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한국 교실..."토론으로 교육의 길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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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한국 교실..."토론으로 교육의 길을 찾자"
  • 취재기자 이경찬
  • 승인 2015.12.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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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교육, 정답 찾는 수업이 질문의 싹을 꺾어...토론식 수업이 대안으로 대두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개최국인 한국 기자들에게 우선 질문권을 주었다. 하지만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국 기자들이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요청했지만, 그럼에도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 때 중국인 기자가 질문을 요청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며 한국 기자들이 질문하기를 간청(?)했지만, 한국 기자들 중 단 한 명도 질문하지 않자, 결국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한국에 와서 연설하고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하라고 했지만, 한국 기자들 중 단 한 명도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으로 캐서 무언가를 취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음날 한국 언론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히견 내용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 기사들은 도대체 누가 취재해서 얻은 기사란 말인지, 그 날은 한국 기자들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언론 국치일’이었다.

▲ 2010 G20 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자들이 아무 질문이 없어 당황한 표정의 오바마 대통령(사진: EBS 다큐프라임).

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한국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을 꺼리는 습관과 관련된 대표적인 일화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한국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강연, 연설, 수업 중에 질문하는 것을 꺼려한다. 대학생 안정호(23) 씨는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남들 앞에서 드러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 김도민(23) 씨는 “내가 질문하면 수업 흐름에 방해가 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질문을 잘 못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다니면서 사회공포증 키워

이처럼 사람들이 질문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의 질문 기피증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부산 부전동에 위치한 나눔정신건강의학과의원 권오영(52) 원장은 이런 현상을 ‘사회 공포증’ 이라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사회공포증은 자율신경 중 교감신경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이며, 발표나 면접, 토론 등 사람들이 불안한 상황에 닥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그 예로 발표자나 면접받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손이 떨리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한 번 활성화된 교감신경은 몸이 기억하여 또 다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반복적으로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해 질문하는 것을 꺼리는 사회공포증을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제 막 체계화된 교육을 받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에게는 거의 사회 공포증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궁금한 것을 끊임없이 묻고 알려고 노력한다. 부산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모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가끔 놀란다. 그 나이 대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질문이 가끔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리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2명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 이선혜(43) 씨도 “아이들은 자신이 잘 모르고 궁금한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질문한다. 순진무구한 나이라서 그런지 질문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답 찾기 교육이 호기심을 죽였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이런 상황이 급변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수업은 어려운 내용을 외우고 정답을 찾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은 질문하기보다는 정답을 찾아 성적을 올리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 여기에 점점 익숙해진 중고등학생들은 더 이상 교사에게 질문하지 않게 된다. 즉, 한국인들은 후천적으로 질문에 대한 사회공포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산 용인고등학교 2학년 박건우(18) 군은 수업시간에 질문과 답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학생과 선생이 얼마만큼 수업 중 교감하는지를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군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질문하는 행위는 이상하게도 언제부터인가 수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로 느끼게 됐다. 그는 “내가 질문을 하고 그것이 틀리면 친구들한테 부정적인 눈초리를 받곤 했고, 그 때문에 나도 언제부터인지 질문을 잘 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 김영수 씨는 시험에 맞춰 바쁘게 진도를 나가다 보니 학생들에게 질문 받는 일은 진도에 차질을 주게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학생들도 질문하기보다는 받아 적기에 바쁘다. 김 씨는 “수업 시간이 아닐 때, 따로 찾아오는 학생들도 항상 정해져 있는 한두 명 뿐”이라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발표수업에서마저도 학생들은 질문 없이 경청하기만 한다(사진: 취재기자 이경찬).

대학수업도 ‘침묵이 금’

대학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각자 배우는 분야에서 스스로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대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교수의 말을 묵묵히 경청하거나 열심히 받아 적기만 할 뿐, 강의실은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하다. 심지어 교수가 질문할 시간을 따로 주면, 학생들에게 그 순간은 오히려 더 어색하고 불편하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강의 직후 질문시간을 따로 주어도 딱히 질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학생 이찬영(23) 씨는 “교수들이 질문하라고 하면, 빨리 강의실 밖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며 “질문하면 수업 마칠 시간만 늦어지고, 질문해봤자 남 눈치만 보이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대학생 신창규(23) 씨도 “질문 시간 때 질문하면 괜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나 때문에 수업이 늦게 끝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대학에서 질문하지 않는 현상이 만연한 원인으로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김재기(56) 교수는 기존에 받아온 교육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초중고 12년 동안 정답을 외워 시험 치는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한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펼치는 것에 서툴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질문이란 생각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펼치고 논의하는 과정이므로, 이런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현상을 나름대로 극복해보기 위해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질문권을 많이 주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 교수는 “대체로 거의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다음 시간까지 질문을 준비해 오라는 과제를 줘도, 다음 시간에 그걸 숙제로 알고 질문을 만들어오기는커녕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관심 자체를 보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외국인 유학생 눈에 이상하기 만한 한국 교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한국 대학의 이런 수업 분위기는 이상하기만 하다. 인도네시아 출신 한국 유학생 크리스티안 리네로(24) 씨는 한국에 오기 전 인도네시아 학교에 다닐 때는 항상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질문들이 쏟아졌었다고 말한다. 리네로 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질문 없는 한국 대학 수업은 매우 독특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은 한국 학생들은 수업 중 질문한 사람을 특이하고 독특한 사람이라 여기면서 뒤에서 수군거린다. 그런 분위기가 두렵고 적응이 되지 않아서 수업 후 따로 교수님을 찾아가 질문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유키 쿠니사와(24) 씨는 현재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이다. 유키 씨는 일본 사람들은 청중 앞에 나서서 발표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문화 성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성향과 대조되게 대학 수업 시간에서 만큼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 공세를 펼친다고 한다. 그녀는 “학생 신분일 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질문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유학생들에 따르면, 베트남에서는 대학 수업에 발표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이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베트남 대학생들은 발표 방식의 수업을 통해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떨쳐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수업은 강의와 질문 두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베트남 유학생 지우(21) 씨는 “베트남에서는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예의가 없다고 인식한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질문시간을 따로 가지는데, 그 시간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한다”고 말했다.

남의 의견을 공격하는 악플 문화도 문제

이처럼 외국에서는 질문하는데 남의 눈치를 크게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레 질문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는 점이 한국 학생들과 외국 학생들과의 차이다. 인문학/철학 강연, 사진전 등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이젠컬쳐 대표 신춘옥(50) 씨는 질문할 때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현상이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한 한국의 분위기 때문이라 했다. 그녀는 온라인상의 악플 문화도 남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는 한국 문화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리게 되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어렵고, 남들로부터 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고 신 씨는 말했다. 신 씨는 학생들의 흥미와, 능력, 이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억과 암기를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이 토론과 질문이 없는 한국의 수업 문화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신 씨는 “교육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질문하는 것이 기본인데, 한국 교육은 맞다, 틀리다만 요구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지식 습득에서 수동적인 성향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틀리다’고 보는 것보다는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서점의 신선한 토론수업 실험

주입식 교육을 하는 학교에 반해,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서 토론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수업방식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학생들의 질문이 빗발친다. 이는 부산에서 청소년과 함께 독서 토론을 벌이는 서점인 ‘인디고 서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곳에서는 청소년들을 상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책을 읽게 하고 주말마다 모여서 그 책에 관한 토론을 펼친다.

인디고 서원에서 토론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의견을 잘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참여 학생들은 시간이 갈수록 의견을 한 두 번 씩 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에 익숙해진다. 고등학생 이창희(18) 군은 다른 한국 청소년처럼 예전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의견 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인디고 서원의 토론 수업을 받으면서 질문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이제는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손을 들어 질문하는 학생이 됐다. 그는 “인디고 서원 토론수업을 통해 질문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상대방이 의견을 낼 때,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묵살하기보다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인디고 수업은 학교수업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 인디고 서원은 차여 학생들에게 주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내고 토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학생들은 점차 토론에 익숙해지면서 질문쟁이’들이 되어 간다(사진: 이창희 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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