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에 첫 여성 의원 탄생..."한국에선 웬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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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첫 여성 의원 탄생..."한국에선 웬 여성혐오?"
  • 부산광역시 박신지
  • 승인 2015.12.15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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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녀 등 여성 비하 풍조 인터넷에 만연...전문가, "근본적 성인식이 문제"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운전도 못하고, 남자 친척의 동행 없이는 여자 혼자 여행도 할 수 없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여성 지방의원이 탄생했다는 보도가 14일 국내 언론 여러 곳을 장식했다. 1920년에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 보장된 이후, 참정권은커녕 전반적인 여성 인권이 제한적이었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참정권이 처음으로 보장된 선거가 실시됐고 여성이 처음으로 선출직 관직에 오른 낭보였다.

“이상한 성차별 인식을 가지고 여자 무시하는 남자를 만날 바에야 차라리 혼자 살래요.” 이 말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국내 대학생 김은지(23, 부산시 금정구) 씨는 결혼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이런 말을 하면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독신주의자를 선언했다. 그 이유는 모든 여성을 싸잡아 멸시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풍조가 대한민국에 번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4년 세계 성차별 지수에 따르면, 가장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1로 잡았을 때 0.8점이 넘는 북유럽 국가에 비해 한국은 0.64점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해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여성의 인권이 높아지고 성 차별이 없어졌다는 인식과는 달리 여성 혐오 풍조가 번지고 있다.

유교적 영향으로, 과거 우리나라엔 성 차별이 만연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는 등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도 성 차별적 요소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양성 불평등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각종 국제적 성차별 지수에서 한국이 낮은 점수를 보여주는 것처럼, 성차별, 혹은 성 불평등의 일종인 여성 혐오 생각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김여사,’ ‘된장녀,’ ‘김치녀’가 대표적인 여성 혐오를 보여주는 단어다. ‘김여사’는 운전 규칙을 어겨도 간섭할 수 없는 사장의 부인이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것에서 유래했다. 운전을 못하는 여성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말로 바뀌어 여성 운전자 전체를 비하하는 단어가 됐다. ‘된장녀’는 명품 소비를 선호하지만 정작 자신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부모나 상대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김치녀’는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에서 보수 성향 사용자들이 따로 만든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에서 나온 말이다.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스러운 여성을 의미한다.

▲ TV조선 <뉴스쇼 판>에 나온 김치녀와 스시녀의 비교. 여기서 스시녀란 일본 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대학생 이모(22, 부산시 진구) 씨는 드라마에 나온 여자 연예인의 립스틱을 사야겠다고 말하자, 남자 친구에게 김치녀라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데이트 비용도 서로 번갈아 가면서 부담하고, 내가 남친에게 사달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김치녀라는 말을 들으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김주은(21, 경남 김해시) 씨는 “요즘은 여자가 조금만 거슬려도 김치녀라고 한다. 특정 층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을 김치녀로 비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이돌 가수 블락비의 멤퍼 피오(표지훈)의 앨범인 믹스 테이프 <P.o volume.1 ; To.bitch>에는 여성을 김치녀, 된장녀로 보는 “대굴빡에 든 게 뭐니 bitch/ 성형 빨 명품 백에 심취/ 학창시절 유명한 일진/ 그래봤자 지금 클럽 가는 기집”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 곡에는 그 외에도 “술 먹고 눈뜬 곳은 모텔/ 그러타면 내일모렌 호텔/ 별명은 내가 지어줄게/ 나이 많은 명품 걸레 어때?”라는 노골적인 성적 비하 가사도 들어 있다.

얼마 전, Mnet의 래퍼 발굴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 4>에서는 서출구, 한해, 이현준, 송민호, 블랙넛 등 총 다섯 명이 가사 중 성행위를 직접 묘사하거나, 여성의 성기를 낮춰 부르는 말을 가사에 넣어 논란이 됐다. 그 중 송민호는 방송에서 자신이 인기가 많고 멋있음을 표현하면서 "MINO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를 썼고, 그 방송을 그대로 내보낸 뒤 산부인과 협회는 고소를 준비했으며, <Show Me the Money> 측은 사과문을 쓰는 일이 있었다.

▲ 논란이 된 송민호의 랩

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하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직장인 박수연(25, 부산시 사상구) 씨는 “랩 하는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인터넷만 봐도 온통 여성 혐오에 여성 비하다. 도가 지나친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이연희(22, 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는 “힙합이니 괜찮다, 랩이니 괜찮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좀 그만 했으면 한다. 저런 생각 가지고 있는 남자 만날까봐 무섭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여성 혐오는 TV를 넘어 인터넷 댓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9월 25일 경기도 광주에서 30대 남성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염산을 뿌렸던 일이 있은 후, 각 인터넷 뉴스들의 댓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성 비하, 여성 혐오 정도를 알 수 있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아래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여자를 비하하는 댓글은 도를 넘었다.

▲ 남자의 여성 염산 테러에 대한 인터넷 뉴스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

‘한국 여성 민우회’ 활동가 이소희 씨는 이러한 여성 혐오가 생겨나게 된 확실한 이유가 있거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 씨는 여성이 남성보다 뒤떨어지는 존재라는 인식은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왔으며, 최근 미디어를 통해 여성 비하 풍조가 확산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씨는 “여성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녀 위상에 대한 일상적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성차별적 표현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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