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진 머리 위의 길, '가르마'는 곧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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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진 머리 위의 길, '가르마'는 곧 개성"
  • 취재기자 김민지
  • 승인 2015.12.2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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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소중한 이야기 담은 독립잡지 'GARMA' 만드는 영화학도 이야기

최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과 삶의 이야기를 담는 ‘독립잡지’ 시장이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독립잡지란 주류 잡지들의 유통망이나 광고, 판매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콘텐츠를 추구하는 소규모 출판물이다. 독립잡지는 주로 개인이 출판하기 때문에 잡지의 구성에서부터 소재 선택까지 모든 것이 자유로워 '나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혼자 ‘부산의 창작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2년 동안 자비로 독립잡지를 출간해온 대학생이 부산에 나타났다. 바로 독립잡지 <GARMA>의 편집장 신창우(24) 씨다. 

▲ 독립잡지 의 편집장 신창우 씨(사진: 신창우 씨 제공)

신 씨가 만든 잡지 <GARMA>는 부산에 있는 젊은 창작자들이나 창작물들을 소개하며,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응원하는 내용을 담은 잡지다. 그는 “<GARMA>라는 이름은 우리말로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가르마’입니다. 누구나 머릿속에 자신만의 길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에 맞게 <GARMA 1호: 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머리 위의 길 하나, 그 길 위를 거닐 수 있는 짧은 한 권의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5월에 발행됐다. 그 후로 3개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창작물을 담은 <GARMA 2호: 선>이 발행됐다. 두 권의 잡지가 발행되는데 드는 금액은 모두 신 씨의 자비로 채워졌다. 넉넉지 않은 대학생 신분으로 그가 부산의 창작자들을 위한 독립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신 씨는 2010년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영화를 전공하며 공부하던 그는 휴학 후,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서 지방대 특성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연극영화학과의 분위기가 순수 예술적인 것에서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것으로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신 씨와 학과 친구들은 고민에 빠졌다. 모두 꿈은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느꼈다. 신 씨는 “연극배우를 꿈꾸던 친구는 새벽부터 막노동을 하러 다니고, 음악을 하고 싶어 하던 친구는 세차장에서 일을 했어요. 예술을 전공할 각자 꿈을 포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다. 긴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이 바라고,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평소 글쓰기와 창작 예술에 관심이 많던 그는 다양한 창작물을 소개하고 젊은 창작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독립잡지를 발견하고 독립잡지 만들기에 뛰어들기로 작정했다. 그때가 2013년이었다.

▲ 잡지 의 편집장 신창우 씨가 글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민지).

하지만 혼자 잡지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독립잡지를 한 권 제작하고 배포하는 데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잡지 발행에 드는 비용은 모두 신 씨의 자비로 해결해야 했다. 그는 할 수 없이 오전과 오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밤과 새벽에는 아르바이트와 잡지편집 일을 병행했다. 밤낮없이 너무나 바쁘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후회는 없었다. 신 씨는 대학생 때도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방패삼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 종종 나중에 후회하곤 해요. 우리는 대학 졸업 전과 후에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잡지를 발행하기 위해 신 씨는 모든 제작비를 마련하고, 글쓰기, 디자인, 사진 등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팀원으로 모집했다. 혼자 잡지를 만들어가는 것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각 분야이 사람들과 같이 더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팀원이 생기자, 혼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수많은 회의를 거쳐야 했고 팀원 간의 다툼도 있었다. 잡지 구성에 대한 통일성과 컨셉을 정하는데도 긴 논의를 했고, 마케팅도 따로 고민해야 했다. 그는 “팀원들과 일할 때는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려 노력했어요. 편집장은 저였지만, 나의 감정과 주관적인 입장은 배제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신 씨는 편집장으로 팀원들을 이끌며, 잡지를 만들기 위해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자신만의 노하우와 작업방식을 터득했다. 그는 잡지의 호에 맞는 이름과 컨셉을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름과 콘셉트를 정하면 그에 맞는 책자의 규격과 재질도 미리 정해 견적을 설정합니다. 잡지 안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모든 콘텐츠마다 기획안을 작성하고, 끊임없이 피드백 과정을 거쳐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라고 말했다.

독립잡지의 경우, 제작비 때문에 페이지 수가 많지 않지만, 신 씨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페이지 수에 제한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싶었다. 그는 잡지 페이지 콘티를 실제 공책에 손수 수작업으로 그려 콘텐츠와 그림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잡지를 디자인했다. 잡지의 내용과 구성을 컴퓨터 작업으로 완성한 뒤에는 인쇄소를 찾아 인쇄를 맡긴다. 인쇄소마다 가격은 다르지만 보통 1,000부에서 2,000부를 기본으로 인쇄한다. 그는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잡고 페이지를 설정했습니다. 잡지의 내용이 바뀔 때는 페이지도 함께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라고 덧붙였다.

▲ 작년에 발행된 독립잡지 중 오른쪽은 1호이고, 왼쪽은 2호다(사진: 신창우 씨 제공).

인쇄물이 나오면 미리 접촉하여 정해둔 배부처에 완성된 잡지를 신 씨가 직접 배부한다. 독립출판서점에 잡지를 보내면 서점이 추구하는 성향과 맞는지를 따져보고 입점허가가 떨어진다. 이미 발행된 두 권의 <GARMA>는 서울 용산구의 ‘스토리지북앤필름,’ 대구의 ‘더 폴락(THE POLLACK),’ 부산의 ‘샵메이커즈’ 등의 독립출판서점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배부됐다. 독립잡지의 퀄리티나 컨셉이 좋으면 대체로 입점허가는 쉽게 나는 편이다. 최근에는 부산에서도 독립 책자를 만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신 씨는 “제가 시작할 때는 부산에 독립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독립잡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래서인지 직접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제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도 생겼구요. 참 기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GARMA> 1호와 2호의 주제는 각각 ‘문’과 ‘선’이었다. 1호는 편집장 겸 발행인 신 씨를 비롯하여 6명의 팀원들이 직접 에디터 겸 아티스트로 참여해 자신들의 페이지를 직접 채운 내용으로 구성됐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에 대해,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사진, 디자인, 글 등의 다양한 콘텐츠로 표현했다. 2호는 이전에 발행된 1호보다 팀원을 한 명 더 영입해 창작물들이 더 중점적으로 소개됐다.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부산의 아티스트 Hanah L 씨의 전시회인 ‘바라보다’를 소개하고 비평한 글이 있다. 2년 여의 끈질긴 노력과 많은 우여곡절 끝에 신 씨와 팀원들은 2014년 한 해 동안 두 권의 독립잡지를 발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잡지를 발행하고 신 씨가 얻은 수입은 한 푼도 없었다. <GARMA> 잡지는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되는 ‘무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든 쉽게 접해 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겠다는 신 씨의 마음이 담긴 결정이었다. 잡지를 배포하는 독립출판 서점에서도 좋은 뜻을 가진 독립 출판물들을 무료로 입점시켜 주었다. 덕분에 신 씨는 자신의 비영리라는 결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1호와 2호를 내는 데 많은 돈이 들었고 제가 얻은 금전적 이익은 하나도 없지만, 후회는 없어요. <GARMA>는 앞으로도 꾸준히 무료로 배포할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2015년이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신 씨는 혼자 <GARMA>의 다음 호 발행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3호 발행은 내년으로 넘어 갈 듯하다. 팀원 모두 대학 생활이나 취업준비를 하느라 함께 잡지를 만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 씨는 학교를 휴학하고, 더 나은 독립잡지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정보나 인터뷰, 이미지에 대한 콘텐츠를 차분히 모으고 있어요. 다른 웹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글도 쓰고 있고, 창작자 분들과 모임에 참석하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발전한 <GARMA 3호>를 만들기 위해 당분간 제 자신에게 집중하려합니다”고 말했다.

신 씨는 독립잡지를 만들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자신의 잡지를 재미있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를 꼽는다. 그는 “창작자 모임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20세 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첫 만남에서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제 잡지를 본 적 있다며 반가워하는 데, 정말 기뻤어요. 나의 노력이 인정받을 때는 항상 기쁘고 뿌듯하죠”라고 말했다. 신 씨는 서점 무료 페이퍼 코너에 자신의 잡지를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고 없을 때 혼자만의 ‘독립적’인 보람을 느낀다.

▲ 독립잡지 의 편집장 신창우 씨(사진: 신창우 씨 제공)

독립잡지 <GARMA>의 신창우 편집장이란 타이틀보다 그는 잡지 안에 있는 창작물이나 창작자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또, 독립잡지를 통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신 씨는 사람들이 독립잡지라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했다. “독립잡지의 매력은 어떤 창작물이든 제약 없이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는 신념이나 의지를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기에 과정 자체가 모두 의미 있어요. 부산에서도 더 많은 독립잡지가 나오고, 더 큰 네트워크가 형성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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