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는 청각장애인..."이 카페엔 사랑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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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는 청각장애인..."이 카페엔 사랑이 넘친다"
  • 취재기자 이도희
  • 승인 2016.01.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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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가 차린 향기로운 카페 '힐링빈즈' 이야기

부산시 기장군 교리의 시골스런 주택가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여느 카페처럼 고소한 로스팅 커피향이 카페 안을 감싸고 있다.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손님이 “order here”라고 앙증맞게 씌어 있는 주문 카운터로 접근한다. 그런데 “어서오세요”라고 반갑게 손님을 맞는 바리스타의 말소리가 조금 어눌하다. 그 대답에 손님의 눈이 약간 커지는 듯했으나, 활짝 웃는 바리스타의 얼굴에 그만 손님도 같이 따라 웃으며 커피를 주문한다. 이곳은 카페 ‘힐링빈즈‘다. 그리고 힐링빈즈의 바리스타는 청각장애인이다. 힐링빈즈는 장애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는 착하디착한 사회적 기업이다. 힐링빈즈의 대표 김정윤 씨는 사회복지사다. 이 카페는 모든 것이 따뜻하다. 특히 김정윤 대표의 온화한 미소는 힐링빈즈를 따스하게 채우고 넘치는 듯하다.

▲ 부산시 기장군에있는 카페 ‘힐링빈즈’의 모습. 카페 문밖에서도 커피향이 코를 감쌀 정도로 진한 커피를 우려내는 곳이다(사진: 힐링빈즈 페이스북).

김정윤 씨는 사회복지사로 부산시 영도구 한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다가 그곳에서 보조원으로 같이 일하던 청각 장애인 친척 동생이 바리스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고 그가 바리스타가 될 수 있을까? 정윤 씨의 가슴에는 서서히 장애인들에게 직장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즈음, 정윤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사회복지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사회복지사는 지역 주민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할 거라 생각했지만, 차차 사회복지사가 복지 행정을 다루는 공무원 내지는 샐러리맨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정윤 씨는 29세에 복지관을 퇴직하고, 2011년 늦은 여름에 사회적 기업 카페 힐링빈즈 창업 준비를 시작했으며, 2013년 10월 힐링빈즈를 오픈했다. 힐링빈즈의 출발점은 바로 사회복지사로서의 직업 소명의식이었다. 정윤 씨는 “누군가가 나에게 직업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사회복지사라고 말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을 시작한 동기도 사회복지사로서의 직업적 사명감이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윤 씨에게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됐던 복지관 보조원은 친적 동생인 강환 씨였다. 정윤 씨는 강환 씨와 함께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2급 바리스타 자격증도 같이 취득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2급 자격증만 따면 곧바로 창업하지만, 정윤 씨와 강환 씨는 3년 가까이 추가로 커피 심화 과정 교육까지 이수했다. 이왕 ‘좌판’을 벌이려면 실력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윤 씨는 “교육 받던 그 시절은 늦여름 뜨거운 공기와 버스 창가로 불어오던 짭짤한 영도 바닷바람의 조화를 느끼며 힐링빈즈의 시작을 준비하던 멋진 사연이 있는 시절이었다”고 표현했다.

▲ 사진 속 앞의 청년이 김정윤 씨이고 뒤에서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청년이 강환 씨다(사진: 김정윤 씨 제공)
▲ 카페 힐링빈즈의 로고(사진: 김정윤 씨 제공)

카페 힐링빈즈의 모토는 “느리자, 더욱 느리자”다. 김정윤 대표는 이 말 속에 일반 기업이 이윤추구라는 목표 하나만을 보고 달려가는 것과는 달리, 힐링빈즈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기업이 내딛는 발자국 하나하나가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예를 들어, 경기가 어려워 질 때 일반 기업은 인건비를 줄이겠지만,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인 힐링빈즈는 직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에 적자가 나더라도 직원을 함께 보듬고 가야한다. 김 대표는 “사회적 기업들은 사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일반 기업들처럼 돈을 번다는 목표 하나만을 위한 빠른 선택을 해나갈 수 없다”고 느림을 강조한 힐링빈즈의 모토 의미를 설명했다.

카페 힐링빈즈에는 강환 씨를 비롯한 청각장애인 직원이 두 명 있다. 청각장애인과 함께 하자는 처음의 취지대로 힐링빈즈의 바리스타는 청각장애인이다. 힐링빈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대우 받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하고 같이 협력하는 근무 시스템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김정윤 대표는 주변에서 장애인들이 홀로 서기, 다시 말해 비장애인들과 공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는 “장애인들보다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나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 씨는 사회복지사로서 독특한 특기이자 취미가 있다. 바로 영상 제작이 그것이다. 그는 힐링빈즈를 열기 훨씬 전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을 주제로 한 영상을 만들어 왔다. 정윤 씨의 영상 제작 실력은 KBS의 <열린채널>에 그의 작품이 채택되어 방영된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당시 작품 제목은 지적 장애인을 다룬 영화 <아이 엠 샘>에서 따온 <아이 엠 바리스타>였다. 이 영상은 현재 힐링빈즈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강환 씨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상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 때문이었다. 정윤 씨는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로 전달하면 그 한 사람에게만 내 생각을 전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을 미디어로 전하면 그 영향력은 꾸준하기 때문에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윤 씨는 장애인들의 권리 옹호와 장애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만들었다. <아이 엠 바리스타> 전에 그가 만들었던 영상 습작들도 굉장히 많다. 그 중 그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휠체어의 배터리가 꺼져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을 보고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반응할까를 촬영한 것이다. 그 영상을 찍던 중, 어떤 행인은 길 위에서 꼼짝 못하는 장애인에게 동정심으로 돈을 주고 가기도 했다. 그는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필요한 것들을 장애인 입장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 먼저 규정해버리거나 동정부터 하는 행동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윤 씨의 궁극적인 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자연스런 공존이다. 그는 “카페 힐링빈즈를 준비하던 시간들도 그 공존을 위한 것이었고, 지금 환이랑 함께 일하면서 손님들을 만나는 것도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정윤 씨는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부산 기장군에서 이런 말이 들려오길 바라고 있다. “우리 마을에 힐링빈즈라는 카페가 있어. 그 곳에서는 청각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해. 그런데 커피도 맛있고, 분위기도 따뜻하고, 엄청 좋아. 앞으로 커피는 거기에서 마시면 돼.” 만약 동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게 바로 힐링빈즈의 미션이 실현되는 순간이며, 사회복지사 김정윤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왜? 그 순간이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가 됐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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