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않은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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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손님'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5.11.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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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2009년보다 훨씬 전에, 미국에서는 공개적으로 말하기에는 부적절한 조크가 하나 있었다. 그 조크는 이랬다.

미국의 한 백인 기독교 신자가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하느님,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러자, 하느님은 “아마도 네 생애 동안은 불가능할 거야”라고 답했다. 그 다음, 그 신자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하느님, 그럼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그러자, 하느님은 “그건 내 생애 동안은 안 될걸?”이라고 대답했다.

이 조크는 미국의 여성 대통령은 오래 걸리기는 해도 언젠가는 탄생하겠지만 흑인 대통령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조크는 대단히 성차별적이며 인종차별적이다. 그러나 미국 백인들은 백인들만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은 도도하게도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보다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을 먼저 탄생시키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리고 인도의 인디라 간디, 영국의 대처, 독일의 메르켈 등 정치 대국들이 배출한 걸출한 여성 지도자를 미국이 이번에는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역사적 숙제에 대해, 미국인들은 현재 고민 중이다.

그런데 돌연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강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 힐러리를 위협하는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나타났다. 그는 한국이 미국 덕에 헐값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거나, 멕시코 이민자들은 범죄 집단이라는 등 인종차별적인 혐오 막말을 해댔으나, 오히려 그의 인기는 올라갔다. 지금은 트럼프 인기가 주춤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높은 지지도는 그의 엽기적 발언이 주류 백인 미국인들의 속내를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언론이 많다. 이는 미국 백인들이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막말 도발로부터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정말로, 미국의 주류인 와스프(WASP), 즉 백인(white), 앵글로 색슨(Anglo Saxon: 영국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 신자)가 수준 높은 은유적 말의 성찬을 즐기는 미국 정치계 전통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언행을 일삼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가 그들 와스프의 인종차별적 사고 때문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부인하기도 쉽지 않다. 그 이유는 2014년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들이 비무장 흑인 청년을 총으로 사살하면서 발생한 흑백갈등이 아직도 미국에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주인 11월 10일, 미국의 톱뉴스는 미주리 주립대학 총장의 사임 소식이었다. 국내 TV나 메인 언론들은 이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나와 미주리 대학 동문으로 미국에서 교수하는 후배가 미주리 대학 사건을 이메일로 알려줘서 비로소 나도 이 소식을 접했다.

이 뉴스가 퍼거슨 시가 속한 미주리 주의 주립대학 총장이 학내 흑백갈등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사건이어서 미국 내에서 더 부각된 면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태의 발단은 대학 조교의 의료보험 지원을 줄이려는 미주리 대학 총장에게 학생들이 학생회 도움을 받아 항의하는 과정에서, 흑인인 이 대학 학생회장이 인종차별적인 수모를 받게 되면서, 미주리 대학 내 흑백갈등으로 비화됐다고 한다. 급기야는 흑인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연일 계속됐고, 단식하는 학생들도 생기자, 미국 대학 재정수입에 큰 몫을 담당하는 풋볼 팀 흑인 선수들이 총장 사임을 요구하면서 시즌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총장이 백기를 들고 사임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서 제법 큰 대학 풋볼 팀이 벌어들이는 연간 수익은 100억 원 이상이다. 그리고 어느 대학이나 풋볼 선수의 대부분이 흑인이다. 미주리 대학 총장이 흑인 풋볼 선수들의 사임 압박을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번 주 내내 미국 언론들은 다시 흑백갈등, 인종차별 논쟁에 빠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트럼프가 다시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는 미주리 대학 총장의 사임을 “역겹다”고 표현했고, 자신이 총장이라면 정면 돌파했지 사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쳐서 미국 대통령 선거전을 다시 인종차별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 하고 있다. 이제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전 세계의 백인들이여, 단결하라”고 선언하는 일만 남은 듯하다.

인종차별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종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올림픽에도 출전이 금지됐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apartheit, 아파르트헤이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나라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흑백이 평등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첫 대통령 직책을 완수하고 흑백 화해의 아이콘으로서 세계 지도자들의 조문 속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자, 우리나라에서도 인종차별은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에 북방식과 남방식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북쪽에서 온 조상도 있고, 남쪽에서 온 조상도 있다. 심지어, 인도에서 온 가야의 허 황후도 우리 조상이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유전학적으로 단일민족일 수가 없는데도, 우리 국민들 중 제법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 가정을 무슨 순혈주의의 원흉처럼 못 되게 대하고 있다. TV의 <러브 인 아시아> 프로를 보면 다문화 가정을 동정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실제 혼혈아를 만나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한국인들 정서가 아닐까? 사람들은 왜 이성적으로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주관적인 내면은 바꾸지는 못하는지, 한 길 인간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6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캐서린 햅번)과 각본상에 빛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이라는 명화가 있다. 이 영화는 평소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저명한 백인 칼럼리스트(스펜서 트레이시 분) 딸이 흑인 의사 남편감(시드니 포이티어 분)을 집으로 초대하자 벌어지는 흑백 갈등을 다룬 수작이다. 여기서 부인(캐서린 햅번 분)은 딸의 흑인 남편감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오히려 딸을 옹호하고, 평소 글로써 인종차별을 반대한 칼럼리스트 아버지는 딸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심한다.

박사 학생 시절에 내가 읽은 논문 중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한 심리학자가 쓴 인종차별에 관한 심리학 논문이 하나 있었다. 백인인 심리학자는 미국 내 100명의 백인 레스토랑 주인에게 흑인 손님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조사 대상자들은 대체로 흑인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응답했다. 그후, 그 학자는 흑인 조수를 동반하고 손님으로 가장해서 그 100개의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 실제와 조사와의 차이를 사후 조사했다. 그 결과는 설문조사 결과와 딴판이었다. 많은 백인 레스토랑 주인들은 설문조사 응답과는 달리 흑인 조수를 차별했던 것이다.

사람의 몸은 이성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 내면 깊숙한 주관성은 자신도 모르게 쌓인 무의식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논리보다도 문화적 경험에서 쌓인 무의식적 태도, 신념, 가치, 세계관은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 IS에 가담한 부모의 어린 자녀가 자살폭탄 테러에 참여하는 행위나, 김정은 사진틀을 아침마다 빛나게 닦는 북한 주민들의 속마음은 이성적으로 설명되지도 않고 뿌리가 깊어서 바꾸기도 어렵다. 무신론자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유아 세례 같이 자신이 선택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종교적 신념을 주입하는 것을 특히 신랄하게 비판했다.

1967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나자, 미국은 즉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흑백갈등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를 위원회의 위원장인 ‘커너’의 이름을 따서 <커너 보고서(Kerner Report)>로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언론 보도가 흑인을 소외시킨 점이 미국민들의 흑백차별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지적했고, 그 이유는 기자 대부분이 백인이어서 백인 시각이 언론에 주로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 언론은 흑인기자, 나중에는 여성 기자, 소수민족 기자를 양성하고 고용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것을 미국 언론의 ‘다양성 운동’이라 부른다. 9.11 이후에는 미국 언론이 이슬람을 이해하는 보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후 미국 대학 신방과에서는 글로벌 문화를 이해하는 과목이 신설되기도 했다.

그런 수십 년의 노력이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으로 인종 화해라는 결실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에 흑백갈등은 오히려 더 심화됐다는 역설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은 물론 많은 국가들은 법과 교육으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각국 언론도 인종차별을 막는 데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샤를리 에브도 사태처럼 언론이 인종편견을 부추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바로 며칠 전, 파리 테러가 발생하면서 인류는 인종갈등에 종교적 갈등까지 더해져 ‘문명의 충돌’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학교와 언론이 인종편견을 막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래도 인류의 희망을 위해 각국 지도자와 교육자와 언론인들은 이성을 지켜야 한다.

프랑스 한 가정의 네 딸이 각각 중국인, 아랍인, 유태인,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 신랑감과 결혼해서 발생하는 좌충우돌 인종갈등이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하는 프랑스 코믹 영화 <컬러플 웨딩즈>처럼, 지금 지구촌이 겪고 있는 인종갈등과 심지어 종교 갈등까지도 ‘화해’라는 행복한 결말로 발전하는 희망을 인류는 가질 수는 없을까?

나는 30년 전 거닐었던 미주리 대학 본관 ‘제시 홀’ 앞 광장에서 흑인 학생들이 <We Shall Overcome>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을 미국 미디어에서 보고 또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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