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먹고 힘내요"... '달콤창고' 향기, 전국에 '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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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렛 먹고 힘내요"... '달콤창고' 향기, 전국에 '그득'
  • 취재기자 김지원
  • 승인 2016.01.22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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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보관함에 사탕과 응원 쪽지...SNS '어라운드' 사용자들이 청춘들 격려차 시작

한 여성이 지하철역의 보관함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며 휴대폰을 손에 든다. 그 여성은 휴대폰에서 앱을 열고 그 앱에 나와 있는 보관함 비밀번호를 확인하고는 보관함을 연다. 보관함 안에 밀수품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다. 그 안에는 온갖 초콜렛과 사탕, 음료수 등으로 가득 차 있고, “맛있게 드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등과 같은 익명의 쪽지가 붙어 있다. 여성은 천천히 글들을 읽고는 그 안에 들어 있던 캔 음료수를 하나 꺼내 나중에 마시려는 듯 가방에 넣고, 그 빈자리를 자신이 들고 온 초콜렛으로 채워 넣은 뒤, 홀연히 길을 떠난다.

일반인들에게 조금 생소할 수 있는 이 보관함의 이름은 ‘달콤창고’다. 달콤창고는 한 개인이 지하철역이나 대학교 사물함 등을 대여해, 심신이 지친 누군가에게 응원의 쪽지와 함께 달콤한 간식, 책, 의약품, 음료수 등을 넣어둔다. 그러면, 누군가의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그 달콤창고를 찾아와서 그 안의 음식도 먹고 그 안의 쪽지 글도 읽어 용기를 얻는다. 도대체 사람들은 달콤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그 달콤창고 사물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가서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고 열까?

▲ 왼쪽 사진은 SNS ‘어라운드’ 앱 첫 화면이고, 오른쪽 사진은 어라운드 게시물인데 여기에 사진처럼 사물함의 장소와 비밀번호가 적혀있어 사람들이 달콤상자로 갈 수 있게 안내한다(사진: 스마트폰 앱 ‘어라운드’ 캡쳐).

달콤상자라는 보관함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물론, 그 위치나 비밀번호를 알려면, 우선 익명으로 게시물을 올리고 익명으로 댓글을 다는, 이른바 익명 SNS 앱 ‘어라운드’ 사용자여야 한다. 실명으로 글을 쓰고 서로 소통하는 페이스북과는 달리, SNS 어라운드는 익명으로 참여해서 좀더 솔직한 얘기가 오간다는 게 특징이다. 어쩌면 페이스북의 실명에 싫증이 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안 SNS로 개발된 것이 어라운드다(<시빅뉴스>2015년 9월 28일자 뉴스, “페이스북이 부담스럽다”). 결국, 어라운드 사용자들만이 달콤창고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알 수 있다. 어라운드 사용자 중에 누군가가 특정 지역의 달콤창고 정보를 페이스북에 올린다면 물론 페이스북에서 그 정보를 본 사람들도 달콤창고를 이용할 수 있다.

달콤창고는 서울 강남역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소셜미디어는 페이스북 사용자가 대세인데, 한 어라운드 사용자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어라운드를 사용하는 다른 어라운드 사용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마침 주머니에 들은 초콜렛을 꺼내 건네줬다고 한다. 이른바 같은 SNS를 사용한다는 동질감과 반가움이 달콤한 초콜렛을 건네는 행동으로 나타났고, 이 소식을 어라운드에서 접한 다른 어라운드 이용자들이 주머니에 초콜렛을 하나씩 넣어다니다가 다른 어라운드 앱 사용자를 만나면 초콜렛을 주고 힘든 세상에 서로 힘내자는 말을 주도받는 일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어라운드 사용자들끼리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던 가운데, 어느 한 어라운드 사용자가 어라운드 앱 이용자라면 누구나 초콜렛 등 달콤한 사탕이나 음료수를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서울 강남역 보관함에 이들을 작은 쪽지와 함께 넣어두고 보관함 비밀번호를 어라운드에 공개했다. 이후 달콤한 사탕 보관함은 여러 사람에 의해 개설됐고, 지금은 전국의 지하철과 대학 캠퍼스에도 누군가가 개설한 달콤창고가 번지게 됐다. 부산에는 동아대 승학캠퍼스, 부산대 중앙도서관, 부산대 맘스터치 2호점에 있으며, 각 지역의 달콤창고는 어라운드에 있는 달콤지도(bit.do/dalcom)를 통해 위치 확인이 가능하다.

달콤창고를 방문한 사람에게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자신이 그 안의 음식을 먹은 만큼 자신도 무엇이든 성의껏 음식물을 보충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응원의 쪽지를 적어 놓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어라운드 앱 이용자가 만든 달콤지도에 전국 달콤창고의 위치가 공개돼 있다(사진: bit.do/dalcom 캡쳐).

부산대 맘스터치 2호점 가게 문 앞에 위치한 달콤창고를 방문한 중학생 이서윤(16, 부산 금정구 장전동) 양은 학업에 지쳐 있는 와중에 어라운드에서 부산에 있는 달콤창고를 찾았고, 그 속 응원 메시지를 보고 훈훈한 정을 느꼈다.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친구끼리 드시면 더 힘납니다,” “취준님 여러분 힘내세요”와 같은 메시지는 절로 이 양의 힘을 솟게 했다. 들어 있는 음식들도 다양했다. 초콜렛은 기본이고, 음료수, 비스켓, 소시지, 스낵도 들어 있었다. 이 양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들에게도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달콤창고 안에 가득 차있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 부산대 맘스터치 2호점 가게 앞의 달콤창고가 사람들의 정으로 가득 차있다(사진: 취재기자 김지원).

어라운드 앱 사용자가 달콤창고를 지인이나 인스타그램,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KBS의 인기 교양 프로그램 <명견만리>에 달콤창고가 삭막하고 살기 어려운 세상에 훈훈한 인간의 정을 나누는 매개가 되고 있다고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경남 하동군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최정욱(35) 씨도 달콤창고의 존재에 감명을 받아 가게 내부 코너에 책상을 놓고 달콤창고라는 이름표를 붙여 놓았다. 어라운드 앱을 통해서 그 위치를 알고 비밀번호로 보관함을 여는 형태는 아니지만, 최 씨는 그저 가게 한쪽을 훈훈한 인정의 공간으로 만들고 카페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작은 선물과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최 씨는 “요즘 각막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카페 주인 입장에서 손님들이 재미있어 하시는 모습, 얼굴도 모르면서 서로 음식과 쪽지로 정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너무 즐겁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 경남 하동군 카페 ‘쉼표하나’의 한 구석에 설치된 달콤창고. 이것을 본 카페 방문자들은 과자 몇 개를 먹고 쪽지를 남기기도 하고 다른 과자를 사다 보충해 놓기도 한다(사진: 카페 쉼표하나 블로그).

하지만 달콤창고가 블로그, TV, 뉴스를 통해 외부에 많이 알려지면서 일부 비양심적인 이용자들에 의해 달콤창고가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2015년 12월 보도를 통해 강남역과 잠실역 등의 달콤창고 음식들이 통째로 도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부산 지하철 서면역에 있던 달콤창고도 자물쇠를 달고 열쇠 위치를 어라운드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나, 이 달콤창고가 TV에 방송된 후 보관함 열쇠를 자꾸 가져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 후 서면역에 있던 달콤창고는 폐쇄됐다.

▲ 지금은 없어진 서면역의 달콤창고에 오정하 씨가 방문했을 때는 사진처럼 음식과 메시지가 가득한 채 잘 운영되고 있었다(사진: 오정하 씨 제공).

서면역 달콤창고가 있던 당시 방문했던 취업준비생 오정하(20,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씨는 열쇠 분실로 인한 서면역 달콤창고 폐쇄 소식을 듣고 아쉬움을 느꼈다. 오 씨는 “요즘 같이 개인주의가 판치는 시대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따뜻함을 느꼈지만,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느꼈다. 서로의 양심을 믿고 운영되는 달콤창고인 만큼 '달콤함과 함께 따스한 정을 나누자'는 본 의미가 퇴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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