산시 남구 용호동) 군도 “스마트 폰 게임은 온종일 해도 지겹지가 않다”며 “무엇보다 다양한 종류의 게임들이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도 스마트 폰 게임을 즐기기는 마찬가지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3~9세 유아동의 52%가 스마트 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 있는 영유아들 반 이상이 스마트 폰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폰 사용량은 당연히 게임의 이용량과도 비례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송모(30,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씨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뛰어노는 게 많았는데 요즘은 스마트 폰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며 “부모님과 통화하는 용도도 있지만 대부분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한다”고 말했다.

스마트 폰 게임은 이처럼 어린아이와 청소년들의 일상에 녹아들어 있기에 그만큼 이용등급 선정에도 엄격한 기준과 관리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 출시되는 게임물은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검토와 분류를 실시하게 되어있다. 게임위는 게임물의 선정성, 폭력성, 범죄 및 약물, 부적절한 언어, 사행성의 5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등급분류성적을 매긴다.

▲ 게임물 등급분류 세부기준 표(자료 출처: 게임물관리위원회)

하지만 현재 앱 스토어에 업로드 돼있는 스마트 폰 게임들이 이러한 세부기준을 따라 적절하게 이용등급이 지정돼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세부수칙과 부합하지 않아 작년 게임위에 의해 적발된 게임만 해도 수천 건이 넘는데 이마저도 극히 일부만 조사한 결과에서 나온 수치다. 실제로 국내에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앱 스토어 ‘구글 플레이’만 봐도 콘텐츠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이용등급이 지정된 게임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 만 12세 이상으로 이용등급이 지정돼있는 ‘고스톱’ 게임. 이용등급 마크 옆에 ‘도박’ 게임이라 쓰여있다(사진: 구글 앱스토어).
▲ 스마트폰 게임 ‘얀데레 아가씨.’ 적나라한 노출과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12세 이용가로 등록돼있다(사진: 게임 ‘얀데레 아가씨’ 캡처).

이와 같은 부적절한 이용등급이 지정된 게임물이 만행한 이유는 2011년 이후 바뀐 제도의 영향이 크다. 원래 국내법은 대중에게 유통되는 모든 게임물은 사전 검토를 받고 출시하는 ‘사전등급제’를 유지했지만 지난 2011년 정부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활성화를 위하여 사전등급제를 ‘자율심의제’로 바꾸었다. 자율심의제는 제작자가 직접 등급을 분류하고 게임물을 먼저 출시한 후에 심사를 받는 방식이다. 자율심의제로 인해 개인 사업자와 아마추어 게임 제작자의 활동이 많아지면서 스마트 폰 게임 시장은 큰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심의 신청을 애초에 하지 않거나 지정된 등급이 마음에 안 들면 게임 이름만 바꿔서 다시 출시하는 등 자율심의제를 악용하는 사례도 그만큼 크게 늘었다. 게임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의 성장과 바뀐 제도로 인하여 하루에도 수백 건 이상의 게임이 출시되고 있다”며 “노력하고 있지만 수많은 게임들을 일일이 관리하기가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다 부적절한 등급이 지정된 게임을 적발하더라도 게임위에서 실질적인 조처를 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국내 게임법 제21조 제6항에 따르면, 게임물의 내용을 수정하여 등급분류를 새로 받아야 함에도 이를 받지 않거나, 등급분류를 받은 내용과 다르게 제공한 경우에는 게임위가 직권으로 조사하여 재분류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재분류 대상으로 지정한다해도 현재 스마트 폰 게임의 경우는 제작자가 시정 조치를 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게임 제작자의 자율적인 시정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작용이 만연한 가운데, 정부는 스마트 폰 게임에 국한돼있던 자율심의제를 PC 온라인 게임을 비롯해 스마트TV, 가상현실(VR) 등에도 적용한다는 법안을 작년 11월에 발의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K대 문화 콘텐츠 학과 김모 교수는 “게임 시장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자율심의제로 인한 폐해도 크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며 “정부는 조속히 실질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여 부적절한 콘텐츠로 인해 아동과 청소년들이 입을 피해를 미리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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