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칼럼]'패스트트랙' '모멘텀' '톱다운 방식'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다
상태바
[이광우 칼럼]'패스트트랙' '모멘텀' '톱다운 방식'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다
  • 대표 / 발행인 이광우
  • 승인 2019.04.15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표 / 발행인 이광우
대표 / 발행인 이광우

뉴스를 보다가 듣다가 잠시 상념에 젖었습니다. 모종의 자괴감이나 슬픔 비슷한 감정이 솟아올랐습니다. 우리 언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달리 보면 으스대면서 던지는 듯한 ‘고급’ 영어 때문이었습니다.

패스트트랙

몇 달도 더 전에 한 신문에서 ‘패스트트랙’이란 말을 접했습니다. 신문은 이 단어를 불쑥 내던지다시피 했는데, 당시에는 기사 전체를 통해서 대충 뜻을 유추하고 넘어갔습니다.

잊을 만하면 이 말이 등장하는 바람에 하루는 기필코 정확한 뜻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오기 같은 게 생겨났습니다.

그 과정을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패스트트랙’을 쳤습니다. 무수한 기사가 떴습니다만, 거의 다 한글 설명이 없었습니다.

영어단어를 찾았더니 ‘출세 등의 목표를 빨리 달성하게 하다’가 나왔습니다. 대문자로 쓰면 ‘신속심사권(미국 식품의약국이 심각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 약물 검토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과정)’이란 뜻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패스트트랙의 일본말 ‘ファストトラック(화스토토랏쿠)’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조기 일괄 승인 절차. 정부가 제안한 관계 법안을 일괄 심의하여 찬반을 묻는 제도’란 명쾌한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호~

계속 노력을 기울였더니 현 시점의 패스트트랙에 대한 해석의 완결판이 나왔습니다. 정리하면 이러합니다.

'패스트트랙: 국회의 법안 처리가 무한정 지연되는 상황을 예방하는 한편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수사권조정 관련 법안을 신속하게 일괄 처리키로 합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일부 입장 차를 보여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모멘텀

이제 패스트트랙은 알겠고, 그 다음에는 ‘모멘텀’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2일자 조간신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북미)대화의 모멘텀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라는 기사가 떴기 때문입니다. 모멘텀도 늘 궁금해 하면서 지나쳤던 단어였습니다.

국어사전을 보니 우리말화했는지 ‘(명사)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거나 바꾸는 장면’이란 설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사 문장에 대입을 해 보았는데, 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북미)대화의 바뀐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 (ㅠㅠ)

영어사전을 뒤져보니 사정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일의 진행에 있어서의) 탄력’이란 뜻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북미)대화의 탄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서 꽤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헤집고 다니다 보니 ‘동력’이란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옳거니! ‘(북미)대화의 동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니 가장 그럴 듯 해 보였습니다. 무척 기뻤습니다. (^^)

물론, 기사 문장 하나를 두고 이런 식으로 추론을 하고 학구열을 불태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톱 다운 방식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매체의 제목에 자주 등장하는 ‘톱 다운 방식’이란 말도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이 단어 역시 문맥을 통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인데, 이참에 뿌리를 뽑기로 결심했고 이해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만난 건 경제적 해석이었습니다. “정부예산편성제도에 있어 기획예산처가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을 토대로 부처별 예산 한도를 미리 정해주면 각 부처가 그 한도 안에서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이다. 우리말로는 ‘사전 재원배분 제도’라 하며 2005년도 예산 편성부터 도입됐다.” 오호~ 이런 게 있었군!

문제는 이 해석이 현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영어사전을 살펴보았습니다. ‘상의하달식’이란 뜻이었습니다. ‘하의상달식’과 반대되는 말이었습니다. 요컨대, 이 말은 ‘정상 간에 큰 틀에서 합의를 한 뒤 실무진에 후속 협상을 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아~뭐가 이렇게 어려워? 기사는 다양한 학력의 사람들이 접하는 것인데 이렇게 무례하고 불친절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저의 무식에까지 생각이 미쳐서 문득 자괴감이나 슬픔 비슷한 감정이 솟아올랐던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